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그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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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우선 세례란 말인 영어 Baptism 은 주후 1611 년 제임스 왕 역본이 나오던 해에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한 단어다 심지어 처음 등장한 단어에 관한 제임스왕의 질문에 번역에 참가 했든 학자들이
왕의 비위를 거스를 수도 없지만 또한 신학자들의 자긍심도 지키기 위한 묘책으로 없던 단어를
헬라어의 음을 따라 만든 단어로 왕에게는 담근다는 말이라고 이해를 시키고 신학자들의 곧은
신론 은 바꾸지 않는 궁여지책으로 만든 단어가 바로 Baptism 이다 이래서 신조어가 “밥티스마”가
만들어진 이후에 또 한 번의 신조어가 만들어 진 것이다 그 당시 왕의 노여움을 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세례라는 뜻을 후대에 바르게 전하기 위한 학자들의 고뇌가 보이는 단어가 바로 Baptism
이다 그때부터 Baptism 이 세례를 의미 하지만 침례로 뜻이 바뀐 이유는 저 멀리 1600 여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단강에서 받은 유대의 결례인 세례를 모방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
하신 세례완 완전히 다른 세례를 말하는 것이 아직까지 전해져 지금의 우리는 세례는 틀린 말이고
침례가 맞는 말이라고 바뀐 말이 되어 버렸다 단어의 의미마저 소급되어 번역 되는 꼴이 지금
일부의 안티들이나 여증들의 작태다
여기 까지 읽으면 여증들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 할 것이다 1611 년전 에 Baptism 이 사용된
예를 찾기 위해 눈알을 뺑뺑 돌리게 될 것이다 일본말로 요이 땅 시작하라 인터넷 응 알지?
실제로 신약에서는 세례는 어떠한 방법으로 행하라는 어떤 구절도 발견하지 못 한다 다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막1:9)와 맑은 물(요3:23)에 대한 언급과 행전 8장 38절에 내려가다 올라가다 란
구절에 비추어 짐작으로 침례를 연상하고 침례로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뿐이다 반면에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 다메섹 빌립보 고린도 로마 혹은 소아시아 지방에서는 침례 같은
형식의 세례를 베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요단강 같은 세례를 줄만한 충분한 물이 없었고
골로새서 2장 12절 로마서 6장 4절 등에서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난 바 되고”라는
문장에서 보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물에 장사 된 적이 없으므로 이 상용 적인 문구는
세례의 형식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고 세례가 지닌 의식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다 이 세례의식을
잘 설명해준 문구가 또 히브리서 10장 22절에 나와 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인데
이 성구 역시 뿌리다란 의미의 원어 “레란티스메노이”와 씻다의 원어 “렐루스메노이”를 사용하여
유대인의 세례의식을 말하고 있다 이렇듯 신약 즉 은혜시대에 들어와서는 세례의 형식을 말하기
보다는 세례의 의미에 중점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이래도 1611년 이후에 만들어진 침례라는
단어를 1500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 그 때에 사용되던 세례라는 말을 소급하여 침례라는 말로
바꾸려는 의도는 얼마나 발칙한 일인가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건 그렇게 침례를 주장하고 싶다면 1611 년 이후에 쓰여 진 성경에는
마음대로 침례라고 사용을 하던지 1611년 전의 성경은 그 성경이 사용하던 단어 세례를 그대로
사용하도록 성경을 변개하지 말았음 바란다 성경이 뭐를 잘못 했는데 이놈이 이 구절을 바꾸고
저놈이 저 구절을 바꾸어 너덜너덜 난도질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오호 통제라
사족으로 복음서에 너희 집이 세례를 받으리란 의미의 구절이 있다 이때는 집안의 모든 식구가
공회당에 나아와 앉아 어린이와 노약자는 가운데 옹기종기 앉고 젊은이들이 주위를 빙 둘러 앉은
상태에서 물을 양동이로 끼얹어 세례를 주는 풍습을 이르는 말이다
우선 세례란 말인 영어 Baptism 은 주후 1611 년 제임스 왕 역본이 나오던 해에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한 단어다 심지어 처음 등장한 단어에 관한 제임스왕의 질문에 번역에 참가 했든 학자들이
왕의 비위를 거스를 수도 없지만 또한 신학자들의 자긍심도 지키기 위한 묘책으로 없던 단어를
헬라어의 음을 따라 만든 단어로 왕에게는 담근다는 말이라고 이해를 시키고 신학자들의 곧은
신론 은 바꾸지 않는 궁여지책으로 만든 단어가 바로 Baptism 이다 이래서 신조어가 “밥티스마”가
만들어진 이후에 또 한 번의 신조어가 만들어 진 것이다 그 당시 왕의 노여움을 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세례라는 뜻을 후대에 바르게 전하기 위한 학자들의 고뇌가 보이는 단어가 바로 Baptism
이다 그때부터 Baptism 이 세례를 의미 하지만 침례로 뜻이 바뀐 이유는 저 멀리 1600 여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단강에서 받은 유대의 결례인 세례를 모방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
하신 세례완 완전히 다른 세례를 말하는 것이 아직까지 전해져 지금의 우리는 세례는 틀린 말이고
침례가 맞는 말이라고 바뀐 말이 되어 버렸다 단어의 의미마저 소급되어 번역 되는 꼴이 지금
일부의 안티들이나 여증들의 작태다
여기 까지 읽으면 여증들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 할 것이다 1611 년전 에 Baptism 이 사용된
예를 찾기 위해 눈알을 뺑뺑 돌리게 될 것이다 일본말로 요이 땅 시작하라 인터넷 응 알지?
실제로 신약에서는 세례는 어떠한 방법으로 행하라는 어떤 구절도 발견하지 못 한다 다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막1:9)와 맑은 물(요3:23)에 대한 언급과 행전 8장 38절에 내려가다 올라가다 란
구절에 비추어 짐작으로 침례를 연상하고 침례로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뿐이다 반면에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 다메섹 빌립보 고린도 로마 혹은 소아시아 지방에서는 침례 같은
형식의 세례를 베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요단강 같은 세례를 줄만한 충분한 물이 없었고
골로새서 2장 12절 로마서 6장 4절 등에서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난 바 되고”라는
문장에서 보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물에 장사 된 적이 없으므로 이 상용 적인 문구는
세례의 형식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고 세례가 지닌 의식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다 이 세례의식을
잘 설명해준 문구가 또 히브리서 10장 22절에 나와 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인데
이 성구 역시 뿌리다란 의미의 원어 “레란티스메노이”와 씻다의 원어 “렐루스메노이”를 사용하여
유대인의 세례의식을 말하고 있다 이렇듯 신약 즉 은혜시대에 들어와서는 세례의 형식을 말하기
보다는 세례의 의미에 중점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이래도 1611년 이후에 만들어진 침례라는
단어를 1500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 그 때에 사용되던 세례라는 말을 소급하여 침례라는 말로
바꾸려는 의도는 얼마나 발칙한 일인가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건 그렇게 침례를 주장하고 싶다면 1611 년 이후에 쓰여 진 성경에는
마음대로 침례라고 사용을 하던지 1611년 전의 성경은 그 성경이 사용하던 단어 세례를 그대로
사용하도록 성경을 변개하지 말았음 바란다 성경이 뭐를 잘못 했는데 이놈이 이 구절을 바꾸고
저놈이 저 구절을 바꾸어 너덜너덜 난도질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오호 통제라
사족으로 복음서에 너희 집이 세례를 받으리란 의미의 구절이 있다 이때는 집안의 모든 식구가
공회당에 나아와 앉아 어린이와 노약자는 가운데 옹기종기 앉고 젊은이들이 주위를 빙 둘러 앉은
상태에서 물을 양동이로 끼얹어 세례를 주는 풍습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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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3-11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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