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산화비가 요한일서 5장 20절 이야기를 살짝 하였더니 난리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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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산화비가 요한일서 5장 20절 이야기를 살짝 하였더니 난리나서 십년도 훨씬 전에 이 게시판에
올렸렀던 글을 다시 한번 더 가져온다 아래글은 십년도 전에 이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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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오장 이십 절을 정경의 내용대로 번역을 해보자 먼저 개역성경내용을 옮겨 오자.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
이시요 영생이 시니라" 라고 번역이 되었고 원어 성경은
οιδαμεν δε οτι ο υιοs του θεου ηκει και δεδωκεν ημιν διανοιαν ινα γινωσκωμεν
τον αληθινον και εσμεν εν τω αληθινω εν τω υιω αυτου ιησου χριστω ουτοs
εστιν ο αληθινοs θεοs και ζωη αιωνιοs
"오이다멘 데 호티 호 휘오스 투 데우 헤케이 카이 데도켄 헤민 디아노이안 히나 기노스코멘
톤 알레디뇬 카이 에스멘 엔 토 알레디노 엔 토 휘오 아우토 이에수 크리스토 후토스
에스틴 호 알래디노스 데오스 카이 조에 아이오니오스"
라고 정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 성구에서 우리말 또 또는 과라는 의미의 접속사 "카이"가
세 번 등장한다. 그래서 두 번째 나오는 "카이"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두개의 문단으로
나누어 이해하는 게 정석이다 그 이유는 또한 이라고 번역된 "카이"가 앞뒤 문장을
나누기 때문이다.. 또한 이란 단어의 앞 문장을 먼저 보자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와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
이시요 영생이 시니라" 라는 문단으로 나누어 읽어야 한다 두 문단사이엔 분명히 "카이"
가 존재 한다. 앞 문단은 우리글 번역대로 아주 쉬운 전혀 헷갈리지 않는 문장이다 문제는
후반부의 문장인데 정통기독교에서의 번역은 아무 문제도 없다. 또한 개증의 영문 번역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개증의 영문번역에서 우리글 번역을 다시 하면 이문장이 베베 꼬여서
나온다. 개증의 꼬인 번역은 제쳐 두고 정경을 자세히 살펴보자.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라고 번역 되는 부분도
또한 이의가 없을 정도로 깨끗한 번역이다. 원어는 "카이 데도켄 헤민 디아노이안
히나 기노스코멘 톤 알레디뇬 카이 에스멘 엔 토 알레디노 엔 토 휘오 아우토 이에수
크리스토" 인데 우리말 "그의 아들" 이란 말 중에 "그" 라고 번역된 대명사는 "아우토"다
아들이란 단어는 "휘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아들"을 "휘오 아우토"라고 표기를 해
"아우토" 가 바로 하나님아버지를 대신한 대명사로 쓰인 단어다.. 그러면 마지막 부분인
우리말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 시니라" 라는 문장의 원어문은 "후토스 에스틴 호
알래디노스 데오스 카이 조에 아이오니오스" 라는 문장이다. 아주 중요한 문장이다. 이
문장에도 그랜빌 샤프의 법칙이 또 나온다. 샤프의 법칙은 "카이"라는 접속사를 앞뒤로
두 명사에서 앞의 명사(데오스)엔 관사(호)가 붙고 뒤에 명사(조에)엔 관사가 없을 경우는
뒤의 명사가 앞의 명사를 묘사 한다는 문법이다. 즉 이 말은 "조에" 즉 영생은 "데오스"
하나님을 묘사 한다는 의미다 즉 하나님과(카이) 영생이 아니고 이럴 땐 "카이"를 접속사로
대등 접속사로 읽어야 하는 게 바로 그랜빌 샤프의 법칙이다. 고로 하나님이며 영생이신
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랜빌 샤프의 법칙 이야긴 여기서 접고 나 산화비가 이미
옛날에 밝힌 "후토스" 용법이 나온다. 즉 " 후토스 에스틴 호 알래디노스 데오스" 에서
"후토스"는 우리말 "그"라는 대명사다 좀 전에도 한번 나온 대명사는 "아우토"인데 이
대명사는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킨다고 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후토스"도 대명사인데
이 "후토스" 대명사는 멀리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대명사 용법이라고 이미 오래전에 개증들과 한참 다툰 적이 있는
대명사 용법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 하다 벼란 간 하나님 아버지로 이야기를
끝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키는 "아우토"는 His로 번역이 되고
가까이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This로 번역이 된 예는 "후토스"용법에 충실한 번역이다.
사족으로 하나 더 원어 성경은 전 "후토스" 와 후 "후토스"를 갈렀다. 이말은 예수 그리스도로
번역된 "이에수"도 "그리스도"로 번역된 "크리스토"도 여격 남성 단수 명사로 쓰인 단어고
우리말 "참 하나님"으로 번역된 "호 알레디노스 데오스"에서 "호"는 관사로 번역 생략되고
"알레디노스"는 비교급 남성 단수 형용사로 쓰인 단어로 우리말 "참"으로 번역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말 하나님으로 번역된 "데오스" 가 바로 이문장의 주격 남성 단수로 쓰인 명사다
정리를 하자면 "참 하나님(주격)은 예수 그리스도(여격)요 영생이 시니라"란 의미의 글이다
올렸렀던 글을 다시 한번 더 가져온다 아래글은 십년도 전에 이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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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오장 이십 절을 정경의 내용대로 번역을 해보자 먼저 개역성경내용을 옮겨 오자.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
이시요 영생이 시니라" 라고 번역이 되었고 원어 성경은
οιδαμεν δε οτι ο υιοs του θεου ηκει και δεδωκεν ημιν διανοιαν ινα γινωσκωμεν
τον αληθινον και εσμεν εν τω αληθινω εν τω υιω αυτου ιησου χριστω ουτοs
εστιν ο αληθινοs θεοs και ζωη αιωνιοs
"오이다멘 데 호티 호 휘오스 투 데우 헤케이 카이 데도켄 헤민 디아노이안 히나 기노스코멘
톤 알레디뇬 카이 에스멘 엔 토 알레디노 엔 토 휘오 아우토 이에수 크리스토 후토스
에스틴 호 알래디노스 데오스 카이 조에 아이오니오스"
라고 정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 성구에서 우리말 또 또는 과라는 의미의 접속사 "카이"가
세 번 등장한다. 그래서 두 번째 나오는 "카이"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두개의 문단으로
나누어 이해하는 게 정석이다 그 이유는 또한 이라고 번역된 "카이"가 앞뒤 문장을
나누기 때문이다.. 또한 이란 단어의 앞 문장을 먼저 보자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와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
이시요 영생이 시니라" 라는 문단으로 나누어 읽어야 한다 두 문단사이엔 분명히 "카이"
가 존재 한다. 앞 문단은 우리글 번역대로 아주 쉬운 전혀 헷갈리지 않는 문장이다 문제는
후반부의 문장인데 정통기독교에서의 번역은 아무 문제도 없다. 또한 개증의 영문 번역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개증의 영문번역에서 우리글 번역을 다시 하면 이문장이 베베 꼬여서
나온다. 개증의 꼬인 번역은 제쳐 두고 정경을 자세히 살펴보자.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라고 번역 되는 부분도
또한 이의가 없을 정도로 깨끗한 번역이다. 원어는 "카이 데도켄 헤민 디아노이안
히나 기노스코멘 톤 알레디뇬 카이 에스멘 엔 토 알레디노 엔 토 휘오 아우토 이에수
크리스토" 인데 우리말 "그의 아들" 이란 말 중에 "그" 라고 번역된 대명사는 "아우토"다
아들이란 단어는 "휘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아들"을 "휘오 아우토"라고 표기를 해
"아우토" 가 바로 하나님아버지를 대신한 대명사로 쓰인 단어다.. 그러면 마지막 부분인
우리말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 시니라" 라는 문장의 원어문은 "후토스 에스틴 호
알래디노스 데오스 카이 조에 아이오니오스" 라는 문장이다. 아주 중요한 문장이다. 이
문장에도 그랜빌 샤프의 법칙이 또 나온다. 샤프의 법칙은 "카이"라는 접속사를 앞뒤로
두 명사에서 앞의 명사(데오스)엔 관사(호)가 붙고 뒤에 명사(조에)엔 관사가 없을 경우는
뒤의 명사가 앞의 명사를 묘사 한다는 문법이다. 즉 이 말은 "조에" 즉 영생은 "데오스"
하나님을 묘사 한다는 의미다 즉 하나님과(카이) 영생이 아니고 이럴 땐 "카이"를 접속사로
대등 접속사로 읽어야 하는 게 바로 그랜빌 샤프의 법칙이다. 고로 하나님이며 영생이신
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랜빌 샤프의 법칙 이야긴 여기서 접고 나 산화비가 이미
옛날에 밝힌 "후토스" 용법이 나온다. 즉 " 후토스 에스틴 호 알래디노스 데오스" 에서
"후토스"는 우리말 "그"라는 대명사다 좀 전에도 한번 나온 대명사는 "아우토"인데 이
대명사는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킨다고 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후토스"도 대명사인데
이 "후토스" 대명사는 멀리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대명사 용법이라고 이미 오래전에 개증들과 한참 다툰 적이 있는
대명사 용법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 하다 벼란 간 하나님 아버지로 이야기를
끝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키는 "아우토"는 His로 번역이 되고
가까이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This로 번역이 된 예는 "후토스"용법에 충실한 번역이다.
사족으로 하나 더 원어 성경은 전 "후토스" 와 후 "후토스"를 갈렀다. 이말은 예수 그리스도로
번역된 "이에수"도 "그리스도"로 번역된 "크리스토"도 여격 남성 단수 명사로 쓰인 단어고
우리말 "참 하나님"으로 번역된 "호 알레디노스 데오스"에서 "호"는 관사로 번역 생략되고
"알레디노스"는 비교급 남성 단수 형용사로 쓰인 단어로 우리말 "참"으로 번역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말 하나님으로 번역된 "데오스" 가 바로 이문장의 주격 남성 단수로 쓰인 명사다
정리를 하자면 "참 하나님(주격)은 예수 그리스도(여격)요 영생이 시니라"란 의미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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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4-0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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