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푼이에게 시집 온 이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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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푼이에게 시집 온 이뿐이
백만장자에게 시집가려는 여자.
눈 요기꺼리 이상의 여자를 돈의 힘으로 사려는 남자.
이를 이용하여 장사 속을 챙기려는 TV 방송국.
이 삼박자가 맞아 “백만장자의 신부감 고르기”를 합작하여 방영한 후 구설수에 오르고 특히 여성들의 항의와 “신성한 결혼을 상품화하고 오락 거리로 만드는 비도덕적 인식을 대중에게 전달케 한다”하여 호된 비판을 받았다.
주위의 입들이 혐오감으로 “얼굴도 안보고, 말도 안 해보고 결혼하려는 여자는 이해 할 수 없고, 돈의 힘으로 신부감을 사려는 남자를 팔푼이color=blue>”로 판정하는 소릴 들었다.
아마도 그들의 목적은 “부부”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혼의 궁극적 목적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르는 것”이다.(창2:24)
1+1=1이다. 수학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되지만.... 혹은 80%+20%=100% 완전이다.
서로 알지도 못하면서 돈의 연줄로 남편과 신부감을 사려는 그들은 과연 “팔푼이”인가?
글쎄, 옳은 소리 같은데도 우리 조상들을 생각하면 휴지 없이 화장실에 다녀 온 기분이다.
현대감각을 가지고 사는 ‘보통 사람들’은 서로를 메주 알, 고주 알 속속들이 다 알아보지 않고 결혼하는 경우는 미련하고 무식한 사람들의 “상식 이하의 짓”으로 안다.
그러나 가까운 우리 조상들의 경우만 봐도 본인들이 ‘시집, 장가’ 가고 싶던 말던, 상대가 코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부모들이 일방적으로 정해주는 “상식 이하의 짓”으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짝이 되어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며 “결혼의 목적과 그 과정”을 이탈하지 않았고 혹 이혼이 아닌 ‘친정으로 유배’는 갔을지언정 ‘이혼’이란 단어를 모르고 지혜롭게 살아온 선조들께 존경 해 마지않는다.
또 존 웨인이 주연한 “알라스카의 혼”이란 오래 전 영화에서는 친구와 노다지 금을 캐어 부자가 되었을 때 친구가 자기 몫의 금을 몽땅 다 주며 “신부감을 구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구 해 오는 과정의 코메디 내용으로 봐서 미국 땅에서도 얼굴도 안 본 여자를 중매(?)로 결혼이 되어 진 걸로 보인다.
아마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지역, 어느 민족이든 다 비슷한 풍습이 아니었나싶다
성경에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의 아들, 예수의 상징인 “이삭”의 경우.
아브라함의 부탁을 받은 그의 청지기가 신부감을 구하러 가서 주인의 조카 딸 아릿다운 처녀 “리브가”를 만나 “네가 나를 따라 신랑이 될 이삭에게로 가겠냐”고 했을 때 “이삭이 백만장자인 삼춘의 아들”이란 것 이외에는 이삭에 대해 아는 것도, 본 일도 없었지만 지체 없이 “YES"이었다.
한편 이삭은 청지기가 구해주는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여자를 신부로 맞고(물론 하나님의 경륜이지만) 너무나 좋아했고 그 후 이혼했단 말이 없다.(창 24:67)
꼭대기까지 더 올라 가 보자.
억만장자와도 비교 될 수 없는,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창조 끝 날 사람 “아담”을 창조한 다음 그를 보고 아주 만족 해 하셨다
그런데 그의 독처하는 것을 보니 어딘가 하나님 계획에서 좀 모자라는 “팔푼이 아담”color=blue>이 아닌가?!
하나님은 <아담의 그 모자라는 부분 20%color=blue>(이푼)를 채 울 수 있는(돕는 배필) “여자”>color=blue>를 아담에게는 의논도 않고, 보여 주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만들어 붙여 주니 “아담”은 너무도 좋아서 여자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color=blue>라 칭하리라”했다.(창2:23)
그 후에 여자 “이푼이”는 돕는 배필로써 남편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남편에게 먹게 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도왔다.
하나님이 맺어 주는 부부는 이혼이 없지만 돈으로나 돈에 끌려서, 혹은 성적 매력이나 그 외 다른 것이 목적이 되고 방법이 되어 맺어진 남녀는 서로에게 <선과 악의 AC/DC 변전기>는 되겠지만 “돕는 배필”. 부부color=blue>는 될 수 없다.
남자 편에서는 여자를 “나의 뼈와 살이고 나를 도와주는 존재”로 봐야 하고, 여자 편에서는 “남자가 팔푼이color=blue>로. 사모의 대상color=blue>으로, 나를 다스리는 바보 온달color=blue>”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부부는 서로를 통(마찰)하여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 성장 할 수 있도록 System화되어 있다.
남자는 자신이 “팔푼이”라는 걸 알 때 “이푼이”의 필요와 가치를 알고 시도 때도 없이 “이푼아! 이푼아!”를 부르며 도움을 청하다가 어느 날 혓바닥에 티눈이 생겨 잘못 발음되어 “이푼이”가 “이쁜이”color=blue>로 되어 진다.
“완전한 남과 여자가 만나 부부로 되라”가 아니라
팔푼이와 이푼이가 만나 “온 푼이. 완전한 부부로 되어 가라”color=blue>는 예수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리고 오늘 날 ‘교회’를 “예수의 신부”라고 한다.
“성도여! 신랑 예수의 신부들이여! 신랑을 본 일이 있습니까? 언제 누가 당신을 예수께 중매했던가요?”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color=blue>이로다”(고후11:2).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color=blue>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1:8)
나의 마누라는 “시집가는 날”이란 시를 써 놓고 본 일도 없는 신랑 예수를 기다리며 Exciting하고 있다.
-- 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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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혼인보다 이혼 더 흔한데
당신은 나의 의(義)가 되시어 영원을 약속하며
은혜로, 긍휼로, 진실로 내게 장가드시니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이 깜짝 사랑을!
저 높은 하늘까지 저 깊은 계곡까지
끝없이 소문 날 이 사랑 이야기
오! 내 사랑, 나의 님, 예수!
나는 당신께 감사와 찬양, 존귀, 영광, 경배 영원히 하며
영생 할 시집가는 날!
황금 길, 진주 문, 맨션에서
천군 천사 시집식구 축가 속에
시(詩)와 평강과 희락의 시갓 집!
어떻게 기다려 시집가는 날 ! color=red>
(호 2:19,20)
아내의 글에서
백만장자에게 시집가려는 여자.
눈 요기꺼리 이상의 여자를 돈의 힘으로 사려는 남자.
이를 이용하여 장사 속을 챙기려는 TV 방송국.
이 삼박자가 맞아 “백만장자의 신부감 고르기”를 합작하여 방영한 후 구설수에 오르고 특히 여성들의 항의와 “신성한 결혼을 상품화하고 오락 거리로 만드는 비도덕적 인식을 대중에게 전달케 한다”하여 호된 비판을 받았다.
주위의 입들이 혐오감으로 “얼굴도 안보고, 말도 안 해보고 결혼하려는 여자는 이해 할 수 없고, 돈의 힘으로 신부감을 사려는 남자를 팔푼이color=blue>”로 판정하는 소릴 들었다.
아마도 그들의 목적은 “부부”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혼의 궁극적 목적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르는 것”이다.(창2:24)
1+1=1이다. 수학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되지만.... 혹은 80%+20%=100% 완전이다.
서로 알지도 못하면서 돈의 연줄로 남편과 신부감을 사려는 그들은 과연 “팔푼이”인가?
글쎄, 옳은 소리 같은데도 우리 조상들을 생각하면 휴지 없이 화장실에 다녀 온 기분이다.
현대감각을 가지고 사는 ‘보통 사람들’은 서로를 메주 알, 고주 알 속속들이 다 알아보지 않고 결혼하는 경우는 미련하고 무식한 사람들의 “상식 이하의 짓”으로 안다.
그러나 가까운 우리 조상들의 경우만 봐도 본인들이 ‘시집, 장가’ 가고 싶던 말던, 상대가 코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부모들이 일방적으로 정해주는 “상식 이하의 짓”으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짝이 되어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며 “결혼의 목적과 그 과정”을 이탈하지 않았고 혹 이혼이 아닌 ‘친정으로 유배’는 갔을지언정 ‘이혼’이란 단어를 모르고 지혜롭게 살아온 선조들께 존경 해 마지않는다.
또 존 웨인이 주연한 “알라스카의 혼”이란 오래 전 영화에서는 친구와 노다지 금을 캐어 부자가 되었을 때 친구가 자기 몫의 금을 몽땅 다 주며 “신부감을 구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구 해 오는 과정의 코메디 내용으로 봐서 미국 땅에서도 얼굴도 안 본 여자를 중매(?)로 결혼이 되어 진 걸로 보인다.
아마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지역, 어느 민족이든 다 비슷한 풍습이 아니었나싶다
성경에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의 아들, 예수의 상징인 “이삭”의 경우.
아브라함의 부탁을 받은 그의 청지기가 신부감을 구하러 가서 주인의 조카 딸 아릿다운 처녀 “리브가”를 만나 “네가 나를 따라 신랑이 될 이삭에게로 가겠냐”고 했을 때 “이삭이 백만장자인 삼춘의 아들”이란 것 이외에는 이삭에 대해 아는 것도, 본 일도 없었지만 지체 없이 “YES"이었다.
한편 이삭은 청지기가 구해주는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여자를 신부로 맞고(물론 하나님의 경륜이지만) 너무나 좋아했고 그 후 이혼했단 말이 없다.(창 24:67)
꼭대기까지 더 올라 가 보자.
억만장자와도 비교 될 수 없는,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창조 끝 날 사람 “아담”을 창조한 다음 그를 보고 아주 만족 해 하셨다
그런데 그의 독처하는 것을 보니 어딘가 하나님 계획에서 좀 모자라는 “팔푼이 아담”color=blue>이 아닌가?!
하나님은 <아담의 그 모자라는 부분 20%color=blue>(이푼)를 채 울 수 있는(돕는 배필) “여자”>color=blue>를 아담에게는 의논도 않고, 보여 주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만들어 붙여 주니 “아담”은 너무도 좋아서 여자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color=blue>라 칭하리라”했다.(창2:23)
그 후에 여자 “이푼이”는 돕는 배필로써 남편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남편에게 먹게 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도왔다.
하나님이 맺어 주는 부부는 이혼이 없지만 돈으로나 돈에 끌려서, 혹은 성적 매력이나 그 외 다른 것이 목적이 되고 방법이 되어 맺어진 남녀는 서로에게 <선과 악의 AC/DC 변전기>는 되겠지만 “돕는 배필”. 부부color=blue>는 될 수 없다.
남자 편에서는 여자를 “나의 뼈와 살이고 나를 도와주는 존재”로 봐야 하고, 여자 편에서는 “남자가 팔푼이color=blue>로. 사모의 대상color=blue>으로, 나를 다스리는 바보 온달color=blue>”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부부는 서로를 통(마찰)하여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 성장 할 수 있도록 System화되어 있다.
남자는 자신이 “팔푼이”라는 걸 알 때 “이푼이”의 필요와 가치를 알고 시도 때도 없이 “이푼아! 이푼아!”를 부르며 도움을 청하다가 어느 날 혓바닥에 티눈이 생겨 잘못 발음되어 “이푼이”가 “이쁜이”color=blue>로 되어 진다.
“완전한 남과 여자가 만나 부부로 되라”가 아니라
팔푼이와 이푼이가 만나 “온 푼이. 완전한 부부로 되어 가라”color=blue>는 예수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리고 오늘 날 ‘교회’를 “예수의 신부”라고 한다.
“성도여! 신랑 예수의 신부들이여! 신랑을 본 일이 있습니까? 언제 누가 당신을 예수께 중매했던가요?”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color=blue>이로다”(고후11:2).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color=blue>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1:8)
나의 마누라는 “시집가는 날”이란 시를 써 놓고 본 일도 없는 신랑 예수를 기다리며 Exciting하고 있다.
-- 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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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혼인보다 이혼 더 흔한데
당신은 나의 의(義)가 되시어 영원을 약속하며
은혜로, 긍휼로, 진실로 내게 장가드시니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이 깜짝 사랑을!
저 높은 하늘까지 저 깊은 계곡까지
끝없이 소문 날 이 사랑 이야기
오! 내 사랑, 나의 님, 예수!
나는 당신께 감사와 찬양, 존귀, 영광, 경배 영원히 하며
영생 할 시집가는 날!
황금 길, 진주 문, 맨션에서
천군 천사 시집식구 축가 속에
시(詩)와 평강과 희락의 시갓 집!
어떻게 기다려 시집가는 날 ! color=red>
(호 2:19,20)
아내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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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3-2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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