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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10 ] [인터뷰] 한국 문학계의 거장 권영민 교수

[SF 저널] 12월 20일(토) 저녁 5시 산타클라라시 엘카미노선상의 한식당 'gaboja'에서 한국 문학계의 거장 권영민 교수를 만났다. 권교수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차분한 성격을 대하며 그가 문학인으로서의 자질을 타고났음을 느꼈다. 그는 섬세하고 자상한 표현력으로 함께 자리한 그를 존경하는 지인들에게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권용민 교수는 1948년 충남 보령에서 8남매중 3째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 박사학위를 1984년에 받았다. 서울 대학교 교수로 1981년부터 32년간 재직하며, 하버드대학과 U.C. 버클리대학의 초빙교수, 일본 동경대 한국문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단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지금은 U.C. 버클리 대학의 초빙교수로 SF 베이지역에 머물고 있다.

그는 현대 문학상 평론상, 서울 예술 문화 평론상, 만해 대상 학술상, 시와 시학 평론상, 서울대학교 학술 연구상등 문학계의 굵직한 상들을 모두 휩쓸었고, 120여권 이상의 주요 저서들이 여실히 보여주듯, 그는 문학 평론, 문학 이론, 문학 역사, 문학언어와, 시대적 , 지역적 문학 분석등 문학 세계의 다양한 분야의 연구활동을 지속해왔고, 문학사에 꼭 필요한 큰 획을 그었음을 인정받았고, 그의 저서들은 특히 전문 문학도들의 교과서로 불릴만큼 애독하는 문학인들이 많다.

권교수는 어린시절부터 책읽는것을 무척 좋아해서, 학교 도서관 반원이되었다. 반원이 되면, 대출 도서의 숫자와 대출 기간등이 자유로왔고, 이로 인해 더욱 독서량이 늘었다. 그는 순수 문학, 소설등을 특히 좋아했으며, 한국 문학뿐 아니라 전세계의 유명 문학인들의 저서들도 끊임없이 읽었다. 부모님은 어려운 형편에 시골에서 8남매를 키우셔야 했기에 경제적으로 많은 지원을 해줄 수는 없었지만 권교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해 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매년 연말이 되면, 읍내에서 신년도 일기장을 한권 사주셨다. 권교수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꼬박꼬박 일기를 적었다. 고등학교때 부터는 직접 돈을 마련하여 대학졸업때 까지 일기장을 사서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그의 어머니는 소학교도 마치셨기에, 글을 잘 쓰셨고, 사리가 밝고 공정하셨으며, 손재주가 많으셨다. 옷을 빼어나게 잘 지으셔서, 온 가족의 옷을 다 만들어 입히셨고, 음식 솜씨 또한 좋아, 마을에 잔치가 있을때마다 도움요청을 받으셨고, 정리 정돈을 잘하셔서 바쁜 와중에도 8남매의 성적표와, 상장, 일기장, 주요한 서류등을 모두 가지런히 정리하여 보관하셨다.

그는 고향인 시골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대학교에 입학원서를 냈는데, 그 학교에서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경우가 없었기에, 마을에서 단, 한사람 그의 어머님 만이 "네가 합격할 줄 알았다"고 하시며 끝까지 믿어주었다.

권교수는 29살때부터 대학 교단에 서게되었는데, 한 은사님이 당시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아내를 소개시켜 주어 순조롭게 가정을 이룰수 있었다. 어머니는 오랜세월 고이 모은 그의 일기장, 상장, 성적표를 권교수와 그의 아내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다. 아내또한, 문학을 전공했고, 좋아하기에, 권교수가 집필하는 수 많은 저서들 뿐 아니라, 평론, 논문, 기고문들까지 빠짐없이 정독하고, 가장 이성적이고 날카롭게 비평을 해주고 있다.

그에게 문학이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그에게 문학이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식과 교양뿐 아니라 감성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한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실용서적만을 탐독하는 경향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지만, 순수문학, 특히 그가 즐겨 읽었던 다양한 소설을 접하게 되면 참으로 다채로운 인생들을 볼 수 있고, 또한 주인공들이 그들의 인생을 대하는 색다른 태도들을 느낄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이 아닌 남의 삶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의 인생을 깊이있게 관찰할 수 있는 창이 열리게 된다.

120여권의 막대한 저서를 비롯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삶을 살아온 그에게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서울대 교수로 32년, 다양한 사립대 교수로 4년을 지내며, 문학인으로 많은 연구를 지속했는데, 전문 서적과 논문등 연구 위주였기에, 많은 대중들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음이 조금 아쉽기에,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보다 대중적인 글을 써보고 싶은 희망이 있다고 전한다.

안정되고 성공적인 문학인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에 가장 고생스럽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는 어린시절 가정이 너무나 너무나 형편이 어려웠다고 전한다. 고등학교부터는 어려운 집안 사정에 조금이나마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독립해 주거 가정교사를 하면서 지내는등, 학비를 비롯한 모든 생활비를 스스로 벌면서 학업을 지속했다고 한다. 그당시 힘들었지만, 그런 경험으로 인해 더욱 소중한 것들을 많이 깨달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고 미소짓는다.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온 그였기에, 그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과연 어떤식으로 가정교육을 했는지 궁금해졌고 그에게 물었다. 이제 모두 직업을 가진 성인 아들 2명을 두었는데, 대체적으로 아들들이 원하는대로 이해해주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이 사춘기를 앓을때 불평이 많아졌고, 그럴 때의 벌로 권교수가 아들 나이때의 바로 그날 자신이 썼던 일기장을 펼쳐주고, 너와 똑같은 나이때 바로 오늘 너의 아버지는 과연 무슨생각을 했고 어떻게 하루를 살았는지 살펴보라고 했는데, 일기를 읽고는 아들이 펑펑 울면서 아버지가 그렇게 힘들게 살았던것을 읽는것이 너무나 큰 벌이라고 하면서, 다음부터 이런 벌은 받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어린시절 매일 매일 썼던 일기를 다른 청소년들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가시간엔 무엇을 하는지 물었다. 그는 점심식사후엔 항상 U.C. 버클리 교정을 30~40분간 걷고, 시간이 날때 마다 혹은 생각을 정리하면서 수시로 걷는다고 한다.
그의 군살 하나 없는 건강한 체격과, 밝은 모습이 정돈된 일상의 노력에서 나왔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문학세계속에서 이상적 삶을 살아온 그의 모습을 보며 문득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가 떠오른다.
그의 삶이 언제나 평화롭고 아름답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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