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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난한 여행 / 한용섭

추억이라는 열차에 동전을 넣는다
좌석표에는 몇 가지 이름이 있다
아픔, 미련, 향수, 고독, 가난, 열정, 웃음
추억이라는 이 열차에는 그래서
일등석이 없다
모든 좌석들이 희미하게 열려진
풍경들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흔들거리며 추억의 깊이까지 저려온다
어두운 터널을 두 개를 지나서야
승무원이 추억을 검표하러 걸어오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멈추어야 할 정류장을 지나
너무 멀리까지 추억을 보고 오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의 추억은 가난했다
매일 하루하루가 그렇게 세상에 빚을 졌다
그런 나의 여윈 추억이 검표원에게 건네진다
그는 나에게 미련이라는 좌석으로
옮겨 앉으라고 말한다
왜 추억은 향기가, 웃음이, 침묵이
더욱 간절했던 것일까?
깊은 잠이 온다
추억을 사랑했던 지친 피곤들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이제 막 오늘이 어제라는 추억의 입구를 지나며,
아주 긴 눈물이 흐르고 있다
멈추어야 할 정류장을 벌써 두 정거장이나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

-레스토랑의 추억

지금으로 부터 60 여년 전이던가
내 인생의 211번째 녀인네 빈애를(성은 골가) 처음 만나던 날..

명동인가 종로인가 그곳이 지금도 어느 동네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한 가닥 한다는 1% 레스토랑으로 갔었다.

나야 당시에는 레스토랑은 언감생심, 동네 분식집이나 들락거렸던 프로박테리아 였고
지금도 그런 레스토랑을 갔었다는 것이 꿈이런가 하노라..

웨이터가 메뉴판을 내놨는데 당최 꼬부랑글씨에 숨이 꽉 막히고
정신차려 자세히 보니 아는 메뉴라고는 그나마 다행스럽게 돈까스 하나 있었다.

분식집에서 라면이나 떡볶이 오뎅이나 사먹었고
제일 좋고 비싼 메뉴가 돈까스가 있었던 기억만 있었다.

나는 돈까스를 시켰다.
그런데 웨이터가 말했다.

빵을 하시겠습니까?  밥을 하시겠습니까?
음마야~ 나야 주는데로 먹지, 뭘 그런걸 물어보냐

하지만 학창 생활을 객관식 찍기 하나로 한번도 낙제없이 무난히 넘긴 나는
두번 생각도 하지 않고 밥주세요~ 했다.

그런데 웨이터가 또 말했다.
스프는 무엇으로 드릴까요?

음마야~ 이번엔 주관식이네
심각했다..

헌데 내가 누구냐, 머리결만 좋은 내 머리에 번개처럼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당시 테레비에 한참 광고를 하던 바로 그 스프..

오뚜기 스프 주세요~ 했다.

난 지금도 빈애가 왜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시켜논 음식도 안먹고 나를 떠나 버렸는지를 잘 모르겠다.
(덕분에 나혼자 빈애 몫까지 2인분 든든하게 먹고 졸려서 혼났었다)


운명의 그날..레스토랑에 처음 들어가 빈애와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이 음악이 흘렀고
난 빈애에게 베토벤의 운명은 언제 들어도 좋네요~ 했고 빈애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금은 베토벤의 운명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 아직도 무슨 음악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추천 5

작성일2020-02-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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