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희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가장 많이 고뇌하고 가장 많이 싸운
곪은 상처 그 밑에서 새살이 돋는 것처럼
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희망의 바깥은 없다

++

희망 / 희망을 꿈꾸는 남자

1.
생면부지의 어린 시인 지망생을 불러내어 그동안 당신이 애써 쓴 절망 관련 노트들을 전해주며 이를 바탕으로 희망을 써볼 수 없겠느냐고 했던 그 분. 시인은 하지 못하는 일을 시인 지망생이 할 수 있다는 부추김을 받곤 그 자리에서 약속을 드렸다. 꼭 희망에 대한 시를 써보겠다고
그것이 내 생 평생 빚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나와 그 분의 쓸쓸한 무덤에 미완(未完)의 희망을 놓는다.

아주 오래 전 이미 꺾어진 내 펜의 절망을 그 분께 어떻게 말해야 할까

2.
절대 열고 들어가지 못할 네 단단한 마음을 절망이라 부르지 않고
네가 들어올수 있도록 언제나 열린 내 마음을 희망이라 부르겠다.

너는 결코 내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음을 이미 알기에
하루 하루 나의 절망을 죽여가며 너를 기다림을 희망이라 부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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