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 씨' 믿음과 '겨자 나무'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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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 씨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 믿음size=5 face=중간공한 color=blue>과 ‘겨자 나무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 믿음size=5 face=중간공한 color=blue>
성경에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 비유는 “믿음의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유무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有無)”를 말함인가?
아니면 “믿음의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대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大小)”를 말함인가?
마17:14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size=2 face=필기 color=black>
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한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만큼만 있으면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size=3 face=필기 color=Green>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눅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size=3 face=필기 color=Green>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성경엔 많은 종류의 믿음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예로써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과 “<죄 사함> 받는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같을 수 없다.
“친구를 믿는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과 “태양이 동에서 뜬다는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동일한 단어이지만 동일한 종류의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성경에서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과
“뽕나무의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게 하는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과
“병을 낫게 하는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수 있는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과 동일한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아니다.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만 한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아주 작은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을 의미한다.”는 개념으로 한다면
이 세상에는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만한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을 가진 사람이 아직까지는 하나도 없다.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긴 자size=3 face=필기 color=Green>”도 없고,
“뽕나무의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게 한 자size=3 face=필기 color=Green>”도 없으니까 ---
이처럼 “작은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도 없는데 어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수 있는 아주 큰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있다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고 할 수 있겠는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만한 “작은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도 없으니 이보다 더 큰 믿음이 요구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은 “있다”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고 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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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의 문제
막4:30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31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 한 알과 같으니 땅size=3 face=필기 color=Blue>에 심길 때에는 땅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위의 모든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보다 작은 것size=3 face=필기 color=Blue>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마13: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 밭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에 갖다 심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가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size=2 face=필기 color=Blue> 서 말size=2 face=필기 color=Green>(서말=10Gal)size=2 face=필기 color=Green>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size=2 face=필기 color=Blue> 누룩size=4 face=필기 color=red>과 같으니라size=2 face=필기 color=black>
눅13:18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에 갖다 심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가 되어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21 마치 여자가 가루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 서 말size=2 face=필기 color=Green>(서말=10Gal)size=2 face=필기 color=Green>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 누룩size=4 face=필기 color=red>과 같으니라' 하셨더라size=2 face=필기 color=black>
위의 말씀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의 크기size=3 face=필기 color=Blue>를 말하는 것으로 읽고
그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가 ‘모든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보다 작은 것’이지만 크기에 비하여 엄청난 크기로 자라나 ‘겨자size=3 face=필기 color=Blue>나물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아닌 “겨자size=3 face=필기 color=Blue>나무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 비유에서 깨닫지 못한 핵심이 있으니
그것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 크기를 말하는 비유보다 ‘존재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초점이 있다.
첫째는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가 “있느냐, 없느냐”다.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가 없으면 “싹눈도 나지 않지만 크게 자랄 것도 없다.”
성경 설명에는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라 했다.
‘모든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보다 작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 다음엔 어떤 크기의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인가?
모든 정수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正數) 중에 제일 작은 수는 ‘1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이다. (소수나 분순는 정수가 이님)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
‘0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은 “없다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는 개념이며, ‘1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 보다 작은 수는 ‘0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 즉 “없다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무존재)size=2 face=중간공한 color=red>를 의미한다.
“없다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는 개념의 ‘0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 보다 큰 수는 “있다”의 ‘1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을 포함한 ‘모든 수’라고 정의 한다.
‘1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보다 작은 수는 다음엔 어떤 크기의 수인가?
그 답은 “없다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라고 해야 하는 것처럼
‘모든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보다 작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 다음엔 어떤 크기의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인가? -라는 질문의
그 답: ‘모든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보다 작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 보다 작은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는 “없다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다.
둘째는 ‘모든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보다 작은 겨자size=4 face=필기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가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가size=3 face=필기 color=Blue>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size=2 face=필기 color=red>라도 저보다 크니라size=3 face=필기 color=deeppink>size=3 face=필기 color=Blue>”처럼 “천국에서size=3 face=필기 color=Blue> 극히 작은 자size=2 face=필기 color=red>” 다음으로 ‘작은 자’는 “천국”에 없는 것처럼 ‘‘겨자size=3 face=필기 color=Blue> 씨size=2 face=필기 color=red>’보다 작은 씨size=2 face=필기 color=red>’는 없다.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size=2 face=필기 color=red>라도size=2 face=필기 color=Blue> 저보다 크니라size=2 face=필기 color=deeppink>size=2 face=필기 color=black>
이처럼 없는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로는 어디든 “심을 수도 없고, 자라는 나무도 없다.”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가 크고 작은 건 상관없이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가 있어야 심을 수 있다.
또 누룩의 비유도 밀가루 한 부대(서 말= 9 Gal)size=2 face=필기 color=black> 속에 넣은 누룩은 '많은 양의 누룩size=3 face=필기 color=Blue>'을 필요로 하지 않다.
아무리 많은 양의 밀가루라도 ‘극히 작은 양의size=3 face=필기 color=Blue> 누룩size=3 face=필기 color=red>’만 “있으면size=3 face=필기 color=red>” 시간만 지나면 “전부 부풀게 한size=2 face=필기 color=Blue>”다.
문제는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가 있느냐’, ‘누룩size=3 face=필기 color=red>이 있느냐’의 문제다.
무엇이든지 “있으면size=3 face=필기 color=Blue>” 크거나 많아지는 건 <시간의 흐름>이 해결한다.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만 한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은
‘산을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도 ‘겨자size=3 face=필기 color=Blue> 씨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만 한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으로부터 시작한다.
‘겨자size=3 face=필기 color=Blue> 씨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만 한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도 없으면서 처음부터 ‘산을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이 있다size=5 face=필기 color=red>’고 할 수 있는가?
누가 처음부터 ‘산을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큰size=3 face=필기 color=Blue>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성경은 ‘많은 누룩size=3 face=필기 color=Blue>’이 아니라 ‘적은size=2 face=필기 color=Blue> 누룩size=2 face=필기 color=red>’이 ‘온 덩이에 퍼진다.size=2 face=필기 color=Green>’고 하고 있다.
고전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적은size=2 face=필기 color=Blue> 누룩size=2 face=필기 color=red>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size=2 face=필기 color=Green>을 알지 못하느냐
갈 5:9 적은size=2 face=필기 color=Blue> 누룩size=2 face=필기 color=red>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size=2 face=필기 color=Green>size=2 face=필기 color=black>
누룩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있고, 없고’의 문제다.
아무리 많은 밀가루가 있어도 ‘겨자 씨 보다도 더 훨씬 작은size=3 face=필기 color=Blue> 누룩size=3 face=필기 color=red>’이 “있기만 하면size=3 face=필기 color=red>”
밀가루 반죽은 ‘전부 부풀게’size=3 face=필기 color=Blue>하지 않는가!!!!!
신체의 감염처럼 “아무리 작은 감염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균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라도 몸 안에 “있기만 하면size=3 face=필기 color=red>” 옴 몸을 감염 시키게 되는 이치와도 같다.
고로
‘겨자size=3 face=필기 color=Blue> 씨만한size=3 face=필기 color=Blue>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이라도 있으면 <있는 것size=3 face=필기 color=red>>이고
‘겨자size=3 face=필기 color=Blue> 씨만한size=3 face=필기 color=Blue>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이라도 없으면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이란 건 전혀 <없는 것size=3 face=필기 color=Blue>>이다
‘있으면size=3 face=필기 color=Blue>’ ‘있는 것size=3 face=필기 color=red>’으로 족하다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이 ‘있기만 하면’ “그 믿음size=5 face=필기 color=red>을 키우는 것”size=5 face=필기 color=Blue>은
하나님이 하신다size=6 face=필기 color=red>.
오늘 날 “예수를 믿는다size=3 face=필기 color=Blue>”는 사람들에게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필기 color=Blue>’이 있는가?
그 가지고 있는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Blue>’이 어떤 내용의 size=3 face=필기 color=red>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인가?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필기 color=Blue>’의 종류 중에도
‘산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씨size=3 face=필기 color=red>’도 있고,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킬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씨size=3 face=필기 color=red>’도 있으며,
‘예수 이름 침례로 죄 사함 받을 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씨size=3 face=필기 color=red>’도 있고,
‘나면서 눈먼 자를 일으킬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씨size=3 face=필기 color=red>’도 있으며,
‘병든 자를 났게 할 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씨size=3 face=필기 color=red>’도 있고,
‘귀신을 내어 쫒을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씨size=3 face=필기 color=red>’도 있으며,
이처럼 ‘모든size=4 face=필기 color=Blue> 믿음size=4 face=필기 color=red>’이 ‘겨자size=4 face=필기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만한size=4 face=필기 color=Blue> 믿음size=4 face=필기 color=red>’으로 출발하여
시간이 흘러 ‘큰size=4 face=필기 color=Blue> 믿음size=4 face=필기 color=red>’으로 “하나님”이 진행시킨다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
이미 ‘겨자씨만한size=3 face=필기 color=Blue>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첫 발(Firsts tep)로 출발size=3 face=필기 color=red>한 사람size=3 face=필기 color=Blue>>이고,
‘산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킬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소유자로 되어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적은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누룩size=3 face=필기 color=red>’의 비유는
사단도 사람들에게 ‘적은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누룩size=3 face=필기 color=red>’(장로들의 유전)을 넣어 ‘자기를 믿는 큰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의 소유자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로 만든다.
오늘날의 ‘교회’라는 대개의 그룹들이 <장로들의 유전>에 의해 1800년간 급조되어 온 집단이다. 이들의 교리가 ‘성경적인 것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보다는 ‘사람의 유전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Idea)size=2 face=중간공한 color=red>’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예수를 믿는 우리의 믿음이 과연 “얼마만한 크기의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으로 출발했는가?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당연히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으로 출발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회개하여 “주 예수 그리스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으로 <죄 사함size=3 face=필기 color=red>>”이 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은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이었으나 지금은 ‘겨자 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 같은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소유자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로 자랐고 또 자라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만약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이 ‘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로 자라고 있지 않다면
그 ‘겨자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씨size=3 face=필기 color=red>’는 ‘죽은 것size=3 face=필기 color=red>’이거나 아니면 ‘물에 삶은 씨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죽은 씨)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ack>’이거나 ‘씨size=3 face=필기 color=red>’가 아닌 ‘모래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알size=3 face=필기 color=red>’이 분명하다.
그것도 아니면 처음부터 ‘씨size=3 face=필기 color=red>’는 “없었던 것size=3 face=필기 color=red>”이다.
아직 “예수를 믿는다.”고 스스로 고백할 수 없고
아직은 ‘죄 사함을 위한 <물 침례>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은 “크던지, 작던지”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커녕 ‘어떠한 믿음도 전혀 없다size=3 face=필기 color=red>’는 말이 된다.
‘죄 사함을 위한 <물 침례>’는 ‘산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으로가 아니라size=3 face=필기 color=red>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이면 충분하다.
‘회개하여’ “주 예수 그리스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음으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로 <죄 사함size=3 face=필기 color=red>>이 된다”는 이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은 ‘큰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신학자에 의한 믿음’이 아니고
어린아이와 같고, ‘시작size=3 face=필기 color=red>’이 되는 ‘겨자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필기 color=Blue>’이면 충분하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겨자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필기 color=Blue>’을 요구 하지 않으시고
‘겨자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필기 color=Blue>’을 요구 하셨음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은 ‘겨자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필기 color=Blue>’을 가질만한 자를 찾으신다.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은 ‘겨자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필기 color=Blue>’으로 태어나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향해 자라는 것이 정상이다.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을 향해 자라는 것이 정상이다.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size=3 face=필기 color=red>
말하는 것size=3 face=필기 color=Blue>이 어린 아이와 같고size=3 face=필기 color=Green>
깨닫는 것size=3 face=필기 color=Blue>이 어린 아이와 같고size=3 face=필기 color=Green>
생각하는 것size=3 face=필기 color=Blue>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size=3 face=필기 color=Green>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size=3 face=필기 color=red>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size=3 face=필기 color=Green>
고전 14: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size=3 face=필기 color=Blue> 어린 아이가 되라size=3 face=필기 color=Green>
지혜에size=3 face=필기 color=Blue> 장성한 사람이 되라size=3 face=필기 color=Green>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size=3 face=필기 color=Blue>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size=3 face=필기 color=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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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15 욕심size=4 face=필기 color=deeppink>이 잉태size=3 face=필기 color=Blue>한즉 죄size=4 face=필기 color=deeppink>를 낳고size=3 face=필기 color=Blue> 죄가 장성size=3 face=필기 color=Blue>한즉 사망size=4 face=필기 color=deeppink>을 낳느니라size=3 face=필기 color=Blue>
‘악한 자의 것size=3 face=필기 color=red>’도
‘잉태size=3 face=필기 color=Blue>’를 하고, ‘태어나고size=3 face=필기 color=Blue>’(낳고)size=2 face=필기 color=red> ‘장성size=3 face=필기 color=Blue>하고’, 그리고 그 최후에는 ‘사망size=3 face=필기 color=Blue>’을 또 낳는다size=3 face=필기 color=red>.
---------------- ****** ------------------
하물며 ‘하나님의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선함size=3 face=필기 color=red>’이랴 !!!
하나님의 말씀에는 시작size=3 face=필기 color=red>(잉태)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이 되는 말씀이 있고
태어나size=3 face=필기 color=red>(출생)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는 말씀이 있고
자라게size=3 face=필기 color=red>(성장)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 하는 말씀도 있다.
그리고 심판size=3 face=필기 color=red>(흰보좌)하는 말씀(요 12:48)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도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size=3 face=필기 color=black>
요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하리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size=5 face=필기 color=deeppink>’으로 “먹고size=5 face=필기 color=Green>” <잉태size=4 face=필기 color=Blue>>하고,
‘겨자씨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만한size=4 face=필기 color=Blue> 믿음size=4 face=필기 color=red>’에 의해size=4 face=필기 color=black> “물과 성령으로size=5 face=필기 color=Green>” <태어나고size=4 face=필기 color=Blue>>,
‘하나님의 말씀size=5 face=필기 color=deeppink>’으로 “장성하여size=5 face=필기 color=Green>”
<영생size=4 face=필기 color=Blue>>을 낳는다size=6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
예수님은 ‘겨자나무size=6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ue>’을 가질만한 자
곧 ‘시작size=4 face=필기 color=red>’이 될 수 있는 ‘‘겨자 씨size=6 face=중간공한 color=red>만한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믿음size=4 face=필기 color=red>”의 소유자를 찾으신다.
누구든지 ‘겨자씨size=6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6 face=필기 color=red>size=5 face=필기 color=Blue>’을 필요로 한다.size=5 face=필기 color=black>
================= 끝 ====================
성경에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 비유는 “믿음의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유무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有無)”를 말함인가?
아니면 “믿음의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대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大小)”를 말함인가?
마17:14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size=2 face=필기 color=black>
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한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만큼만 있으면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size=3 face=필기 color=Green>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눅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size=3 face=필기 color=Green>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성경엔 많은 종류의 믿음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예로써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과 “<죄 사함> 받는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같을 수 없다.
“친구를 믿는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과 “태양이 동에서 뜬다는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동일한 단어이지만 동일한 종류의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성경에서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과
“뽕나무의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게 하는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과
“병을 낫게 하는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수 있는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과 동일한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아니다.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만 한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아주 작은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을 의미한다.”는 개념으로 한다면
이 세상에는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만한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을 가진 사람이 아직까지는 하나도 없다.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긴 자size=3 face=필기 color=Green>”도 없고,
“뽕나무의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게 한 자size=3 face=필기 color=Green>”도 없으니까 ---
이처럼 “작은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도 없는데 어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수 있는 아주 큰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있다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고 할 수 있겠는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만한 “작은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도 없으니 이보다 더 큰 믿음이 요구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은 “있다”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고 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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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의 문제
막4:30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31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 한 알과 같으니 땅size=3 face=필기 color=Blue>에 심길 때에는 땅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위의 모든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보다 작은 것size=3 face=필기 color=Blue>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마13: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 밭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에 갖다 심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가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size=2 face=필기 color=Blue> 서 말size=2 face=필기 color=Green>(서말=10Gal)size=2 face=필기 color=Green>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size=2 face=필기 color=Blue> 누룩size=4 face=필기 color=red>과 같으니라size=2 face=필기 color=black>
눅13:18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에 갖다 심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가 되어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21 마치 여자가 가루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 서 말size=2 face=필기 color=Green>(서말=10Gal)size=2 face=필기 color=Green>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 누룩size=4 face=필기 color=red>과 같으니라' 하셨더라size=2 face=필기 color=black>
위의 말씀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의 크기size=3 face=필기 color=Blue>를 말하는 것으로 읽고
그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가 ‘모든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보다 작은 것’이지만 크기에 비하여 엄청난 크기로 자라나 ‘겨자size=3 face=필기 color=Blue>나물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아닌 “겨자size=3 face=필기 color=Blue>나무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 비유에서 깨닫지 못한 핵심이 있으니
그것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 크기를 말하는 비유보다 ‘존재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초점이 있다.
첫째는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가 “있느냐, 없느냐”다.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가 없으면 “싹눈도 나지 않지만 크게 자랄 것도 없다.”
성경 설명에는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라 했다.
‘모든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보다 작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 다음엔 어떤 크기의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인가?
모든 정수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正數) 중에 제일 작은 수는 ‘1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이다. (소수나 분순는 정수가 이님)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
‘0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은 “없다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는 개념이며, ‘1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 보다 작은 수는 ‘0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 즉 “없다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무존재)size=2 face=중간공한 color=red>를 의미한다.
“없다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는 개념의 ‘0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 보다 큰 수는 “있다”의 ‘1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을 포함한 ‘모든 수’라고 정의 한다.
‘1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보다 작은 수는 다음엔 어떤 크기의 수인가?
그 답은 “없다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라고 해야 하는 것처럼
‘모든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보다 작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 다음엔 어떤 크기의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인가? -라는 질문의
그 답: ‘모든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보다 작은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 보다 작은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는 “없다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다.
둘째는 ‘모든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보다 작은 겨자size=4 face=필기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가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가size=3 face=필기 color=Blue>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size=2 face=필기 color=red>라도 저보다 크니라size=3 face=필기 color=deeppink>size=3 face=필기 color=Blue>”처럼 “천국에서size=3 face=필기 color=Blue> 극히 작은 자size=2 face=필기 color=red>” 다음으로 ‘작은 자’는 “천국”에 없는 것처럼 ‘‘겨자size=3 face=필기 color=Blue> 씨size=2 face=필기 color=red>’보다 작은 씨size=2 face=필기 color=red>’는 없다.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size=2 face=필기 color=red>라도size=2 face=필기 color=Blue> 저보다 크니라size=2 face=필기 color=deeppink>size=2 face=필기 color=black>
이처럼 없는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로는 어디든 “심을 수도 없고, 자라는 나무도 없다.”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가 크고 작은 건 상관없이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가 있어야 심을 수 있다.
또 누룩의 비유도 밀가루 한 부대(서 말= 9 Gal)size=2 face=필기 color=black> 속에 넣은 누룩은 '많은 양의 누룩size=3 face=필기 color=Blue>'을 필요로 하지 않다.
아무리 많은 양의 밀가루라도 ‘극히 작은 양의size=3 face=필기 color=Blue> 누룩size=3 face=필기 color=red>’만 “있으면size=3 face=필기 color=red>” 시간만 지나면 “전부 부풀게 한size=2 face=필기 color=Blue>”다.
문제는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가 있느냐’, ‘누룩size=3 face=필기 color=red>이 있느냐’의 문제다.
무엇이든지 “있으면size=3 face=필기 color=Blue>” 크거나 많아지는 건 <시간의 흐름>이 해결한다.
‘겨자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ack>만 한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은
‘산을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도 ‘겨자size=3 face=필기 color=Blue> 씨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만 한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으로부터 시작한다.
‘겨자size=3 face=필기 color=Blue> 씨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만 한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도 없으면서 처음부터 ‘산을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이 있다size=5 face=필기 color=red>’고 할 수 있는가?
누가 처음부터 ‘산을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큰size=3 face=필기 color=Blue>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성경은 ‘많은 누룩size=3 face=필기 color=Blue>’이 아니라 ‘적은size=2 face=필기 color=Blue> 누룩size=2 face=필기 color=red>’이 ‘온 덩이에 퍼진다.size=2 face=필기 color=Green>’고 하고 있다.
고전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적은size=2 face=필기 color=Blue> 누룩size=2 face=필기 color=red>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size=2 face=필기 color=Green>을 알지 못하느냐
갈 5:9 적은size=2 face=필기 color=Blue> 누룩size=2 face=필기 color=red>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size=2 face=필기 color=Green>size=2 face=필기 color=black>
누룩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있고, 없고’의 문제다.
아무리 많은 밀가루가 있어도 ‘겨자 씨 보다도 더 훨씬 작은size=3 face=필기 color=Blue> 누룩size=3 face=필기 color=red>’이 “있기만 하면size=3 face=필기 color=red>”
밀가루 반죽은 ‘전부 부풀게’size=3 face=필기 color=Blue>하지 않는가!!!!!
신체의 감염처럼 “아무리 작은 감염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균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라도 몸 안에 “있기만 하면size=3 face=필기 color=red>” 옴 몸을 감염 시키게 되는 이치와도 같다.
고로
‘겨자size=3 face=필기 color=Blue> 씨만한size=3 face=필기 color=Blue>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이라도 있으면 <있는 것size=3 face=필기 color=red>>이고
‘겨자size=3 face=필기 color=Blue> 씨만한size=3 face=필기 color=Blue>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이라도 없으면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이란 건 전혀 <없는 것size=3 face=필기 color=Blue>>이다
‘있으면size=3 face=필기 color=Blue>’ ‘있는 것size=3 face=필기 color=red>’으로 족하다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이 ‘있기만 하면’ “그 믿음size=5 face=필기 color=red>을 키우는 것”size=5 face=필기 color=Blue>은
하나님이 하신다size=6 face=필기 color=red>.
오늘 날 “예수를 믿는다size=3 face=필기 color=Blue>”는 사람들에게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필기 color=Blue>’이 있는가?
그 가지고 있는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Blue>’이 어떤 내용의 size=3 face=필기 color=red>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인가?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필기 color=Blue>’의 종류 중에도
‘산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씨size=3 face=필기 color=red>’도 있고,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킬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씨size=3 face=필기 color=red>’도 있으며,
‘예수 이름 침례로 죄 사함 받을 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씨size=3 face=필기 color=red>’도 있고,
‘나면서 눈먼 자를 일으킬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씨size=3 face=필기 color=red>’도 있으며,
‘병든 자를 났게 할 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씨size=3 face=필기 color=red>’도 있고,
‘귀신을 내어 쫒을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씨size=3 face=필기 color=red>’도 있으며,
이처럼 ‘모든size=4 face=필기 color=Blue> 믿음size=4 face=필기 color=red>’이 ‘겨자size=4 face=필기 color=Blue> 씨size=4 face=중간공한 color=red>만한size=4 face=필기 color=Blue> 믿음size=4 face=필기 color=red>’으로 출발하여
시간이 흘러 ‘큰size=4 face=필기 color=Blue> 믿음size=4 face=필기 color=red>’으로 “하나님”이 진행시킨다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
이미 ‘겨자씨만한size=3 face=필기 color=Blue>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첫 발(Firsts tep)로 출발size=3 face=필기 color=red>한 사람size=3 face=필기 color=Blue>>이고,
‘산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킬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소유자로 되어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적은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누룩size=3 face=필기 color=red>’의 비유는
사단도 사람들에게 ‘적은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누룩size=3 face=필기 color=red>’(장로들의 유전)을 넣어 ‘자기를 믿는 큰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의 소유자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로 만든다.
오늘날의 ‘교회’라는 대개의 그룹들이 <장로들의 유전>에 의해 1800년간 급조되어 온 집단이다. 이들의 교리가 ‘성경적인 것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보다는 ‘사람의 유전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Idea)size=2 face=중간공한 color=red>’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예수를 믿는 우리의 믿음이 과연 “얼마만한 크기의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으로 출발했는가?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당연히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으로 출발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회개하여 “주 예수 그리스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으로 <죄 사함size=3 face=필기 color=red>>”이 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은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이었으나 지금은 ‘겨자 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 같은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의 소유자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로 자랐고 또 자라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만약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이 ‘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로 자라고 있지 않다면
그 ‘겨자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씨size=3 face=필기 color=red>’는 ‘죽은 것size=3 face=필기 color=red>’이거나 아니면 ‘물에 삶은 씨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죽은 씨)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ack>’이거나 ‘씨size=3 face=필기 color=red>’가 아닌 ‘모래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알size=3 face=필기 color=red>’이 분명하다.
그것도 아니면 처음부터 ‘씨size=3 face=필기 color=red>’는 “없었던 것size=3 face=필기 color=red>”이다.
아직 “예수를 믿는다.”고 스스로 고백할 수 없고
아직은 ‘죄 사함을 위한 <물 침례>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은 “크던지, 작던지”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커녕 ‘어떠한 믿음도 전혀 없다size=3 face=필기 color=red>’는 말이 된다.
‘죄 사함을 위한 <물 침례>’는 ‘산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으로가 아니라size=3 face=필기 color=red>
‘겨자씨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이면 충분하다.
‘회개하여’ “주 예수 그리스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음으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로 <죄 사함size=3 face=필기 color=red>>이 된다”는 이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은 ‘큰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신학자에 의한 믿음’이 아니고
어린아이와 같고, ‘시작size=3 face=필기 color=red>’이 되는 ‘겨자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필기 color=Blue>’이면 충분하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겨자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필기 color=Blue>’을 요구 하지 않으시고
‘겨자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필기 color=Blue>’을 요구 하셨음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은 ‘겨자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필기 color=Blue>’을 가질만한 자를 찾으신다.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은 ‘겨자나무size=3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3 face=필기 color=red>size=3 face=필기 color=Blue>’으로 태어나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향해 자라는 것이 정상이다.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길만한size=3 face=필기 color=Green> 믿음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을 향해 자라는 것이 정상이다.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size=3 face=필기 color=red>
말하는 것size=3 face=필기 color=Blue>이 어린 아이와 같고size=3 face=필기 color=Green>
깨닫는 것size=3 face=필기 color=Blue>이 어린 아이와 같고size=3 face=필기 color=Green>
생각하는 것size=3 face=필기 color=Blue>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size=3 face=필기 color=Green>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size=3 face=필기 color=red>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size=3 face=필기 color=Green>
고전 14: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size=3 face=필기 color=Blue> 어린 아이가 되라size=3 face=필기 color=Green>
지혜에size=3 face=필기 color=Blue> 장성한 사람이 되라size=3 face=필기 color=Green>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size=3 face=필기 color=Blue>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size=3 face=필기 color=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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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15 욕심size=4 face=필기 color=deeppink>이 잉태size=3 face=필기 color=Blue>한즉 죄size=4 face=필기 color=deeppink>를 낳고size=3 face=필기 color=Blue> 죄가 장성size=3 face=필기 color=Blue>한즉 사망size=4 face=필기 color=deeppink>을 낳느니라size=3 face=필기 color=Blue>
‘악한 자의 것size=3 face=필기 color=red>’도
‘잉태size=3 face=필기 color=Blue>’를 하고, ‘태어나고size=3 face=필기 color=Blue>’(낳고)size=2 face=필기 color=red> ‘장성size=3 face=필기 color=Blue>하고’, 그리고 그 최후에는 ‘사망size=3 face=필기 color=Blue>’을 또 낳는다size=3 face=필기 color=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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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하나님의size=3 face=중간공한 color=blue> 선함size=3 face=필기 color=red>’이랴 !!!
하나님의 말씀에는 시작size=3 face=필기 color=red>(잉태)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이 되는 말씀이 있고
태어나size=3 face=필기 color=red>(출생)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는 말씀이 있고
자라게size=3 face=필기 color=red>(성장)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 하는 말씀도 있다.
그리고 심판size=3 face=필기 color=red>(흰보좌)하는 말씀(요 12:48)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도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size=3 face=필기 color=black>
요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size=3 face=중간공한 color=red>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size=2 face=중간공한 color=blue>하리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size=5 face=필기 color=deeppink>’으로 “먹고size=5 face=필기 color=Green>” <잉태size=4 face=필기 color=Blue>>하고,
‘겨자씨size=5 face=중간공한 color=red>만한size=4 face=필기 color=Blue> 믿음size=4 face=필기 color=red>’에 의해size=4 face=필기 color=black> “물과 성령으로size=5 face=필기 color=Green>” <태어나고size=4 face=필기 color=Blue>>,
‘하나님의 말씀size=5 face=필기 color=deeppink>’으로 “장성하여size=5 face=필기 color=Green>”
<영생size=4 face=필기 color=Blue>>을 낳는다size=6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ack>
예수님은 ‘겨자나무size=6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4 face=필기 color=red>size=4 face=필기 color=Blue>’을 가질만한 자
곧 ‘시작size=4 face=필기 color=red>’이 될 수 있는 ‘‘겨자 씨size=6 face=중간공한 color=red>만한size=4 face=중간공한 color=blue> 믿음size=4 face=필기 color=red>”의 소유자를 찾으신다.
누구든지 ‘겨자씨size=6 face=필기 color=red>만한 믿음size=6 face=필기 color=red>size=5 face=필기 color=Blue>’을 필요로 한다.size=5 face=필기 color=black>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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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6-2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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