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그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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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세례에 관한 글을 두 번 올렸다 첫 번째 글에서는 헬라어 “밥티스마”에 관해 그 말뜻이
침례가 아니라 세례라는 걸 성경을 토대로 밝혔고 두 번째 글은 영어 Baptism이 1611년
흠정역을 번역한 학자들이 신조어로 만들어서 그 말뜻이 대외적으로 침례라고 밝힘으로 보고
1610년 까지를 전반부로 보고 1611년부터 현재 까지를 후반부로 보고 말을 한다면 우리는
Baptism 이 1610 년까지는 세례라는 의미로 쓰였다는 사실이다 그 걸 증명한 글이 두 번째
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가 침례가 아닌 세례라는 걸 다시 한번 밝힌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라는 문구로 이문구가 삼위일체의 근간이 된다는 주장을 잠재우려는
코니비어는 28장 19절이 이문구가 삼위일체를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여러 각도로 노력을 해봤지만 리겐바하의 연구결과 후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모두가 본 절은
원래부터 존재하던 문구로 간주된다고 입이 모아졌다 하지만 그 외의 신약에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고 나온다 행2:38 8:16 19:5 갈 3:27 롬6:3 고전 1:13~15 등의 구절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행전 19장 1절부터 7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
5절엘 보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다시 받는 건 요한의 세례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 받는
세례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성경은 말해 주고 있다 즉 다시 말하면 예수의 요단강 세례는
신약시대의 세례완 영 다른 세례라는 의미로 요한의 세례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마가복음 1장 9절에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요한복음 3장 23절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맑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행전 8장 38절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행전 8장 39절 “둘 다 물에서 올라 갈 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상기의 구절들이 침례의 근간이 된다는 주장으로 물과 연관된 세례의 용례다 그렇지만 마가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완 다른 유대교의 결례행위이니 비교가 되지 못하는 비교고 요한의
경우는 세례를 침례로 바꾸지 않는 한은 분명한 세례가 맞다 행전도 마찬가지다 전반기엔
어느 구절을 보드라도 그 당시에 사용된 단어의 용례로 침례란 말은 전혀 없다 이렇듯 세례란
헬라말이 1611년이 지난 후반기의 Baptism 이 침례라는 의미로 신조 되었다 하나 그 새로
만들어진 단어가 1600 년을 거슬러 올라가 옛날에 세례란 말을 여반장으로 침례로 바꾼단
말인가 지나가던 개가 웃고 지나갈 일이다 바른 이해 바란다
침례가 아니라 세례라는 걸 성경을 토대로 밝혔고 두 번째 글은 영어 Baptism이 1611년
흠정역을 번역한 학자들이 신조어로 만들어서 그 말뜻이 대외적으로 침례라고 밝힘으로 보고
1610년 까지를 전반부로 보고 1611년부터 현재 까지를 후반부로 보고 말을 한다면 우리는
Baptism 이 1610 년까지는 세례라는 의미로 쓰였다는 사실이다 그 걸 증명한 글이 두 번째
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가 침례가 아닌 세례라는 걸 다시 한번 밝힌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라는 문구로 이문구가 삼위일체의 근간이 된다는 주장을 잠재우려는
코니비어는 28장 19절이 이문구가 삼위일체를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여러 각도로 노력을 해봤지만 리겐바하의 연구결과 후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모두가 본 절은
원래부터 존재하던 문구로 간주된다고 입이 모아졌다 하지만 그 외의 신약에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고 나온다 행2:38 8:16 19:5 갈 3:27 롬6:3 고전 1:13~15 등의 구절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행전 19장 1절부터 7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
5절엘 보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다시 받는 건 요한의 세례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 받는
세례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성경은 말해 주고 있다 즉 다시 말하면 예수의 요단강 세례는
신약시대의 세례완 영 다른 세례라는 의미로 요한의 세례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마가복음 1장 9절에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요한복음 3장 23절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맑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행전 8장 38절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행전 8장 39절 “둘 다 물에서 올라 갈 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상기의 구절들이 침례의 근간이 된다는 주장으로 물과 연관된 세례의 용례다 그렇지만 마가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완 다른 유대교의 결례행위이니 비교가 되지 못하는 비교고 요한의
경우는 세례를 침례로 바꾸지 않는 한은 분명한 세례가 맞다 행전도 마찬가지다 전반기엔
어느 구절을 보드라도 그 당시에 사용된 단어의 용례로 침례란 말은 전혀 없다 이렇듯 세례란
헬라말이 1611년이 지난 후반기의 Baptism 이 침례라는 의미로 신조 되었다 하나 그 새로
만들어진 단어가 1600 년을 거슬러 올라가 옛날에 세례란 말을 여반장으로 침례로 바꾼단
말인가 지나가던 개가 웃고 지나갈 일이다 바른 이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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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3-11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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