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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13 ] 전설적 뮤지컬 작곡가 정민선교수 인터뷰

[SF 저널] 한국 뮤지컬 대상 음악상에 빛나는 전설적 뮤지컬 작곡가로 꼽히는 정민선 작곡가를 산타클라라 오피스에서 만났다. 그는 음악과 함께 살아온 삶으로 인해 누구보다 맑은 마음을 소유하고 있고, 기독교 가정 배경에서 우러난 진실한 신앙심을 갖고 있으며, 작곡활동에 대해 세속적이지 않은 보다 순수하고 명확한 견해가 있었다. 한국에 방문할 기회가되면 오랜세월 팬들의 각광을 받고있는 정민선교수가 전곡 창작 작곡한 한국어로 공연되는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카르멘', 그리고 '안악지애사'를 꼭 관람하고 싶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정민선교수는 서울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목사로, 어머니는 일본계 회사에 재직하셨고, 남동생은 버지니아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25년이상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 작곡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국민대 대학원 교수로 근무하며 후배 양성과 작곡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정교수의 아버지는 문학을 전공하셨는데, 향후에 주님의 부름을 받아 신학을 마치고, 서울의 한 성결교회에서 목사로 50년 사역후 은퇴했다. 출석교인은 약 200여명 가량밖에 안되지만, 그동안 교회에서 배출한 목회자만 40여명이 넘고 모두 왕성한 사역을 하고 있다.

아버지가 목회를 시작하자, 일본계 회사에 다니시던 어머니가 생활을 책임졌다. 현대적 사고를 가지고 아들 둘에게 원하는 방향으로 꿈을 키울수 있도록 어떤 강요함이 없었다. 40여년전에 세계여행을 부부가 함께 다니며, 승마도 배우는등 다양하고 폭넓은 생활을 했다. 그는 부모님 덕분에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정교수의 할아버지는 공주에서 군청에 다니시며 술을 즐기던 분이었다가 기독교를 믿게되었고, 술도 끊고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마을에서 갑자기 변한 할아버지를 두고 '예수에 미친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교수의 아버지가 친구 동생인 어머니를 좋아하게 되어, 집앞에 가서 뻐꾹이 소리를 내며 불러냈는데, 이를 알아차린 정교수의 외 할머니가 예수에 미친사람의 아들이 찾아온것이 달갑지 않아 회초리를 들고 집 밖으로 뛰쳐나온 적이 많다고 한다. 결국 두분은 결혼을 했고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신다.

정교수와 한 교회에서 다니던 강 정수씨는 정교수가 첫사랑이었다. 둘의 자택은 티뷰론에 있다. 정교수는 한국에 교수직을 하고 방학때 미국을 왕래하며 살아왔고, 부인은 많은 시간을 홀로 두 남매를 키우며,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 공무원을 퇴직하고, 옆동네인 벨베디어(Belvedere)시에 거주하는 지인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전문적으로 주택관리 업무를 하고있다. 벨베디어는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로, 집가격이 보통 5~6밀리언 이상이며 80밀리언이상의 최고급 집들도 다수 있고, 도시 내에 식당과 가게가 허용되지 않으며, 집의 디자인등이 도시경관을 거스리지 않도록 시에서 굉장히 까다롭게 관리하는 고급 주택도시이다. 얼마전에는 테니스 스타 안드레 아가시의 집이 20밀리언에 팔리기도 했으며, 우디 앨런이 만든 블루 재스민 영화에 나오는 고급 주택의 촬영지가 있는 미국내에서 고급 주택지로 유명한 지역으로 꼽힌다.

그녀는 하루에 2~3시간만 잠을 자며 성실히 노력해 모은 재산으로 한국에 계신 시부모님께 집도 사드리는 보기드문 효부이며, 가정의 재정을 거의 담당하면서, 티뷰론에 집도 장만하고, 평생 교수로 음악에 전념하며 청렴하게 살아온, '무공해 천재'라는 별명을 가진 정교수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지켜온 근래에 보기드문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운 여성이며, 외모또한 출중하다.

그의 자녀는 둘다 UC 버클리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콜롬비아 대학원에서 공중건강학을 석사를 마쳤다. 아들은 결혼해 현재 뉴욕에 거주하고 있으며, 딸은 내년 5월에 버클리에서 결혼 할 예정이다. 정교수가 음악의 세계로 들어서게된 계기는, 초등학교 2학년때 교회에 가서 풍금을 혼자 쳐보았는데, 화음이 아름답다고 느끼게되었고, 음악에 매료되었다. 그후 6학년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우게 되었는데, 바이엘 상하권을 2개월만에 마쳤다. 중학교때 동네에서 피아노 레슨을 계속 받았다. 서울예고 졸업후 연세대학교 작곡과에 진학해 대학원까지 마친후 교수가 되었다. 그는 25년간 실기과목에서 A의 성적을 단 한 학생에게만 주었다고 한다.실기에서 A는 정말 잘해야 만 받을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많은 작품중 가장 유명한 3개의 뮤지컬 작품을 꼽자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카르멘', '안악지애사'로 일축된다. 독일 소설가 괴테를 유명인사로 만들어준 첫 성공작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을 한국에서 뮤지컬로 창작을 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장기적으로 공연이 지속되고 있다. 이 뮤지컬은 36곡으로 이루어졌는데, 정교수가 40일정도 걸려 전곡의 창작을 마쳤다. 매년 겨울 6주정도 50회이상 공연이 되고 있으며,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젊은 지식인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알게된 로테를 보고 첫눈에 반해 가까와진다. 사랑의 감정이 커질즈음 떠나있던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트가 발하임으로 돌아온다. 사랑에 괴로와하던 베르테르는 발하임을 떠나기도 하지만, 귀족사회의 폐해만을 경험한 채 다시 발하임으로 돌아온다. 유부녀가된 로테의 주위를 맴돌며 베르테르는 고통스러워하고, 로테는 베르테르에게 호감을 느끼면서도 거리를 둔다. 결국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구애하며 키스를 시도하고, 당황한 로테는 절교를 선언하게되며, 절망에 빠진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빌린 총으로 스스로 머리를 쏘게된다. 슬프고 애절한 스토리는 정교수의 천재적인 창작곡에 덧입혀져 많은 뮤지컬 팬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소설이 출간될 당시 소위 '베르테르 열병(독일어: Werther-Fieber)라 불리는 현상을 낳기도 하였다. 많은청년들이 베르테르의 옷차림을 따라하였고, 심지어 베르테르를 모방한 자살이 퍼져나갔다. 이에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David Philips)는 유명인이 자살후 그것을 모방한 자살이 확산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 명명했다.'카르멘'은 프로스페르 메리메가 1985년 탈고한 소설이며, 1875년 주르주비제가 동명으로 작곡한 4막의 오페라다. 줄거리는, 주요 인물인 돈 호세의 본명은 이달고이고, 세비야의 기병대원이었으나, 어느날 다른 여자와 다툼을 벌이던 카르멘을 체포했는데 카르멘에게 매혹되어 놓아준다.

그로인해 감옥에 투옥되고 계급도 강등당한다. 수감생활중 카르멘이 빵에 탈옥할수 있는 줄을 숨겨 보내주지만, 탈옥을 하지 않는다. 출감후 어떤 장교와 있던 카르멘을 목격한 돈 호세는 장교를 죽이고 카르멘의 도움으로 도망쳐 도적이 된다. 카르멘과 살지만, 사실 카르멘은 도적단 일원인 가르시아와 결혼한 사실을 알게된다. 돈호세는 가르시아에게 시비를 걸어 그를 칼로 살해한다. 이후 도적질중 중상을 입은 돈호세를 카르멘이 정성껏 간호하지만, 그녀는 루카스와 친밀한 관계였다. 돈호세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카르멘에게 미국에가서 새 인생을 살자며 애걸 하지만, 카르멘은 거절한다. 결국 돈 호세는 카르멘을 죽이고 자수한다. '집시들이 그 아이를 그렇게 키워놓은 거요!'라는 탄식을 마지막으로 그의 고백은 끝을 맺는다. 카르멘의 특이한 삶이 정교수의 애절한 음악에 힘입어 극적인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뮤지컬이다.

'안악지애사' 한국의 자랑스러운 자체 뮤지컬이며 천 오백 년 동안 풀리지 않았던 역사 미스테리 극으로 고국원왕이 아버지 미천왕의 시신을 되찾아 안악3호분을 만들었으리라는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며 정교수의 곡으로 품격이 더욱 되살아난다. 정교수는 이흥구 목사가 작사한 글에 작곡을해 '창립 100주년 기념 칸타타'란 곡을 완성해, 오클랜드 연합 감리교회(담임 이강원 목사)의 창립 100주년 기념 음악회에 헌정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작곡은 좋은 글을 만나야 빛이 날 수 있는 특별한 분야라고 설명하며, 좋은 글,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한국 뮤지컬 대상 음악상 수상에 빛나는 정민선교수, 소년같이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천재적이고 날카로운 음악성을 지닌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선율을 들으며 풍성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수 있다는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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