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신약성경이 말하는 십일조
페이지 정보
산화비1관련링크
본문
예수님 탄생후로 넘어와 계속 유지된 십일조에 관한 신약성경 구절은 도합 4 번
나온다 이쯤 되면 왜 4번이냐 3번이지 무식한 소리 하고 있다고 악악거릴
이단들 참 많을 거다 하지만 정확히 4번 나오는 것 맞다 우선 마태복음 23장
23절 누가복음 11장 42절 그리고 18장 12절 그리고 히브리서 7장 5절이다
원어로는 "아포데카토오"라는 단어다 먼저 누가복음 18장 12절을 살피자
"나는 이례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라고 나온다
이 문장에서 재미난 단어와 눈여겨 살펴야 할 단어가 각각 있다 먼저 우리말
"이례"라고 번역된 원어는 "삽바투"라는 단어로 히브리어 안식이라는 의미의
원어 "솹바트"의 헬라어 음역으로 안식일에서 다음 안식일까지라는 의미의
7일을 의미한다는 뜻으로 일주일이라는 의미로 번역된 단어다 다음 눈여겨볼
단어는 우리말 성경엔 번역이 누락된 "판타"라는 단어가 있는데 목적격 중성
복수로 사용된 형용사다 우리말로는 모든 이라고 번역이 되는 단어로 그냥
소득이 아니라 모든 소득이라고 번역이 되어야 하는 단어다 보통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에 하루 속죄일엔 금식을 하지만 또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라고
명시된 십일조의 체납 품을 넘어서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친다고 고백을
하며 금식도 일 년에 100 번을 넘게 한다는 성구로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바리새인들은 그들만의 십일조의 법을 따로 만들고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한건 사실이지만 이런 행위로 인해 그리스도께 화있을 거라는 질책을 듣게
된다 마태복음 23장23절의 내용과 대응되는 누가 복음 11장 42절 말씀을 살펴
보자 "화 있을 찐 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 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 찌니라"라는 말씀으로 마태복음엔 버렸도다. 라는 단어를
과거 능동태 동사로 사용했지만 누가복음엔 버리는 도다. 라고 현재형 동사로
사용된점이 약간 차이가 나는 문장으로 큰 틀에서 보면 의미엔 아무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본절의 중심 포인트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세 가지 화를 선포하시는 말씀이고 물론
의미 전달의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우리말 너희로 번역된 "휘민"이란 단어를 반복
적으로 사용하므로 강조를 의미 한다 원래 율법은 토지의 소산과 목축의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데 바리새인들은 목축의 십일조는 생략해 버리고 토지의 소산은 물론
십일조에 대상 품목이 아닌 박하와 운향의 십일조마저 드리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공의와 하나님의 대한 사랑은 버렸기 때문에 화를 받는 다는 말이다 이때 공의로
번역된 원어는 "크리신"인데 이 공의와 사랑이라는 단어 "아가펜"의 사이에 등위 접속사
카이를 놓으므로 공의와 사랑은 같은 등급으로 놓는 다는 의미다 하나 살짝 짚고 넘어
갈 것은 "카이"를 앞뒤로 "크리신"과"아가펜"이라는 두개의 명사에 두 명사 공히
관사 "텐"이라는 관사가 있어 "샤프"의 법칙이 적용되지 못 하는 문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 시는 말씀의 진리를 살펴보자
우리말 버리는 도다 로 번역된 원어는 "파레르케스데"인데 원뜻은 지나치다
비켜가다 란 의미로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나쳐 가거나 비켜 간다. 시는 지적이다
이렇게 율법을 행하지 않음을 나무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꾸지람과 율법을
제대로 행하라 시는 말씀이며 율법의 정신으로 돌아가 형식주의적 율법정신은
버리고 진심으로 바치는 십일조의 정신마저 저버리지 말라 시는 말씀이지만 이
규례는 어디 까지나 구약의 문제고 오순절 이후에 신약으로 들어오며 십일조의
규례는 폐기가 된다 그 문제는 후편에 다시 짚고 넘어가자
후편
십일조는 은혜시대인 신약에서는 이미 폐기된 율법이다.
바울 사도는 십일조를 마땅히 하나님께 내어 놓으라는 말을
단 한차례도 한 사실이 없다 .. 혹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언급을 회피했을 거라고들 말을 하지만 유대교 정경 39권에서
그토록 누누이 십일조 사상을 설파한 사례로 본다면 매우 이례적 기록이다.
반면 있는 자들에게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이웃을 도우라고 했지
단 한번도 재산을 처분한 돈으로 헌금을 하라고 말한 적이 단 한차례도 없다.
오히려 손수 천막생활을 하며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서 쓰는 모범을 보인
사도로 만일 그가 십일조를 받았다면 그토록 궁핍한 삶 속에서 전도를
했겠는가는 미루어 짐작이 가는 일이다.
바울은 십일조와 예물과 헌금을 폐하고 다만 연보란 말만 몇 번에 걸쳐서
사용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우리말 연보로 번역된 원어는 보통 네 가지 정도
인데 모두가 하나 같이 헌금과는 상이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다
좀 길고 지루 했지만 십일조의 바른 이해를 위해 몇 번에 걸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하지만 작금의 교회는 공룡의 몸통같이 이미 부풀어 커진 상태이니 그 교회를
운영하는데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 이 많은 돈은 물론 교인들 몫이지만
성경에 반하지 않는 바른 연보로 자기가 속해 있는 교회의 번영을 위해 스스로
연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자기 수입의 십의 일을 하던 십의 오를 하던 본인
스스로 원하고 능력이 닿는 한은 애써 힘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교회에게 속아서 바른 연보가 아닌 이미 폐해진 십일조를 한다는 것은
본의 아니게 예수님의 대속의 죄의 보혈을 모두 무효화 시키는 커다란 범죄
행위를 하는 것이다 아울러 십일조의 신약시대의 발자취를 살짝 짚고 십일조
이야기를 맺으려 한다.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는 토지의 소산에서 목축의 소산에서
하여야 한다는 십일조의 율법을 무시하고 그들은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했다는
성경기록을 보면 아마 바리새인들이 십일조를 변질을 시킨 첫 번째 죄인들이라
십일조를 잘 하면 악한 자가 지옥에서 받는 열두 달 동안의 형벌을 면제 된다고 했고
중세에 와서는 십일조가 면죄부로 사용이 되기도 하였다 반면에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인정되며 주후 585 년 마콘 교부 회의에서 교부 암브로스 그렇게 주장하든
십일조를 채택하였고 800 년에 정식 법령으로 공포까지 된 적이 있다 결국 13세기
까지는 십일조는 토지의 소산물 이었던 게 인증되는 이유는 그 당시 까지는 곡식을
보관하든 십일조 곳간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십일조 곳간이
철거되며 토지의 소산에서 모든 소산으로 십일조가 확대 되며 지금에 까지 이르는
것이다 스코트랜드에선 교회 수입의 육분의 일이 목회자의 몫으로 정해진 역사가 있다
하지만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중 마태복음 17장 26절 말씀을
살펴보자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 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인데 예수께서 시몬에게 세상 임금이 관세와 정세를 누구에게 받느냐고
물으시는 질문에 베드로는 타인에게 받는다고 대답을 했고 그 답 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들들은 세를 면한다 하신 말씀 이다 물론 아들이 아닌 백성들은 마땅히 세를 내어야만
한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결론은 하나님의 아들들에겐 세를 면하여 주셨지만 백성들의 세는 면하신 적이 없다
그 연유로 그리스도교인들이 하나님의 자식이어든 십일조의 율법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파기 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아니고 여호와의 증인인 사이비 유대교인인
여증들은 율법대로 십일조를 바쳐야 하는 것이다
신약의 십일조의 복잡한 왜곡된 역사와 교회 중흥의 목적으로 활용된 것이 십일조 이지만
분명 신약의 십일조는 세를 면하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정면 도전 하는 일이다
나온다 이쯤 되면 왜 4번이냐 3번이지 무식한 소리 하고 있다고 악악거릴
이단들 참 많을 거다 하지만 정확히 4번 나오는 것 맞다 우선 마태복음 23장
23절 누가복음 11장 42절 그리고 18장 12절 그리고 히브리서 7장 5절이다
원어로는 "아포데카토오"라는 단어다 먼저 누가복음 18장 12절을 살피자
"나는 이례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라고 나온다
이 문장에서 재미난 단어와 눈여겨 살펴야 할 단어가 각각 있다 먼저 우리말
"이례"라고 번역된 원어는 "삽바투"라는 단어로 히브리어 안식이라는 의미의
원어 "솹바트"의 헬라어 음역으로 안식일에서 다음 안식일까지라는 의미의
7일을 의미한다는 뜻으로 일주일이라는 의미로 번역된 단어다 다음 눈여겨볼
단어는 우리말 성경엔 번역이 누락된 "판타"라는 단어가 있는데 목적격 중성
복수로 사용된 형용사다 우리말로는 모든 이라고 번역이 되는 단어로 그냥
소득이 아니라 모든 소득이라고 번역이 되어야 하는 단어다 보통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에 하루 속죄일엔 금식을 하지만 또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라고
명시된 십일조의 체납 품을 넘어서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친다고 고백을
하며 금식도 일 년에 100 번을 넘게 한다는 성구로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바리새인들은 그들만의 십일조의 법을 따로 만들고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한건 사실이지만 이런 행위로 인해 그리스도께 화있을 거라는 질책을 듣게
된다 마태복음 23장23절의 내용과 대응되는 누가 복음 11장 42절 말씀을 살펴
보자 "화 있을 찐 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 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 찌니라"라는 말씀으로 마태복음엔 버렸도다. 라는 단어를
과거 능동태 동사로 사용했지만 누가복음엔 버리는 도다. 라고 현재형 동사로
사용된점이 약간 차이가 나는 문장으로 큰 틀에서 보면 의미엔 아무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본절의 중심 포인트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세 가지 화를 선포하시는 말씀이고 물론
의미 전달의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우리말 너희로 번역된 "휘민"이란 단어를 반복
적으로 사용하므로 강조를 의미 한다 원래 율법은 토지의 소산과 목축의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데 바리새인들은 목축의 십일조는 생략해 버리고 토지의 소산은 물론
십일조에 대상 품목이 아닌 박하와 운향의 십일조마저 드리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공의와 하나님의 대한 사랑은 버렸기 때문에 화를 받는 다는 말이다 이때 공의로
번역된 원어는 "크리신"인데 이 공의와 사랑이라는 단어 "아가펜"의 사이에 등위 접속사
카이를 놓으므로 공의와 사랑은 같은 등급으로 놓는 다는 의미다 하나 살짝 짚고 넘어
갈 것은 "카이"를 앞뒤로 "크리신"과"아가펜"이라는 두개의 명사에 두 명사 공히
관사 "텐"이라는 관사가 있어 "샤프"의 법칙이 적용되지 못 하는 문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 시는 말씀의 진리를 살펴보자
우리말 버리는 도다 로 번역된 원어는 "파레르케스데"인데 원뜻은 지나치다
비켜가다 란 의미로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나쳐 가거나 비켜 간다. 시는 지적이다
이렇게 율법을 행하지 않음을 나무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꾸지람과 율법을
제대로 행하라 시는 말씀이며 율법의 정신으로 돌아가 형식주의적 율법정신은
버리고 진심으로 바치는 십일조의 정신마저 저버리지 말라 시는 말씀이지만 이
규례는 어디 까지나 구약의 문제고 오순절 이후에 신약으로 들어오며 십일조의
규례는 폐기가 된다 그 문제는 후편에 다시 짚고 넘어가자
후편
십일조는 은혜시대인 신약에서는 이미 폐기된 율법이다.
바울 사도는 십일조를 마땅히 하나님께 내어 놓으라는 말을
단 한차례도 한 사실이 없다 .. 혹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언급을 회피했을 거라고들 말을 하지만 유대교 정경 39권에서
그토록 누누이 십일조 사상을 설파한 사례로 본다면 매우 이례적 기록이다.
반면 있는 자들에게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이웃을 도우라고 했지
단 한번도 재산을 처분한 돈으로 헌금을 하라고 말한 적이 단 한차례도 없다.
오히려 손수 천막생활을 하며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서 쓰는 모범을 보인
사도로 만일 그가 십일조를 받았다면 그토록 궁핍한 삶 속에서 전도를
했겠는가는 미루어 짐작이 가는 일이다.
바울은 십일조와 예물과 헌금을 폐하고 다만 연보란 말만 몇 번에 걸쳐서
사용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우리말 연보로 번역된 원어는 보통 네 가지 정도
인데 모두가 하나 같이 헌금과는 상이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다
좀 길고 지루 했지만 십일조의 바른 이해를 위해 몇 번에 걸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하지만 작금의 교회는 공룡의 몸통같이 이미 부풀어 커진 상태이니 그 교회를
운영하는데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 이 많은 돈은 물론 교인들 몫이지만
성경에 반하지 않는 바른 연보로 자기가 속해 있는 교회의 번영을 위해 스스로
연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자기 수입의 십의 일을 하던 십의 오를 하던 본인
스스로 원하고 능력이 닿는 한은 애써 힘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교회에게 속아서 바른 연보가 아닌 이미 폐해진 십일조를 한다는 것은
본의 아니게 예수님의 대속의 죄의 보혈을 모두 무효화 시키는 커다란 범죄
행위를 하는 것이다 아울러 십일조의 신약시대의 발자취를 살짝 짚고 십일조
이야기를 맺으려 한다.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는 토지의 소산에서 목축의 소산에서
하여야 한다는 십일조의 율법을 무시하고 그들은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했다는
성경기록을 보면 아마 바리새인들이 십일조를 변질을 시킨 첫 번째 죄인들이라
십일조를 잘 하면 악한 자가 지옥에서 받는 열두 달 동안의 형벌을 면제 된다고 했고
중세에 와서는 십일조가 면죄부로 사용이 되기도 하였다 반면에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인정되며 주후 585 년 마콘 교부 회의에서 교부 암브로스 그렇게 주장하든
십일조를 채택하였고 800 년에 정식 법령으로 공포까지 된 적이 있다 결국 13세기
까지는 십일조는 토지의 소산물 이었던 게 인증되는 이유는 그 당시 까지는 곡식을
보관하든 십일조 곳간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십일조 곳간이
철거되며 토지의 소산에서 모든 소산으로 십일조가 확대 되며 지금에 까지 이르는
것이다 스코트랜드에선 교회 수입의 육분의 일이 목회자의 몫으로 정해진 역사가 있다
하지만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중 마태복음 17장 26절 말씀을
살펴보자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 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인데 예수께서 시몬에게 세상 임금이 관세와 정세를 누구에게 받느냐고
물으시는 질문에 베드로는 타인에게 받는다고 대답을 했고 그 답 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들들은 세를 면한다 하신 말씀 이다 물론 아들이 아닌 백성들은 마땅히 세를 내어야만
한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결론은 하나님의 아들들에겐 세를 면하여 주셨지만 백성들의 세는 면하신 적이 없다
그 연유로 그리스도교인들이 하나님의 자식이어든 십일조의 율법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파기 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아니고 여호와의 증인인 사이비 유대교인인
여증들은 율법대로 십일조를 바쳐야 하는 것이다
신약의 십일조의 복잡한 왜곡된 역사와 교회 중흥의 목적으로 활용된 것이 십일조 이지만
분명 신약의 십일조는 세를 면하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정면 도전 하는 일이다
추천 0
작성일2020-02-23 05:55
esus0님의 댓글
esus0
개 잔나비야,
구원과는 아무 상관 없는 '십일조' 야그는 필요없고,
천국으로 구원 받는 '성경에 진리'를 좀 애기 해 봐라 ---
구원과는 아무 상관 없는 '십일조' 야그는 필요없고,
천국으로 구원 받는 '성경에 진리'를 좀 애기 해 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