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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물러나시죠” 시진핑 권퇴서(勸退書) 나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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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물러나시죠” 시진핑 권퇴서(勸退書) 나붙어

최창근 객원기자입력 2020-02-23 09:21수정 2020-02-23 09:51
우한의 기침, 習황제 독재에 大균열
●폭로자 리원량의 죽음, 중국 인민 분노 일으켜
●시진핑은 天命 잃었다
●망자 추모가 시발점 된 톈안먼 사태
●시진핑 독재에 대한 누적된 불만 터져 나와
2월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역 마스크를 쓴 채 수도 베이징의 한 주민센터를 방문해 주민들로부터 생필품 공급 및 방역 상황 등을 듣고 있다. [신화 뉴시스]
“‘그’가 사라졌다. 목소리가 들릴 뿐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일로인 상황에서 행적이 베일에 싸인 중국 지도자를 두고 세계 언론은 이같이 평했다. 그는 “바이러스는 악마다. 우리는 악마를 숨길 수 없다. 중국은 악마와의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고 목소리만 높였을 뿐 ‘싸움터’인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2인자’만 보냈을 뿐이다.

그는 자신에게 쏠린 책임을 전가하려고도 했다. 대만 24시간 뉴스채널 TVBS는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그가 왕샤오둥(王曉東) 후베이성 성장, 장차오량(蔣超良) 후베이성 중국공산당 서기, 저우셴왕(周先旺) 우한시장, 마궈창(馬國强) 우한시 중국공산당 서기 등 이른바 ‘후베이 F4’를 문책할 것임을 시사했다.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 행태다.


중국 네티즌의 비난은 ‘후베이 F4’ 중 저우셴왕 시장에게 쏟아지고 있다. ‘그’는 ‘시(習)황제’로 불리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2인자’는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다.

안팎에서 비난 여론이 일자 시진핑은 2월 11일 베이징의 병원을 처음으로 방문해 진료 상황을 점검했으며 코로나19 발원지 우한의 중증환자 전문병원을 화상으로 연결해 의료진을 격려했다.
우한발(發) 코로나19가 중국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인체(人體)를 넘어 체제(體制)에도 구멍을 내고 있다. 1월 6일 LA타임스는 “우한 폐렴이 부패하고 비효율적이며 투명성·책임성이 결여된 중국 정치체제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보도하면서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코로나19로 인해 시진핑이 선호하는 통치술인 통제 수단, 선전, 민족주의도 상처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시진핑은 신뢰를 상실했다”

오빌 쉘 미국 아시아소사이어티 미중관계센터 소장의 평가는 더욱 가혹하다. 쉘 소장은 “시진핑은 천명(天命)을 잃었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위기는 중국인들에게 수치화할 수 없는 심리적 위기이며, 시진핑은 ‘인민을 보호하는 통치자’로서 신뢰를 상실했다”고 분석했다.

시진핑·리커창 등 중국 지도부에 코로나19는 17년 전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했다. 2002년 11월 16일, 중국 광둥(廣東)성 포산(佛山)시에서 원인 미상의 호흡기 감염 환자가 최초로 보고됐다. 정체불명의 병에 대해 당국은 무관심했다. 정치 일정이 우선이었다.

11월 15일 제16차 중국공산당 당대회가 폐막했다. 당대회에서 3세대 지도자 장쩌민(江澤民)·주룽지(朱鎔基)가 퇴진하고 4세대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 체제가 확정됐다. 이듬해 3월 가장 큰 정치 이벤트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최가 예정돼 있었다. 이 같은 정치 일정 속에서 훗날 ‘사스’라고 일컬어지는 신종 바이러스가 방치됐다.

최초 환자 발생 후 두 달여가 지난 2003년 1월 27일 광둥성 위생건강위원회가 첫 보고서를 작성했다. 사스는 그해 2월 광둥성과 인접한 홍콩으로 확산했다. 3월에는 수도 베이징(北京)에 바이러스가 상륙했다. 사스에 대해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던 중국 위생 당국도 사태를 더는 방관할 수 없었다. 중국은 세계보건기구(WHO)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WHO의 지원을 받으려면 자료를 제출해야 했다. 제한적이나마 실태를 공개했으나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대사화소소화료(大事化小小事化了·큰일은 작게 작은 일은 없게 하라)’라는 말처럼 축소·은폐가 이뤄졌다. 장쩌민의 주치의 출신 장원캉(張文康) 국무원 위생부장은 “베이징에 12명의 환자가 있을 뿐이며, 상황은 통제가 가능하다”고 호도했다.

은폐·기만이 이뤄지는 와중에 내부고발자가 등장했다. 인민해방군 퇴역 군의관 장옌융(蔣彦永)이 “베이징 중국인민해방군총병원(301병원·국군수도통합병원과 비슷하다)을 비롯해 3곳의 병원에만 120명 넘는 사스 환자가 입원해 있다”고 폭로한 것이다. CCTV 등 중국 관영매체는 장옌융의 폭로를 외면했지만 외신은 긴급 뉴스로 보도했다. WHO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세계 각국이 중국에 ‘진실’을 요구했다. 장옌융은 폭로 후 공안 당국에 45일간 구금됐다. 8개월의 가택연금도 이어졌다.

17년 전의 악몽

2003년 3월 15일, 국가주석에 오른 후진타오는 당면 과제인 사스 해결에 나섰다. 첫 조치는 ‘희생양’ 찾기였다. 사태 책임을 물어 장원캉 국무원 위생부장, 멍쉐눙(孟學農) 베이징시장을 사임케 했다. ‘투명한 정보 공개’도 천명했다. 베이징 시민 340명을 포함해 중국 전역에서 1800명의 감염자가 존재한다고 숫자를 정정해 발표했다.

이후 중국 전역에서 대대적인 방역, 감염자 격리·치료 조치가 이어졌다. 사스 관련 정보를 은폐하거나 대응에 소극적인 당(黨)·정(政) 관료들에는 철퇴가 내려졌다. 각급 당·행정단위 책임자 징계·경질·출당 조치가 이어졌다. 사스는 2003년 7월 31일까지 중국에서 감염자 5328명, 사망자 349명, 치사율 6.6%를 기록하고 진정됐다.

‘현재진행형’인 코로나19의 발단→전개→전망은 17년 전 사스 사태 때와 놀라울 만큼 닮았다.

정치 일정 탓 축소·은폐
2월 7일 마스크를 쓴 홍콩 남성이 이날 세상을 뜬 중국 안과의사 리원량(작은 사진) 씨의 사진 아래 국화를 헌화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2월 30일 우한시중심병원 의사로 근무하던 리원량(李文亮)은 사스바이러스에 고(高)양성 반응을 보이는 환자 보고서를 입수했다. 리원량은 우한대 의대 동급생 위챗(모바일 메신저) 그룹에 “우한시 화난(華南)수산물도매시장에서 7건의 사스 확진 환자가 있다”고 올렸다. 보고서와 환자 CT 촬영지도 첨부했다. 그의 글은 실명 공개된 채 인터넷 공간에서 확산했다. 2020년 1월 3일 우한시 공안국은 ‘인터넷에 부정적 발언을 게시했다’는 명목으로 그를 소환했다. 리원량은 반성의 의미를 담은 자술서를 쓰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리원량은 1월 8일 환자 진료 중 코로나19에 감염됐고 격리 치료 중이던 2월 7일 세상을 떠났다.

1월 12일 후베이성에서는 성급(省級) 양회(兩會)가 예정돼 있었다. 후베이성 각급 당·행정기관이 지난 1년 성과를 결산하는 정치 행사다. 후베이성 당국으로서는 ‘제2의 사스’로 1년 성과 결산을 망칠 수 없었다. 최대한 은폐하는 동시에 중앙으로의 보고를 늦췄다. 마궈창 후베이성 당위원회 서기는 1월 31일 “조금 일찍 통제 조치를 취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책 중”이라고 밝혔다. 사후약방문, 만시지탄이었다.

중국 정부는 1월 23일 오전 10시를 기해 ‘우한 봉쇄령’을 발령했다. 때늦은 조처였다. 우한은 인구 1100만 명의 대도시, 남북으로 징광(京廣·베이징과 광저우) 고속철도, 동서로 후한룽(?漢蓉·상하이와 청두) 고속철도가 교차하는 교통 요지다. 시기적으로는 중화권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 연휴를 앞두고 있었다. 전염병이 확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중국 당국의 은폐, 소극적인 대응 속에서 코로나19는 일파만파 확산됐고, 중국 정부는 바이러스에 대한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시진핑 폭정하에 정치체제가 붕괴했다”
2020년 1월 1일 홍콩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홍콩 사태도 시진핑의 지도력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뉴시스]

사스 사태 때와 비교하면 중국의 위생·보건 수준은 진일보했다.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전염병 예방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같은 시스템이 우한에서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중국공산당중앙당교 교지 학습시보(學習時報) 부편집장을 지낸 정치평론가 덩위원(鄧聿文)은 ‘모든 문제를 정치화해 해석하는 범(汎)정치화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중국 당국이 문제를 다룰 때는 반드시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하며, 문제 자체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관료들도 자신의 정치적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상부의 허가 없이는 행동하지 않는 관료주의도 문제를 키운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중국식 거버넌스의 한계 속에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인민들의 분노도 발화점을 넘으려 한다. 시진핑은 뒤로 숨었다. 시진핑은 춘절 당일인 1월 25일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주재하면서 ‘중앙 코로나19 감염 폐렴대응 업무 영도소조(領導小組·태스크포스팀)’ 소장으로 리커창 총리를 임명했다. 발병지 우한시를 방문한 것도 리커창이었다. 전통적으로 내치(內治), 그중 경제 문제는 총리가 전담해 온 전통을 깨고 최고 경제정책 집행기구인 중앙재경영도소조(中央財經領導小組)의 조장을 맡을 정도로 만기친람(萬機親覽)해 온 시진핑으로서는 예외적인 일이다. ‘책임회피’라는 해석이 붙을 수밖에 없다.

빅터 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시진핑이 코로나19를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면 직접 직책을 맡아 영광을 차지하려 했을 것”이라면서 “정치적으로 위험한 사안이기 때문에 리커창에게 떠넘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식인들 분노 표출 이어져

이런 가운데 시진핑 체제를 향한 중국 지식인들의 분노 표출이 이어지고 있다. 쉬장룬(許章潤) 칭화(清華)대 법대 교수는 ‘분노하는 인민은 더는 두렵지 않다’는 제목의 글에서 “시진핑의 폭정하에 정치체제는 붕괴됐다. 30년 넘는 시간 동안 구축돼 온 관료 통치체제도 난맥에 빠졌다. 코로나19와 관련된 공적 논의 여지는 모두 차단당했다. 사회의 근본 경보 시스템도 함께 무력화됐다”고 주장했다.

인권 변호사 쉬즈융(許志永)은 2월 4일 ‘공민자유운동’ 웹사이트에 시진핑 권퇴서(勸退書·퇴진을 권하는 글)를 게시했다. 쉬즈융은 “시진핑 당신이 악인(惡人)은 아니지만 국가지도자가 될 만큼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물러나시죠”라고 일갈했다.

중국 역대 왕조의 멸망 원인은 외적(外敵) 침입, 환관(宦官) 발호와 더불어 농민반란이다. 245명의 천자(天子) 중 명군주로 꼽히는 당 태종(太宗)의 언행을 기록한 ‘정관정요(貞觀政要)’는 “군주는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고 했다. 원조 ‘시황제(始皇帝·진시황)’를 파멸로 몬 것도 진승(陳勝)·오광(吳廣)의 난이었다.

코로나19의 위험을 최초로 경고한 의사 리원량의 죽음이 ‘시(習)황제 독재체제’에 대한 누적된 불만에 불을 지폈다. 주목할 대목은 망자(亡者) 추모를 명분으로 권력에 항의한 현대 중국의 전통이다. 1976년 4월 5일 청명절(淸明節)에는 그해 1월 타계한 저우언라이(朱恩來·1898~1976) 총리 추도를 명분으로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모여든 민중이 장칭(江青)·왕훙원(王洪文)·장춘차오(張春橋)·야오원위안(姚文元) 등 문화대혁명 4인방 타도를 외쳤다. 1989년 4월 같은 장소에서 치러진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중국공산당 총서기 장례식은 톈안먼 사건의 시발점이 됐다. 우한은 청(淸)조를 타도한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의 도화선이 된 우창봉기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친첸훙(秦前紅) 우한대 교수는 “리원량의 죽음 이후 중국인들은 슬픔과 분노라는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가 죽었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환기했다.
‘시황제’는 2020년 ‘베이징의 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이 기사는 신동아 2020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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