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예정 그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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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예지에 관한한은 너머간다
전편에 이어 예정과 전도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이어 가겠다.다시 한 번 정의를 내리고 져 하는 부분은
예정은 인간의 최종목적지는 태어나기 전에 그것도 만세전에 정해 졌다는 것이다. 여기 까지만 생각
하자 밥 먹는 일 똥 싸는 일도 예정 되었냐고 묻는 말 사양 한다 또한 예정된 목적지를 바꿀 수 있다는
말도 거절 한다 일단 정해진 목적지는 권위자이시고 만유의 주이신 분만이 바꿀 수 있는 일이지 인간
스스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이나 억지 주장은 고소를 금치 못하는 치기어린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정이란 인간이 인간의 자유의지로 바꾸어지는 영역의 섭리가 아니라는 전제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왜 전도라는 걸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당연히 생기는 이치다 나 산화비 역시 성경을 처음
배울 때 똑같은 질문을 스승님께 한 적이 있다. 그 답은 전도 하라니까. 땅 끝까지 이르러 말씀의 증거
즉 전도를 하라 시는 명령 때문이라. 란 답을 듣고 "네"라는 답은 했을지언정 불만이 많았던 것은 사실
이다. 그 당시 나의 신념은 이율배반, 자가당착 뭐 이런 거 였다. 가랑비에 옷 적시듯 야금야금
말씀이 내 몸을 적시고 지금은 환하게 보이는 말씀의 보배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을까 모골이
송연해지는 추억이다. 여기까지는 대충의 예정의 설명이다 그래서 예정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자유의지로 이야기를 넘기자
요약
예정이란 만세전에 우리(기독교인)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가 정해진 걸 말 한다 (천국이나 지옥)
예정이란 하나님의 권위며 주권이다
예정이란 하나님의 전능의 산물이다
하나님이 권위의 주권자가 아니시라면 그는 하나님이 아니시란 말이다
하나님은 권위의 주권을 행사 하실 때 자유의지를 침해하거나 악을 행하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의무가 없으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 의무가 없으시다 다만 자발적 행위이시다
여태까지의 이야기의 중심으로 생각하면 대충 이런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자유의지란 자칫 잘못 보면 예정이 그림자를 드리운 인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일이란 것
처 럼 보일 수도 있는 영역이다. 하나님은 예정이란 각본을 쓰시고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시나리오
대로 움직이는 배우에 지나지 않는 것 처 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자유의지란
무엇인가를 정의를 하려고 한다. "자유 의지란 사건의 선입견이나 성향, 또는 특정한 상황에서 기질
없이 선택하는 능력이다" 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결국 "좌우지간을 넘어 중립으로 편향 없는 행동"
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외적으로 강제가 배제된 선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말은 표면적으론 논리적이지만 우선 엄중한 중립적 위치에서 아무런 성향도 배제 된 체 선택을 한다
면 도대체 그 선택은 왜 하느냐는 질문에 봉착을 하게 된다. 왜 선택을 할까 ? 사실 선택의 이유가
없이 선택을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단지 우연히 발생한다면 그 선택은
선악의 판단이 모호해진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에서 그 동기를 보시기 때문이다
창50:20절에 요셉이 애굽에서 열 명의 형들을 만났을 때 "형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걸
선으로 바꾸시었다"고 말 한다 . 이런 경우 형들의 자유의지란 뭐가 남았을까 ? 이렇게 자유의지란
하나님 앞에선 자유의지로 남는 게 아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요셉의 형들의 동기를 보셨기 때문에
형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분명하게 요셉은 예정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이유가 뭐냐고 묻지를 말고 성경에서 찾길 바란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자유의지가 전 적으로 중립 적
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 수도 없이 그 선택은 멈추어야 하게 된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실론 적 측면에서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한다. 자유의지란 "선택하는 마음"으로만
국한을 시키자. 이 말은 우리는 선택하려는 어떤 것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원하는 것을 고르는 마음의 능력으로도 정의 할 수 있다. 이토록 자유의지란
결국 인간의 욕망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욕망은 동기부여나 선택의 갈림길에서 아주 중요한
결정 적 구실을 한다.
정리를 하자 어느 누가 즉 어이구나 노아처럼 갖가지 악이란 악은 모두 저지르고 천국엘 가고 싶다고
자유의지를 빙자해 천국을 선택 했다고 치자 이 악한 자들이 정녕 천국엘 갈 수 있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결코 이르지 못 한다 왜냐면 택정을 받지 못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기독교인이 살면서 많은 잘못을 해서 본인의 양심상 나는 지옥으로 가야 한다고 지옥을
선택했다고 치자 그는 정녕 자유의지로 고른 지옥엘 갈까 아니면 하나님이 택정하신 천국민이 될까?
이렇게 예정과 자유의지란 이런 관계다.
전도는 왜 해야 할까 이토록 자유의지란 자신의 욕망의 발로가 자유의지로 정의 되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이런 자신의 욕망을 정리를 해야 하려면 어떤 근거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인간은
배워야 하고 배우려면 들어야 하고 들으려는 인간들이 자연적으로 생기니까 우리는 듣기를
원하는 인간들의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성경적 지식을 전해주어야 하고 말씀을 증거 하는
일들을 하여야만 한다 이런 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라 시는 전도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정하신 인간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과정마저 예정하시어 우리는 그 예정에
맞추어 전도라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전도는 하나님의 예정을 이루는 일인 것이다
전편에 이어 예정과 전도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이어 가겠다.다시 한 번 정의를 내리고 져 하는 부분은
예정은 인간의 최종목적지는 태어나기 전에 그것도 만세전에 정해 졌다는 것이다. 여기 까지만 생각
하자 밥 먹는 일 똥 싸는 일도 예정 되었냐고 묻는 말 사양 한다 또한 예정된 목적지를 바꿀 수 있다는
말도 거절 한다 일단 정해진 목적지는 권위자이시고 만유의 주이신 분만이 바꿀 수 있는 일이지 인간
스스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이나 억지 주장은 고소를 금치 못하는 치기어린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정이란 인간이 인간의 자유의지로 바꾸어지는 영역의 섭리가 아니라는 전제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왜 전도라는 걸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당연히 생기는 이치다 나 산화비 역시 성경을 처음
배울 때 똑같은 질문을 스승님께 한 적이 있다. 그 답은 전도 하라니까. 땅 끝까지 이르러 말씀의 증거
즉 전도를 하라 시는 명령 때문이라. 란 답을 듣고 "네"라는 답은 했을지언정 불만이 많았던 것은 사실
이다. 그 당시 나의 신념은 이율배반, 자가당착 뭐 이런 거 였다. 가랑비에 옷 적시듯 야금야금
말씀이 내 몸을 적시고 지금은 환하게 보이는 말씀의 보배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을까 모골이
송연해지는 추억이다. 여기까지는 대충의 예정의 설명이다 그래서 예정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자유의지로 이야기를 넘기자
요약
예정이란 만세전에 우리(기독교인)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가 정해진 걸 말 한다 (천국이나 지옥)
예정이란 하나님의 권위며 주권이다
예정이란 하나님의 전능의 산물이다
하나님이 권위의 주권자가 아니시라면 그는 하나님이 아니시란 말이다
하나님은 권위의 주권을 행사 하실 때 자유의지를 침해하거나 악을 행하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의무가 없으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 의무가 없으시다 다만 자발적 행위이시다
여태까지의 이야기의 중심으로 생각하면 대충 이런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자유의지란 자칫 잘못 보면 예정이 그림자를 드리운 인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일이란 것
처 럼 보일 수도 있는 영역이다. 하나님은 예정이란 각본을 쓰시고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시나리오
대로 움직이는 배우에 지나지 않는 것 처 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자유의지란
무엇인가를 정의를 하려고 한다. "자유 의지란 사건의 선입견이나 성향, 또는 특정한 상황에서 기질
없이 선택하는 능력이다" 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결국 "좌우지간을 넘어 중립으로 편향 없는 행동"
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외적으로 강제가 배제된 선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말은 표면적으론 논리적이지만 우선 엄중한 중립적 위치에서 아무런 성향도 배제 된 체 선택을 한다
면 도대체 그 선택은 왜 하느냐는 질문에 봉착을 하게 된다. 왜 선택을 할까 ? 사실 선택의 이유가
없이 선택을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단지 우연히 발생한다면 그 선택은
선악의 판단이 모호해진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에서 그 동기를 보시기 때문이다
창50:20절에 요셉이 애굽에서 열 명의 형들을 만났을 때 "형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걸
선으로 바꾸시었다"고 말 한다 . 이런 경우 형들의 자유의지란 뭐가 남았을까 ? 이렇게 자유의지란
하나님 앞에선 자유의지로 남는 게 아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요셉의 형들의 동기를 보셨기 때문에
형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분명하게 요셉은 예정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이유가 뭐냐고 묻지를 말고 성경에서 찾길 바란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자유의지가 전 적으로 중립 적
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 수도 없이 그 선택은 멈추어야 하게 된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실론 적 측면에서 다시 정의를 내려야 한다. 자유의지란 "선택하는 마음"으로만
국한을 시키자. 이 말은 우리는 선택하려는 어떤 것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원하는 것을 고르는 마음의 능력으로도 정의 할 수 있다. 이토록 자유의지란
결국 인간의 욕망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욕망은 동기부여나 선택의 갈림길에서 아주 중요한
결정 적 구실을 한다.
정리를 하자 어느 누가 즉 어이구나 노아처럼 갖가지 악이란 악은 모두 저지르고 천국엘 가고 싶다고
자유의지를 빙자해 천국을 선택 했다고 치자 이 악한 자들이 정녕 천국엘 갈 수 있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결코 이르지 못 한다 왜냐면 택정을 받지 못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기독교인이 살면서 많은 잘못을 해서 본인의 양심상 나는 지옥으로 가야 한다고 지옥을
선택했다고 치자 그는 정녕 자유의지로 고른 지옥엘 갈까 아니면 하나님이 택정하신 천국민이 될까?
이렇게 예정과 자유의지란 이런 관계다.
전도는 왜 해야 할까 이토록 자유의지란 자신의 욕망의 발로가 자유의지로 정의 되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이런 자신의 욕망을 정리를 해야 하려면 어떤 근거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인간은
배워야 하고 배우려면 들어야 하고 들으려는 인간들이 자연적으로 생기니까 우리는 듣기를
원하는 인간들의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성경적 지식을 전해주어야 하고 말씀을 증거 하는
일들을 하여야만 한다 이런 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라 시는 전도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정하신 인간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과정마저 예정하시어 우리는 그 예정에
맞추어 전도라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전도는 하나님의 예정을 이루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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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4-1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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