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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김 진환의 생각>
이번에 아들이 사는 시애틀 갔었는데, 아마존과 마이크로 소프트 등이 있는 그 부자들이 사는 도시에 노숙자들이 의외로 많았고 너무 비참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국경을 넘어 벤쿠버에 갔더니 노숙자를 볼 수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도심지의 고층빌딩이 대부분 정부 아파트라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거기 모여 살면서 버스나 기차를 타든 걸어 다니든 그 근처에서 먹을 것 먹고 마시며 멀리 나 댕기지 말라는 것이라는 의미처럼 보였습니다. 부자들은 자기들이 낸 세금으로 정부가 저런 뻘짓한다 며 이 사람들 보기 싫어 시외로 나가서 살고…… 어느 것이 공평한지,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부자들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 아무리 편향되지 않은 중립적인 위치에서 보겠노라 장담하여도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벌써 어느 한쪽에 편향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아닌 우리는 항상 어느 쪽엔가로 기울어져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아마도 7살때쯤, 길가에 놓여진 수레 밑에서 잠자다 얼어 죽은 노숙자를 보았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가까이서 시체를 본 것이었기에 엄청 충격을 받았고 무서웠기에 그 기억은 더욱 생생합니다. 당시 애들 어른 줄잡아 30명 이상이 그 광경을 지켜만 보았지 아무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그 장면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그 분도 누군가에는 자랑스런 아들이었을 것이고, 혹은 이 나라를 지키던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군이었을 지도,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버지였을 지도 모르는데,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유난히도 추운 겨울에 유난히도 차가운 땅바닥에서 유난히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을까? 한탄할 그 무엇이 그 분을 그러한 삶으로 비참한 환경으로 밀어 넣었을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그리고 자랑스런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끔찍하고 비참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혹한과 굶주림이라는 포위망을 뚫고 나오려고 마지막까지 힘을 다하여 싸우시다가 장렬하게 전사를 하셨는데도, 그의 죽음에 대하여 아무도 책임을 지기는커녕 슬퍼하거나 아쉬워하는 자 없었다는 것, 아니 그런 죽음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한 오늘 우리세대가 언제부터 함경도 아오지 탄광의 석탄보다도 더 깜깜하고 만주 벌판 뙤 바람보다도 더 냉혹해졌다는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네 가진 것을 배고파 죽어가는 사람들과 나누라고 여러 번 가르치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소돔이 망한 것은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 라고 자기 백성을 질책하셨습니다.(에스겔16:49) 우리에게는 이러한 선지자 대신, "하나님께 죄져서 가난한 거야" 라고 가르치니,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했도다" 라는 선지자의 탄식을 이어갈 뿐 하고싶은 말들이 입안에서 고사되고 마는 현실입니다.
누구든 세상에 나왔으면 자기가 왜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를 알아야겠고, 사고나 병들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배고파 죽는 일은 없어야겠고, 두 다리 펴고 누워 죽을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장례는 있어야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저의 인생 철학입니다. 성경은 배고파 쓰러져 죽어 짐승의 밥이 되는 것은 저주받은 자가 당하는 형벌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힘있고 권세있는 자들이 가난한 자들의 인간의 존엄성은 물론 기본적인 권리까지 빼앗는 냉혹한 현실은 그들의 삶을 그렇게 저주받은 인생으로 밀어 부치고 있습니다.
일찍이 서양 선교사님들이 우리에게 준 것은 껌과 사탕만이 아닙니다. 껌과 사탕은 큰 년, 작은 년, 순이, 말째, 개똥이, 말똥이…… 사람다운 이름도 없이 자라던 애들에게 영철, 순철, 피터, 바울, 영희, 순희, 데보라, 루디아 등등의 이름을 지어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위,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을 수 있는 권세를 가르쳐 주시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여보, 당신이 너무 피곤해 보여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쉬면 안돼요?” 라던 젊은 아내의 섬섬옥수를 뿌리치며, “내가 하루 쉬면 그 사이 조선사람 30명이 죽어요. 내 왕진가방이나 차려요” 라며 출근하셨다가 그날 콜레라에 감염되어 순교하신 존 해룐, 그 분은 위스콘신 대학의 잘 나가는 의대 교수였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청진기를 대고 주사를 놓으시다 그렇게 장렬하게 순교를 하신 것입니다.
“내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단 하나의 희망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하십니다. 어머니 … 이제 더 이상 쓸 수 없습니다. 너무 아픕니다” 라며 황해도 솔래의 차가운 골방에서 외롭게 죽어가던 캐나다의 젊은 청년 메켄지가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고국의 어머니께 쓴 마지막 편지 끝부분입니다.
혹여 사랑하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노심초사 밤잠을 못 주무시면서 기도하시던 어머님, “어머니, 이제 더 이상 쓸 수 없습니다. 너무 아픕니다” 그 편지에 당장 달려갈 수도 없었던 어머니, 세월호 참사에 억장이 무너진 어머님들, 이태원 참사에 속이 새까맣게 타다가 이제는 하얀 재가 되어버린 우리의 어머님들 가슴, 그리고 이 메켄지 어머님의 가슴도 얼마나 무너졌고 얼마나 많이 타버렸을까?
메켄지 선교사님은 중국 목단에서 선교하시던 Scottish Presbyterian 선교사 존 로스 목사와 서상윤 씨가 개척한 솔래 교회의 빈 자리를 토론토 선교보고를 통하여 아시고 YMCA 후원을 받아, 사랑하는 약혼녀에게 2년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오셨던 거였습니다. 열심히 조선말을 배우셨고, 가져온 페니실린과 통조림은 고을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시고 그 대신 김치에 쌀밥을 잡수셨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두꺼운 가죽옷 대신 두루마기에 핫바지 입고 다니시다가 감기가 폐렴으로 돌아섰을 때 정작 자신을 위하여 쓸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급히 서울로 전령을 보냈지만 그 전령이 서울에서 페니실린을 가져오기 전에 차가운 골방에서 홀로 마지막 편지를 쓰시다가 부르심을 받으신 것입니다.
의리의 사나이, 책임질 줄 아는 이 도령은 춘향 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내려왔지만 서울가신 오빠는 다른 여자가 생겨서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 거였습니다. 하지만 솔래에 오신 총각은 허름한 초가집 구들장을 지신 채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오신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쓸쓸하게 가셨던 것입니다. 그 마음씨 좋은 양코백이 총각이 죽었다고 동네 아줌마들이 평소에 쌀쌀맞게 했던 것에 미안해서 다 울고, 장례식에는 온 고을이 다 울고,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그리고 그 울음은 마침내 회개의 눈물로 변해 솔래 일대가 모두 예수님의 땅이 되어 버렸고, 그 불길이 평양에 번지면서 황해도 전체에 회개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거 아니겠습니까?
당시 학벌 없이 무식하다고 언더우드 부인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있었던 캐나다 선교사 Malcome Fenwick 이 후임으로 가셨습니다. 안식년이 되자 그 놈의 학벌 때문에 수모를 당한 것이 한이 되어 장로교를 떠나 Boston 에 있던 Clarenden Street Baptist Church 에서 Dr. Gorden 목사님으로부터 사사를 받게 됩니다. 3년간 열심히 공부하여 침례교 목사 안수를 받고 선교 헌금을 받아 솔래 교회로 돌아와 당시 $200을 들여 예배당을 아름답게 증축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더 이상 장로교 선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쿨하게 솔래를 떠나 원산에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평양 호수 돈 여고를 나와 아버지 사역을 돕던 여 전도사를 만나 평생을 조선을 떠나지 않고 사역하셨습니다. 이 분이 세운 동아 기독교단이 우리나라 침례교의 시작이라 주장하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동아 기독교단은 침례 주는 것 외에는 장로교, 침례교, 그리고 감리교 교리를 합한 것 비슷합니다.
여하튼 예수님을 믿든 안 믿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이런 분들께 빚을 지은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저도 이분들께 아니 우리 주님께 빚진 마음으로 아프리카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우간다에 10에이커의 땅을 사서 기도원을 짓고 그 옆에 공동묘지를 만들려고 하는 것도, 물론 학생들 잘 가르쳐 훌륭한 목회자 배출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지만 그 들에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권한과 편안히 묻힐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심어주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격과 존엄성을 존중해 줄 때 비로소 나에 대한 올바른 존엄성을 알 수 있고 지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 주변에는 난민 텐트에 있다가 나와서 방황하다 혹은 이웃 나라에서 돈 벌러 왔다가 객사한 이름 모를 시체, 가출하였다가 사랑이 무엇인지 깨우치기도 전에 임신이 되어 버려져 굶주리고 병들어 쓰러진 어린 미혼모들, 구걸하다가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최소한 편안히 죽을 수 있는 그리고 짐승의 밥이 되지 않고 묻힐 수 있는 손바닥 만한 공간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주님께서 내 눈을 열어 이러한 마음속의 부담(Burden)과 신념(Conviction)을 주셔서 기도하던 중 캄팔라에 서 40마일 떨어진 Wamala 호수를 보여 주셨습니다. 겉으로는 최적의 아름다운 곳이지만 영적으로는 수천 명의 Witchcraft (잡무당) 들이 매일같이 굿을 하고 산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고 있는 우간다 악령의 심장부입니다. 수억 만리 멀리 떨어져 있는 이것에서도 지도와 사진을 펴고 그 곳을 바라보며 기도하면 전신이 긴장이 되고 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기도 용사들이자 파트너 Dr. Paul Ang, Nancy Cohen, Prophet Darius 등에게 기도 부탁을 하고 기도해 오면서 주님께서 내게 주신 비전에 그 분들을 통한 확신을 더하며 “Wamala Revival 2024” 부흥성회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호수의 머리에 해당하는 지역의 땅 10 에이커를 매입할 준비를 하면서 기도해오고 있던 어느 날, 그 Wamala 호수가 커다란 용의 모습으로 변하며, 내가 그 엄청난 용의 목을 타고 있었으며 용은 나를 물으려고 하고 있었지만 내가 자기 목을 타고 있기에 물지 못하고 입만 크게 벌리며 공포의 표호를 내 뿜고, 나는 용의 두 눈이 급소다 하며 눈을 찌르며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이 꿈은 마치 하나님께서 마치 엄청난 미디안 대군을 맞이하여 흔들리고 떨리던 기드온에게 사기 떨어진 미디안 병사들의 꿈 이야기를 통하여 확신을 가지게 되었듯이 나에게도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꿈에 본 용의 눈에 해당하는 부위의 땅 10 에이커를 사서 그 땅 중앙에 “River of Life Prayer Mountain” 과 “River of Life Resurrection Center” 를 지으려고 준비해오고 있습니다. 우선 땅 매매가 완료되면 그 곳에 울타리를 쳐서 외부인들의 출입을 방지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땅 밟기를 할 것이며, 4일 연속 부흥성회를 개최하며 낮에는 졸업식과 목사 안수식을 하려고 합니다. 부흥성회 기간 동안 5명의 미국 본교학생들을 포함한 72명의 학생들이 졸업을 하게 되며, 그 졸업생들 중 25명이 목사 안수를 받게 됩니다.
기도원 주변에는 바나나, 아보카도, 카샤바를 많이 심어서 오는 사람들마다 기도하면서 육의 양식도 충분이 취하게 할 것입니다. 또한 깊은 우물을 파서 아무도 목마르지 않고 양질의 생수를 마시게 해 드리겠습니다.
전주 한일신학교 설립자 서 서평(E. J. Shepping) 선교사님의 삶이 나에게 많은 도전과 내 신앙양심을 후벼 파 놓았습니다. 2015년 여름에 전주에서 8시에 출발하는 학교 버스를 타고 한일 신학교 도서관에 한달 이상을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아스팔트 길이 녹아내려 구두가 자꾸만 들어붙게 하는 불볕 더위에 손에 든 빙그레 아이스크림 흘러내리듯 서서평 선교사님의 삶을 내 마음속에 녹여 흘러가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프리카 선교와 강의 준비를 바로 그곳에서 하였었습니다.
조그만 도서관에는 예상하지 못하였던 귀한 자료들이 있어서 좋았고, 서 선교사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점심 때에는 신록이 우거진 길을 따라 저 아래에까지 내려가 국밥 한 그릇 먹고 올라오는 기분도 좋았고…… 후에 사당동 총신대 도서관에도 몇 일 머물렀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숨결도 아름다움도 못 느꼈습니다. 선교사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들의 기도와 희생의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후원해 주신 선교기관, 동역자들, 교우들, 친구들, 형제들, 그리고 익명의 후원자들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특히 작년 12월 24일 한국 돈 6950원을 후원해 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금액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성탄절 이브의 바쁜 와중에 우리 아프리카 선교를 잊지 않았다 는 것에 감동이 왔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신 후원금은 아프리카 선교에 귀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기도로 준비해 오다가 최근에 개설한 인도네시아 분교는 Lukas 학장의 눈부신 활약과 리더십의 힘을 얻어 자급자족의 수준을 넘어 아프리카 선교에도 도움이 될게 하려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시는 희생의 헌금은 아프리카 선교에 쓰이고 있으며, 그 혜탹을 받고있는 신학샹들이 여러분들을 위하여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내밀어준 따뜻한 희생의 손길이 주님으로 부터 더불포션(두 몫의) 축복을 맏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바쁘고 어수선한 가운데에도 새해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성숙한 연어가 태어난 곳을 향하여 되돌아오듯 동심으로 마음을 향하여 단순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감동하고 기뻐하실 수 있으시기를,
“붉은 산이 그립다” 며 죽어가던 김동인의 “붉은 산” 의 술주정뱅이 삵처럼 현실을 외면하거나 피하지 않고 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에 스마트폰에서 잠시 손을 떼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 현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담대함을 가지실 수 있으시기를,
그리고 손이 너무도 시려 양손을 가슴에 넣었다가 아랫배에 넣었다가 하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털장갑이 되어줄 수 있는 풍요롭고 여유가 있는 삶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천이십 이년 정월 구일 아침에
이번에 아들이 사는 시애틀 갔었는데, 아마존과 마이크로 소프트 등이 있는 그 부자들이 사는 도시에 노숙자들이 의외로 많았고 너무 비참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국경을 넘어 벤쿠버에 갔더니 노숙자를 볼 수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도심지의 고층빌딩이 대부분 정부 아파트라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거기 모여 살면서 버스나 기차를 타든 걸어 다니든 그 근처에서 먹을 것 먹고 마시며 멀리 나 댕기지 말라는 것이라는 의미처럼 보였습니다. 부자들은 자기들이 낸 세금으로 정부가 저런 뻘짓한다 며 이 사람들 보기 싫어 시외로 나가서 살고…… 어느 것이 공평한지,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부자들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 아무리 편향되지 않은 중립적인 위치에서 보겠노라 장담하여도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벌써 어느 한쪽에 편향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아닌 우리는 항상 어느 쪽엔가로 기울어져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아마도 7살때쯤, 길가에 놓여진 수레 밑에서 잠자다 얼어 죽은 노숙자를 보았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가까이서 시체를 본 것이었기에 엄청 충격을 받았고 무서웠기에 그 기억은 더욱 생생합니다. 당시 애들 어른 줄잡아 30명 이상이 그 광경을 지켜만 보았지 아무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그 장면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그 분도 누군가에는 자랑스런 아들이었을 것이고, 혹은 이 나라를 지키던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군이었을 지도,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버지였을 지도 모르는데,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유난히도 추운 겨울에 유난히도 차가운 땅바닥에서 유난히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을까? 한탄할 그 무엇이 그 분을 그러한 삶으로 비참한 환경으로 밀어 넣었을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그리고 자랑스런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끔찍하고 비참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혹한과 굶주림이라는 포위망을 뚫고 나오려고 마지막까지 힘을 다하여 싸우시다가 장렬하게 전사를 하셨는데도, 그의 죽음에 대하여 아무도 책임을 지기는커녕 슬퍼하거나 아쉬워하는 자 없었다는 것, 아니 그런 죽음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한 오늘 우리세대가 언제부터 함경도 아오지 탄광의 석탄보다도 더 깜깜하고 만주 벌판 뙤 바람보다도 더 냉혹해졌다는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네 가진 것을 배고파 죽어가는 사람들과 나누라고 여러 번 가르치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소돔이 망한 것은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 라고 자기 백성을 질책하셨습니다.(에스겔16:49) 우리에게는 이러한 선지자 대신, "하나님께 죄져서 가난한 거야" 라고 가르치니,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했도다" 라는 선지자의 탄식을 이어갈 뿐 하고싶은 말들이 입안에서 고사되고 마는 현실입니다.
누구든 세상에 나왔으면 자기가 왜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를 알아야겠고, 사고나 병들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배고파 죽는 일은 없어야겠고, 두 다리 펴고 누워 죽을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장례는 있어야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저의 인생 철학입니다. 성경은 배고파 쓰러져 죽어 짐승의 밥이 되는 것은 저주받은 자가 당하는 형벌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힘있고 권세있는 자들이 가난한 자들의 인간의 존엄성은 물론 기본적인 권리까지 빼앗는 냉혹한 현실은 그들의 삶을 그렇게 저주받은 인생으로 밀어 부치고 있습니다.
일찍이 서양 선교사님들이 우리에게 준 것은 껌과 사탕만이 아닙니다. 껌과 사탕은 큰 년, 작은 년, 순이, 말째, 개똥이, 말똥이…… 사람다운 이름도 없이 자라던 애들에게 영철, 순철, 피터, 바울, 영희, 순희, 데보라, 루디아 등등의 이름을 지어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위,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을 수 있는 권세를 가르쳐 주시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여보, 당신이 너무 피곤해 보여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쉬면 안돼요?” 라던 젊은 아내의 섬섬옥수를 뿌리치며, “내가 하루 쉬면 그 사이 조선사람 30명이 죽어요. 내 왕진가방이나 차려요” 라며 출근하셨다가 그날 콜레라에 감염되어 순교하신 존 해룐, 그 분은 위스콘신 대학의 잘 나가는 의대 교수였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청진기를 대고 주사를 놓으시다 그렇게 장렬하게 순교를 하신 것입니다.
“내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단 하나의 희망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하십니다. 어머니 … 이제 더 이상 쓸 수 없습니다. 너무 아픕니다” 라며 황해도 솔래의 차가운 골방에서 외롭게 죽어가던 캐나다의 젊은 청년 메켄지가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고국의 어머니께 쓴 마지막 편지 끝부분입니다.
혹여 사랑하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노심초사 밤잠을 못 주무시면서 기도하시던 어머님, “어머니, 이제 더 이상 쓸 수 없습니다. 너무 아픕니다” 그 편지에 당장 달려갈 수도 없었던 어머니, 세월호 참사에 억장이 무너진 어머님들, 이태원 참사에 속이 새까맣게 타다가 이제는 하얀 재가 되어버린 우리의 어머님들 가슴, 그리고 이 메켄지 어머님의 가슴도 얼마나 무너졌고 얼마나 많이 타버렸을까?
메켄지 선교사님은 중국 목단에서 선교하시던 Scottish Presbyterian 선교사 존 로스 목사와 서상윤 씨가 개척한 솔래 교회의 빈 자리를 토론토 선교보고를 통하여 아시고 YMCA 후원을 받아, 사랑하는 약혼녀에게 2년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오셨던 거였습니다. 열심히 조선말을 배우셨고, 가져온 페니실린과 통조림은 고을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시고 그 대신 김치에 쌀밥을 잡수셨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두꺼운 가죽옷 대신 두루마기에 핫바지 입고 다니시다가 감기가 폐렴으로 돌아섰을 때 정작 자신을 위하여 쓸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급히 서울로 전령을 보냈지만 그 전령이 서울에서 페니실린을 가져오기 전에 차가운 골방에서 홀로 마지막 편지를 쓰시다가 부르심을 받으신 것입니다.
의리의 사나이, 책임질 줄 아는 이 도령은 춘향 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내려왔지만 서울가신 오빠는 다른 여자가 생겨서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 거였습니다. 하지만 솔래에 오신 총각은 허름한 초가집 구들장을 지신 채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오신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쓸쓸하게 가셨던 것입니다. 그 마음씨 좋은 양코백이 총각이 죽었다고 동네 아줌마들이 평소에 쌀쌀맞게 했던 것에 미안해서 다 울고, 장례식에는 온 고을이 다 울고,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그리고 그 울음은 마침내 회개의 눈물로 변해 솔래 일대가 모두 예수님의 땅이 되어 버렸고, 그 불길이 평양에 번지면서 황해도 전체에 회개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거 아니겠습니까?
당시 학벌 없이 무식하다고 언더우드 부인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있었던 캐나다 선교사 Malcome Fenwick 이 후임으로 가셨습니다. 안식년이 되자 그 놈의 학벌 때문에 수모를 당한 것이 한이 되어 장로교를 떠나 Boston 에 있던 Clarenden Street Baptist Church 에서 Dr. Gorden 목사님으로부터 사사를 받게 됩니다. 3년간 열심히 공부하여 침례교 목사 안수를 받고 선교 헌금을 받아 솔래 교회로 돌아와 당시 $200을 들여 예배당을 아름답게 증축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더 이상 장로교 선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쿨하게 솔래를 떠나 원산에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평양 호수 돈 여고를 나와 아버지 사역을 돕던 여 전도사를 만나 평생을 조선을 떠나지 않고 사역하셨습니다. 이 분이 세운 동아 기독교단이 우리나라 침례교의 시작이라 주장하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동아 기독교단은 침례 주는 것 외에는 장로교, 침례교, 그리고 감리교 교리를 합한 것 비슷합니다.
여하튼 예수님을 믿든 안 믿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이런 분들께 빚을 지은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저도 이분들께 아니 우리 주님께 빚진 마음으로 아프리카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우간다에 10에이커의 땅을 사서 기도원을 짓고 그 옆에 공동묘지를 만들려고 하는 것도, 물론 학생들 잘 가르쳐 훌륭한 목회자 배출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지만 그 들에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권한과 편안히 묻힐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심어주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격과 존엄성을 존중해 줄 때 비로소 나에 대한 올바른 존엄성을 알 수 있고 지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 주변에는 난민 텐트에 있다가 나와서 방황하다 혹은 이웃 나라에서 돈 벌러 왔다가 객사한 이름 모를 시체, 가출하였다가 사랑이 무엇인지 깨우치기도 전에 임신이 되어 버려져 굶주리고 병들어 쓰러진 어린 미혼모들, 구걸하다가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최소한 편안히 죽을 수 있는 그리고 짐승의 밥이 되지 않고 묻힐 수 있는 손바닥 만한 공간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주님께서 내 눈을 열어 이러한 마음속의 부담(Burden)과 신념(Conviction)을 주셔서 기도하던 중 캄팔라에 서 40마일 떨어진 Wamala 호수를 보여 주셨습니다. 겉으로는 최적의 아름다운 곳이지만 영적으로는 수천 명의 Witchcraft (잡무당) 들이 매일같이 굿을 하고 산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고 있는 우간다 악령의 심장부입니다. 수억 만리 멀리 떨어져 있는 이것에서도 지도와 사진을 펴고 그 곳을 바라보며 기도하면 전신이 긴장이 되고 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기도 용사들이자 파트너 Dr. Paul Ang, Nancy Cohen, Prophet Darius 등에게 기도 부탁을 하고 기도해 오면서 주님께서 내게 주신 비전에 그 분들을 통한 확신을 더하며 “Wamala Revival 2024” 부흥성회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호수의 머리에 해당하는 지역의 땅 10 에이커를 매입할 준비를 하면서 기도해오고 있던 어느 날, 그 Wamala 호수가 커다란 용의 모습으로 변하며, 내가 그 엄청난 용의 목을 타고 있었으며 용은 나를 물으려고 하고 있었지만 내가 자기 목을 타고 있기에 물지 못하고 입만 크게 벌리며 공포의 표호를 내 뿜고, 나는 용의 두 눈이 급소다 하며 눈을 찌르며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이 꿈은 마치 하나님께서 마치 엄청난 미디안 대군을 맞이하여 흔들리고 떨리던 기드온에게 사기 떨어진 미디안 병사들의 꿈 이야기를 통하여 확신을 가지게 되었듯이 나에게도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꿈에 본 용의 눈에 해당하는 부위의 땅 10 에이커를 사서 그 땅 중앙에 “River of Life Prayer Mountain” 과 “River of Life Resurrection Center” 를 지으려고 준비해오고 있습니다. 우선 땅 매매가 완료되면 그 곳에 울타리를 쳐서 외부인들의 출입을 방지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땅 밟기를 할 것이며, 4일 연속 부흥성회를 개최하며 낮에는 졸업식과 목사 안수식을 하려고 합니다. 부흥성회 기간 동안 5명의 미국 본교학생들을 포함한 72명의 학생들이 졸업을 하게 되며, 그 졸업생들 중 25명이 목사 안수를 받게 됩니다.
기도원 주변에는 바나나, 아보카도, 카샤바를 많이 심어서 오는 사람들마다 기도하면서 육의 양식도 충분이 취하게 할 것입니다. 또한 깊은 우물을 파서 아무도 목마르지 않고 양질의 생수를 마시게 해 드리겠습니다.
전주 한일신학교 설립자 서 서평(E. J. Shepping) 선교사님의 삶이 나에게 많은 도전과 내 신앙양심을 후벼 파 놓았습니다. 2015년 여름에 전주에서 8시에 출발하는 학교 버스를 타고 한일 신학교 도서관에 한달 이상을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아스팔트 길이 녹아내려 구두가 자꾸만 들어붙게 하는 불볕 더위에 손에 든 빙그레 아이스크림 흘러내리듯 서서평 선교사님의 삶을 내 마음속에 녹여 흘러가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프리카 선교와 강의 준비를 바로 그곳에서 하였었습니다.
조그만 도서관에는 예상하지 못하였던 귀한 자료들이 있어서 좋았고, 서 선교사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점심 때에는 신록이 우거진 길을 따라 저 아래에까지 내려가 국밥 한 그릇 먹고 올라오는 기분도 좋았고…… 후에 사당동 총신대 도서관에도 몇 일 머물렀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숨결도 아름다움도 못 느꼈습니다. 선교사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들의 기도와 희생의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후원해 주신 선교기관, 동역자들, 교우들, 친구들, 형제들, 그리고 익명의 후원자들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특히 작년 12월 24일 한국 돈 6950원을 후원해 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금액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성탄절 이브의 바쁜 와중에 우리 아프리카 선교를 잊지 않았다 는 것에 감동이 왔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신 후원금은 아프리카 선교에 귀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기도로 준비해 오다가 최근에 개설한 인도네시아 분교는 Lukas 학장의 눈부신 활약과 리더십의 힘을 얻어 자급자족의 수준을 넘어 아프리카 선교에도 도움이 될게 하려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시는 희생의 헌금은 아프리카 선교에 쓰이고 있으며, 그 혜탹을 받고있는 신학샹들이 여러분들을 위하여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내밀어준 따뜻한 희생의 손길이 주님으로 부터 더불포션(두 몫의) 축복을 맏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바쁘고 어수선한 가운데에도 새해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성숙한 연어가 태어난 곳을 향하여 되돌아오듯 동심으로 마음을 향하여 단순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감동하고 기뻐하실 수 있으시기를,
“붉은 산이 그립다” 며 죽어가던 김동인의 “붉은 산” 의 술주정뱅이 삵처럼 현실을 외면하거나 피하지 않고 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에 스마트폰에서 잠시 손을 떼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 현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담대함을 가지실 수 있으시기를,
그리고 손이 너무도 시려 양손을 가슴에 넣었다가 아랫배에 넣었다가 하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털장갑이 되어줄 수 있는 풍요롭고 여유가 있는 삶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천이십 이년 정월 구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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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1-0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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