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루시아스와 원근이 없는 그림 이사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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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복음 4장 16절부터 20 절까지는 예수님이 읽으신 내용을 그대로
옮겨오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니" 라고 적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읽으신 이사야 본문을 옮겨 오겠다..
이사야 61장 1절부터 3절까지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 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 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지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하략
왜 주님은 성경을 읽다가 중간에서 그만 두셨을까 ?
베드로 전서 3장 11,12절 까지를 살펴보자 “악에서 떠난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12절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 하는 자들을 향 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이글과 대비되는 시편을 살펴보자 시편 34편
15절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
16절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 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 도다”
17절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 셨도다”
베드로의 말씀은 시편 34편 15절과 16절 말씀 까지만 인용을 하시고 17절 말씀은 건너뛰셨다
누가의 글에서도 베드로의 글에서도 구약을 인용한 사실은 인정 하지만 두 문장 공히 전반
부만 올리고 후반부는 생략을 하였다 이사야서나 시편의 작가의 눈에는 두 문장이 지닌
이루어질 일들이 한 선상에 보이기 때문에 두 사건을 일직선에 올려놓고 문장을 끝을 내었다
하지만 전능의 예수 그리스도의 섭리는 이와 달리 앞에서 일어날 일과 저 먼(인간의 시간)
훗날 일어날 일들이 훤히 보이시기 때문에 일직 선 상에 있는 두 사건은 은혜의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과 재림 때 마지막 때에 일어 날일들을 분명하게 분리 한다는 의미로 신약성경
작가들은 구약의 문장들을 구분 할 줄 알고 있었든 것은 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스를 알고 있었고 또한 파루시아스에 관한한 믿음이 대단 하였다는 증거로 누가와
베드로의 입을 빌려 우리 인간들 즉 피조물들에게 교육을 시키기 위함이다
옮겨오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니" 라고 적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읽으신 이사야 본문을 옮겨 오겠다..
이사야 61장 1절부터 3절까지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 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 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지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하략
왜 주님은 성경을 읽다가 중간에서 그만 두셨을까 ?
베드로 전서 3장 11,12절 까지를 살펴보자 “악에서 떠난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12절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 하는 자들을 향 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이글과 대비되는 시편을 살펴보자 시편 34편
15절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
16절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 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 도다”
17절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 셨도다”
베드로의 말씀은 시편 34편 15절과 16절 말씀 까지만 인용을 하시고 17절 말씀은 건너뛰셨다
누가의 글에서도 베드로의 글에서도 구약을 인용한 사실은 인정 하지만 두 문장 공히 전반
부만 올리고 후반부는 생략을 하였다 이사야서나 시편의 작가의 눈에는 두 문장이 지닌
이루어질 일들이 한 선상에 보이기 때문에 두 사건을 일직선에 올려놓고 문장을 끝을 내었다
하지만 전능의 예수 그리스도의 섭리는 이와 달리 앞에서 일어날 일과 저 먼(인간의 시간)
훗날 일어날 일들이 훤히 보이시기 때문에 일직 선 상에 있는 두 사건은 은혜의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과 재림 때 마지막 때에 일어 날일들을 분명하게 분리 한다는 의미로 신약성경
작가들은 구약의 문장들을 구분 할 줄 알고 있었든 것은 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스를 알고 있었고 또한 파루시아스에 관한한 믿음이 대단 하였다는 증거로 누가와
베드로의 입을 빌려 우리 인간들 즉 피조물들에게 교육을 시키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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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3-28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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