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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0-22 ] 베이지역 목사님의 설교말씀 보기

SFKorean.com의 종교란의 하단에 베이지역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이 있습니다. 많은 이용을 바랍니다.

아래의 내용은 오클랜드 연합감리교회의 김무영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발췌한 내용 입니다.


살아요


마태복음 6:33-34

하루살이와 매미가 함께 놀았습니다
저녁 때가 되자 매미는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또 놀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루살이는
`얘, 매미야, 내일이 뭐니`하고 물었습니다
매미는 내일이란 캄캄한 밤을 지나면 다시
오늘 같이 밝은 날이 오는데,
그것이 바로 내일이라고 일러주었으나
하루살이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만들어 낸 우화입니다. 오늘은 하루에 대한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루살이 인생
하루살이는 유충으로 1년에서 3년을 지내다가 성충이 되어서는 하루를 살고 죽는다 하여 하루살이라고 합니다. 하루살이는 그 종류가 대단히 많은데 세계적으로 약 2,000 종이 있고 한국에도 120여 종류가 있습니다. 그 생애가 짧아서 1시간만에 죽는 것도 있습니다. 길어야 2-3일, 가장 긴 것이 3주를 산다고 합니다.(평균 하루) 입이 퇴화되어서 한 번도 먹지를 못하고 죽는데 태어나기 전에 알속에서 하루 분의 영양을 공급 받아서 태어났다가 하루를 살고는 죽습니다.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헤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56:6)
이사야의 말씀 속에서 하루살이는 아무런 힘이 없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하면 나쁜쪽으로 생각합니다.
희망이 없이 절망 가운데 빠져서 사는 인생, 미래에 대한 아무 계획도 없이 그날 그날만을 위해 사는 인생,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생에게 하루살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를테면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정처없이 떠도는 인생을 말할 때도 우리는 하루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살이에게도 하루라는 삶이 있다는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루살이에게는 그 하루가 그의 평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루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루를 천년같이 살아야 하는 존재가 하루살이가 사는 하루입니다. 하기는 하루를 천년같이 알고 사는 하루살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루를 천년 같이 알고 사는 하루살이 인생이나,
천년을 하루같이 알고 사는 인생 …… 이들은 모두 행복한 인생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루를 천년같이 귀한 줄 알고 사는 인생에게 그 하루가 얼마나 의미있고 귀한 것이 되겠습 니까?
또한 천년을 하루같이 지루한 줄 모르고 사는 인생, 그 또한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하루를 살든 천년을 살든 우리의 삶이 의미있고 보람이 있으며 행복하다면 되는 것 아니겠습 니까?
어찌 되었든 우리 인생은 어제는 이미 살았고, 내일은 아직 살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 오늘 하루를 사는 존재인데 그렇게 보면 우리 또한 하루살이라고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2. 오늘 하루의 삶
벤저민 프랭클린`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늘 부름을 받을 때에 일을 하라. 당신이 내일 얼마나 많은 방해를 받게 될지 모른다. 하나의 오늘은 두개의 내일보다 더 가치가 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절대 내일로 미루지 말라.`

다음은 인터넷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하루를 그냥 대충 살아서는 안 돼요`
나지막 하면서도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어깨에 닿을듯 말듯한 생머리를 뒤에서 하나로 묶은 단아하고 수수한 모습에 지극히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처음, 가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설 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내면이 참 고요한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함께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는 중에 그녀의 건강하고 숱많은 머리가 탐스러워서 내가 말했다.
`머리숱이 참 많으시네요.`
`삼 년 전에 머리숱이 다 빠지고,다시 난 머리예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얼굴에 물음표를 띠자,그녀는 `삼 년 전에 수술을 했거든요. 항암 치료 받으면서 그랬어요.` 하면서 그녀의 얘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설암`에 걸렸었다. 그녀는 혀에 종양이 생긴지 1년만에 병원을 찾았다. 수술을 해야한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혀의 4분의1을 잘라서 혀의 이식수술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 4분의 1가운데 아주 조금만 덜 잘라내어도 재발 가능성이 있고, 더 잘라내도 음식을 삼키지 못하거나 말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정밀한 수술이라고 했다.
같은 병실에 역시 같은 병으로 입원해서 수술을 했던 한 사람은 결국, 수술에 실패했다. 그녀의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수술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아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하자 남편은 `어,말 하네!`하며 놀라움과 기쁨으로 눈물을 흘렸다. 잃어버린 사람을 다시 찾은 듯한 감격으로 기뻐했다.
그녀는 수술후에는 삶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것이 새롭게 보였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살아가는 삶의 다양한 방식을 인정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수수한 지금의 외모와는 달리, 그녀는 수술하기 전에는 머리카락도 가만 쉬게 놔두질 않았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가끔씩 파마를 한게 아니라, 한달에도 몇번씩 헤어스타일을 바꿨고, 염색과 파마를 한달에도 몇번씩 하고 또 해서 머리를 시달리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수술 후에는 머리를 그렇게 시달리게 해서는 안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6개월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간다고 한다. 한번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본 자만이 체득할 수 있었던 인생에 대한 겸허함이 그녀의 모습에 녹아들어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 표정의 비밀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수술 뒤에는 무슨 일이든지 `바쁠것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모든것에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다. 아둥바둥하며 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 있었다. 미워하고 싸우면서 언제까지고 살 것처럼 욕심내면서 살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바쁠 것도,아둥바둥 살 것도 없지만, 매일 주어지는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접 몸으로 체득한 그녀의 말과 삶의 태도는 실감있게 와 닿았다. 그 말 속에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강조하지 않아도 그녀의 몸소 체험한 그녀 자신의 언어로 말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삶을 관조하듯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그것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수술 후에는 바쁠 게 없어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어요.`
오십의 나이를 바라보는 나이라고 했지만 무척 젊어보였다. `하루를 대충 살아서는 안돼요.`라고 한 말이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알면서도 우리는 순간순간 잊어버리게 되고, 타성에 젖어 살다가도 또,이런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재확인하고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혼자서는 성장할 수 없는 존재다. 관계와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성숙되어져 가는 것이다. 하루를 대충 살지 않고 최선을 다하되,초조해 하지 말고 조바심내지 말고 인내를 갖고 성실히 살아야겠다. (이상 인터넷에서 발췌)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내일이 오늘이 되어 우리 앞에 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가 버린것입니다. 어제가 아직도 우리에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추억과 기억이란는 창을 통해 존재할 뿐입니다.
내일이 우리에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기대와 바램 속에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오늘이 있을 뿐입니다. 내일을 소망하며, 영원한 세계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오늘이 우리에게는 있을 뿐입니다.

설암이 걸려서 생사의 두려움을 경험했던 여인에게는 어두움의 긴 밤이 지나고 밝아온 새아침이 감격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보다 더 큰 선물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을 그는 아무렇게나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이에게도 말해 줍니다.
“하루를 대충 살아서는 안돼요!”

3. 오늘을 사는 지혜
곤한 잠에서 깨어 일어나 아침 햇살을 맞으며 새 날을 맞이할 때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합니까?
아무 생각도 없이 하루를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짜증스럽게 하루를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려움 가운데 하루를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몽롱한 가운데 하루를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어떤 자세로 밝아온 하루를 맞이해야 하겠습니까?
감사함으로 밝아온 아침을 맞이해 본 일이 있습니까? 값없이 주어진 하루에 대해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새아침을 열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기쁨 가운데 밝아온 아침을 맞이해 본 일이 있습니까? 살아 있어 맞이한 하루, 건강한 가운데 남의 도움 받지 아니하고 나 혼자서 일어서고 걸을 수 있는 생명을 가진체 맞이함으로 얻게 된 기쁨으로 새 아침을 열어보셨습니까?
감격 가운데 밝아온 아침을 맞이해 본 일이 있습니까? 새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함으로 맞는 하루, 아무 것도 그려진 것이 없는 하얀 도화지에 그려질 새 그림을 생각하며 감격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주어지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맞이하며, 무엇을 구하면서 주어진 축복의 새날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 성경 본문에서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그러므로 내일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 6:33-34)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날을 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게 하시기 위함임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런한 가운데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가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밤 사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3-14)고 말씀합니다.
아침 안개와 같은 우리 인생에게 오늘을 주신 하나님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수 있도록 간구하 면서 하루를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을 살 지혜와 능력과 건강과 보호하심을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가 우리의 일생을 결정짖습니다.
오늘은 개판으로 살면 우리의 일생은 개판인생이 될것입니다.
오늘을 불평과 불만으로 살면 우리는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한 어두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시편 37:1은 말씀합니다.
“행악자을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을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오늘을 시기와 질투 가운데 살면 우리의 일생은 살이 돋힌 인생이 되고 말것입니다. 잠언 14:30은 말씀합니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오늘을 욕심에 사로잡혀 살면 우리의 일생은 욕심쟁이 인생이 될것이며 마침내 사망으로 종결을 짖고 말것입니다. 야고보서 1:15은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 종교단체를 클릭하시고 하단을 보면 김무영목사님의 설교말씀을 계속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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