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윤석열 대망론’의 虛와 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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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윤석열 대망론’의 虛와 實
야권 정치인, 법조계, 학계, 언론계, 재계 인사들에게 물어보니…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분위기만 조성된다면… 尹, 홍준표•황교안과는 다르다”
⊙ 文 대통령도 尹처럼 권력 의지 없었지만 再修 끝에 靑 입성
⊙ “尹, 배경도 있고 자질도 엿보이지만 국정 경험 없는 게 약점”
⊙ 통합당 의원 일부는 尹 영입에 ‘주저’, 보좌진 일부는 ‘찬성’
⊙ “통합당에 尹에게 舊怨 있는 이들 있다”
⊙ 총선 기간 중 ‘윤석열 마케팅’으로 재미 본 통합당
⊙ TK와 윤석열의 뜻밖의 인연 “尹, 외삼촌 매개로 TK와 친밀”
⊙ “文 정권, (장모 사건이) 문제 되지 않음을 알고 尹 중용”
⊙ “제3지대에서 정치 나서면 중도층•개혁보수층 흡수 가능”
미래통합당의 총선 패배는 통합당뿐 아니라 한국 정치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여대야소(與大野小)’라는 평면적 의미를 넘어 2022년 대선(大選) 판도까지 바꿔버렸다.
현재 통합당에는 ‘포스트 황교안’으로 내세울 만한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다. ‘김종인 비대위’ 구성을 둘러싸고 당내(黨內)에 내홍(內訌)이 일고 있는 마당에 대선 얘기는 꺼낼 수도 없는 처지다. 통합당뿐 아니라 국민의당 등 다른 당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야권의 ‘권력 공백’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인물이 진입할 틈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이런 가운데 주목을 끄는 이가 바로 윤석열(尹錫悅•61) 검찰총장이다.
文 정권과 윤석열, 그리고 野의 함수관계
현역 정치인도 아닌 윤석열 총장에게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념 성향이 완전히 다른 박근혜-문재인 정권하에서 수사를 둘러싸고 양(兩) 정권의 핍박을 받은(받는) 인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원칙주의자’라는 이미지가 각인됐고, 전국적인 지명도도 뒤따랐다. 이는 자연스럽게 차기 대권주자로 거명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지난 1월, 모 일간지에서 실시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석열 총장은 황교안 대표를 누르고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 이어 2위에 올랐다. 대검(大檢)은 ‘윤 총장을 여론조사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해당 매체에 공식 요청했다.
검찰총장으로서 행보를 정치와 결부시키는 움직임을 차단한 것이다. 윤석열 총장은 현재 신라젠과 라임, 울산시장 부정선거 의혹 등 당면한 수사 상황을 챙기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위 여론조사 해프닝은 ‘여론의 풍향계’가 윤 총장의 의지와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음이 드러난 상징적인 사례다.
윤석열 총장이 벌이는 수사의 칼날이 거의 다 현 정권을 향해 있다는 점도 특기할 대목이다. 위 세 건(件) 모두 수사 결과에 따라 권력형 비리로 비화(飛火)할 가능성이 있다. 조국 전 장관 일가 비위(非違) 의혹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권과 맞섰던 윤석열 총장이 다시금 현 정권과 한판 승부를 벌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윤석열 총장의 몸값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의 체급을 올려주는 셈인데, 역설적으로 야권엔 호재(好材)일 수 있다. 리더십 부재(不在)로 혼돈을 겪는 야권 입장에서 높아진 윤 총장의 상품가치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권과 윤석열 총장, 그리고 야권은 서로 묘한 ‘함수관계’에 놓여 있다.
文도 처음엔 ‘정치 안 한다’ 공언
오는 7월 발족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범여권 일각과 반(反)윤석열 계열의 법조 인사들은 공수처가 ‘윤석열 총장의 장모 사건을 다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골수 친문(親文) 지지층도 이러한 여론 조성에 매우 적극적이다. 윤석열 총장 관련 기사가 인터넷에 게재되기만 하면, 장모 건을 언급하며 그를 비난하는 친문 성향 네티즌들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윤 총장은 표면적으론 공수처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단 ‘부패 대응 역량이 강화된다면’이란 단서를 달았다. 그럼에도 윤 총장에게 비판적인 인사들은 공수처를 매개로 윤 총장을 압박하고 있다.
공수처에 의한 ‘윤석열 때리기’ 여부는 윤 총장의 총장 임기와도 직결된다. 윤 총장의 임기는 내년 7월까지다. 현재로선 ‘어떤 상황이 와도’ 윤 총장이 임기를 사수(死守)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만약 윤 총장이 정권과의 불화(不和)가 극에 달해 총장직에서 중도 사퇴 한다면 정국에 커다란 파장이 일 수도 있다. 이는 윤석열 총장의 운명을 가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수사에 집중하는 현직 검찰총장을 두고 차기 운운하는 건 섣부른 예단일지 모른다. 권력 의지도 현재로선 뚜렷하게 감지되지 않는다. 여권이 권력의 우위(優位)를 점한 상황에서 윤석열 총장은 그저 법무부의 일개 ‘외청장(外廳長)’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권력 의지에 대해선 반론이 나온다. 일례로 문재인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死後), 여러 번 정계 입문 권유를 받았지만 정치에 뜻이 없음을 공언했었다. 그때까지 문 대통령은 권력 의지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 좋은’ 이미지가 다였다. 그런 문 대통령도 친노(親盧) 세력의 강권과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재수(再修)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윤 총장도 분위기와 판만 조성되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단편 드라마 두 편 정도는…
대선이 2년이나 남았다는 점이 오히려 윤 총장의 정계 등판에 구실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차기 대권에 있어 ‘대세론’은 그간 별다른 힘을 받지 못했다. 과거 대세론을 탔던 이회창, 이인제 등 유력 주자들이 나가떨어진 게 이를 뒷받침한다.
차기 대권주자는 강한 권력 의지를 바탕으로, 극적인 드라마를 통해 국민의 가슴을 파고 들어야 대권을 쟁취할 수 있다. 윤 총장에게서 권력 의지는 느껴지지 않지만, 박근혜-문재인 정권과 대립하면서 ‘단편 드라마’ 두 편 정도는 썼다고 볼 수 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권력에 대항해 강력한 권한을 휘두르고 있는 윤석열 총장이다. 그것도 ‘원칙주의’ ‘강단’이란 포장지에 싸인 채 말이다. 이런 이미지가 윤 총장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런 그가 정치판에 혜성처럼 등장할 가능성은 있는 걸까. 없다면 그 이유는 뭘까.
《월간조선》은 ‘윤석열 대망론의 허와 실’에 관한 각계 인사의 시각을 폭 넓게 담아봤다. 취재 대상은 현역 야권 정치인을 비롯해 법조계, 학계, 언론계(전•현직 정치부•사회부 데스크), 재계 인사들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윤석열 대망론’에 대해 들어보자.
‘대통령학(學)’의 권위자인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대통령의 자질과 업적을 평가하는 모델을 만든 주역이다. ‘제왕적 대통령’(개인)과 ‘제왕적 대통령제’(제도)로 구분해, 총 10가지 준거(準據)를 만들어 역대 대통령의 업적과 자질을 학문적으로 분석했다.
임동욱 교수는 윤석열 총장이 ‘정무 감각이 없다’고 말한 데에 주목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윤 총장은 ‘검사로서 변한 게 있느냐’는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정무 감각이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고 답변했다.
임동욱 교수는 “‘정무 감각이 없다’는 말은 윤 총장이 수사에 있어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 조국-정경심 부부 등 굵직한 수사를 맡으면서 보수•진보 양 진영에서 비판과 칭송을 동시에 받았다”며 “정무 감각이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임동욱 교수는 정무 감각 부재(不在)라는 점에서 “윤 총장이 정치인으로 변신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인, 특히 대통령은 고도의 정무 능력을 필요로 하는 자리인데, 그런 점에서 윤 총장은 정치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임 교수는 “총선에서 패배한 야당이 일종의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심정에서 윤 총장을 염두에 둘 수는 있다”면서도 “그것은 하나의 옵션에 불과할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임 교수는 또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한때 불었던 “‘안철수 현상’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국정 전반 다룬 경험 없는 게 약점”
임동욱 교수는 그러나 “윤석열 총장만이 가진 내공은 확실히 있다”며 윤 총장의 ‘상품가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윤 총장이 사시(司試) 준비하는 8년 동안 논 게 아니거든요. 그때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졌지만, 그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미국의 유명한 자유시장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1912~2006)의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라고 하지 않습니까. 가풍(家風)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부친인 윤기중(전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교수)씨는 저도 존경하는데, 학계에서 신망이 높은 분입니다. 그런 DNA가 지금의 윤석열 총장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DNA도 무시할 수 없거든요.”
임동욱 교수는 또 “윤 총장은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이 누구냐’고 했을 때 ‘북한’이라고 답했다”며 “국방장관도 망설였던 부분을 자신있게 얘기하는 걸 보면서 그의 확고한 신념을 읽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질 중 하나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의 리더십이 아닌 위임(委任•empowerment)”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총장이 몇 달 전 검찰인권위원회 발족식에서 검찰에 쓴소리를 하는 인권위원회에 ‘불개입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며 “조직을 관리하는 리더로서의 자질은 보인다”고 했다. 다만 “국정 전반을 다룬 경험이 없는 게 약점”이라고 덧붙였다.
임 교수의 분석을 종합하면 ‘정치인으로서의 배경이 있고 자질도 엿보이지만 국정 경험이 없다는 게 약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12년 ‘檢亂’ 당시 尹에 관한 일화
이와 상반되는 견해도 있다. 윤석열 총장과 인연이 있는 변호사 A씨(전직 지검장)는 “정무 감각이 없다는 윤 총장의 말은 겸양의 표현이라고 본다”고 해석했다. A씨는 “내가 아는 윤 총장은 수사의 집중도도 높지만 시류(時流)를 읽는 감각 또한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A씨는 “윤 총장이 검사로서 수사한 대형 사건이 적게 잡아도 10여 건”이라며 “특수부 출신 검사에게 정무 감각이 없다는 건 지나친 겸손 아니면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한 사례를 들려줬다.
“2012년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둘러싸고 검찰 내부에서 한상대 검찰총장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적이 있습니다. 검사들은 중수부 폐지를 결정한 이명박(MB) 정권의 행태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피력하며 한상대 총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이죠. 명백한 항명(抗命)이기도 했고요. 그때 윤석열 총장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었습니다. 윤석열 부장은 큰 틀에서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한편, 후배들을 다독거리며 ‘검찰의 위신에 손상이 가해져선 안 된다’고 달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상하(上下)의 신망을 잃지 않으면서 조직에 윤활유를 칠하며 이끌어나가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게 정무 감각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일까요.”
A씨는 그런 윤 총장의 모습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A씨는 “전 전 대통령은 서로 사이가 안 좋던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과 윤필용 수경사령관 두 사람 모두에게 신임을 받았다”며 “윤 총장도 전두환처럼 활달한 리더십의 소유자로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魔力)이 있다”고 했다. A씨에게 ‘윤석열 총장도 전두환처럼 난세(亂世)를 틈타 대권에까지 오를 수 있다고 보나’ 하고 물었더니 사견임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윤석열 총장이 적당히 물러서면 자기도 죽고 조직도 망가지게 됩니다. 문재인 정권이 공수처 등으로 윤 총장을 계속 압박해올 게 뻔한데 그 ‘승부사’(윤석열을 지칭)가 가만히 물러서려 하겠습니까. 전두환도 12•12 이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고, 내친김에 정권 장악에까지 나선 거 아닙니까. 만약 윤 총장이 외압(外壓)에 의해 밀려난다면 그의 명예에 심각한 손상이 가해지는 일입니다. 아마 그 성격에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때의 선택지는 하나(현실정치 참여)밖에 없죠.”
A씨는 “윤 총장이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의 말만 들으면 윤석열 총장이 상황 논리에 따라 특유의 돌파력을 가지고 대권 고지(高地)를 점령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는 현재 윤 총장이 보여주고 있는 성격에 기인한 탓도 있다. ‘저돌성’ ‘칼잡이’ 같은 인상이 주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尹, 의외로 우유부단… 정치판에서 문제 될 수도”
그의 성격이 겉보기와 다르다는 평가도 상당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처럼 한번 결정하면 그대로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주변의 조언을 들으며 세심하게 저울질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평소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일간지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정치부 데스크를 지낸 B씨는 윤석열 총장 주변 인사들과 친분이 깊다. B씨는 윤 총장에 대해 “의외로 자기 후배 등 주변 사람들이 얘기하면 흔들리는 사람”이라며 “남의 얘기를 뿌리치지 못하는 편”이라고 했다. B씨의 말을 들어보자.
“이런 성격의 소유자는 정치를 한다고 해도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주변의 운동권 그룹에 사실상 얹혀 있는 신세 아닙니까. 황교안 전 대표도 주로 자기와 같은 공안검사 출신에게 조언을 받다가 정국(政局)의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케이스고요. 물론 윤 총장이 황 전 대표 같은 검사 출신이라고 두 사람을 단순 비교하는 건 곤란하죠. 참모를 어떻게 기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B씨도 윤석열 총장의 정계 등판에 있어 선결 조건은 역시 본인의 ‘권력 의지’라고 말했다. 윤 총장 본인이 정치에 뜻이 있어야 하고 자신감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미래통합당 내부 상황이라고 했다. B씨의 설명이다.
“미래통합당이 내년 초까지 뚜렷한 차기 대권주자를 못 찾고, 더불어민주당에 계속 밀리면 통합당 내에서 ‘윤석열 대망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통합당이 윤석열을 받아들일 그릇이 마련돼야 한다는 겁니다. 제 아무리 윤석열의 권력 의지가 강하다고 해도 통합당의 상황이 받쳐줘야죠. 그런데 그 당이 어떤 당입니까. 반기문 대망론이 나왔을 때에도 자기 밥그릇을 안 내어준 당입니다.”
“통합당, 속성상 尹에 10분 만에 붙을 것”
B씨는 홍준표 전 대표가 윤석열 등판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홍 전 대표 성격상, 윤석열 총장이 부각되는 걸 누구보다 꺼릴 거라는 주장이었다. B씨는 또 “일단 윤석열 총장이 당 주도권만 잡는다면 통합당 인사들은 윤 총장에게 자동적으로 붙게 돼 있다”며 “조금 과장하면 10분 만에 줄을 선다. 그게 통합당의 속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윤 총장의 검찰총장 임기가 끝나는 시점도 정계 등판 타이밍으로는 적합하다”고 했다. 임기 만료하고 7~8개월 후가 대선이라 충분히 몸을 풀 수 있다는 얘기다. B씨는 그러나 “현재 윤석열 총장이 총장직에서 자진 사퇴할 가능성은 없다”며 “지금 윤석열 대망론을 ○, ×로 표현한다면, ×에 가깝다”고 결론 내렸다.
윤 총장과 친분이 깊은 언론계 인사 C씨도 “윤석열 총장이 강단이 있을 거 같지만 의외로 섬세한 편”이라고 했다. C씨는 “좋게 말하면 중지(衆志)를 모으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하다”며 “윤 총장 본인보다 주변 참모들의 영향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C씨는 지난 1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인맥을 잘라내는 검찰 인사를 전격 단행한 뒤 달라진 윤석열 총장의 행동 패턴을 예로 들었다. 윤 총장의 수족(手足)들이 검찰 요직 곳곳에 박혀 있을 때에는 거침이 없어 보였지만, 1월 인사 이후엔 수사와 관련해 원론적인 발언만 하고 있다는 얘기다.
C씨는 “윤 총장 장모의 불구속 기소도 윤 총장의 행동 변화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윤 총장이 벌이는 각종 수사만 해도 엄청난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라며 “그 와중에 인척 문제까지 겹쳤고, 이를 의논할 참모들마저 잘려나갔으니 윤 총장의 (우유부단한) 성격상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 방송사 사회부 데스크 출신 D씨는 “설령 윤 총장이 총장직에서 자진 사퇴해 ‘권력에 의한 희생자’ 이미지가 덧씌워진다고 해도 그의 정계 데뷔에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D씨는 박근혜 정권 때 혼외자(婚外子) 문제로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채동욱씨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당시 진보좌파 언론은 혼외자 문제를 특종보도한 《조선일보》만 공격하며 ‘채동욱 띄우기’에 열을 올렸다”며 “그 후 한때 채 전 총장이 정치에 뜻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과는 어떻게 됐느냐”고 반문했다.
“통합당에 尹에게 舊怨 있는 이들 있다”
미래통합당 내부에선 윤석열 총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기자는 지난 4월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10명에게 질문지를 발송해 ‘윤석열 대망론’에 대해 물었다. 총 12개 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재 윤석열 총장이 여권을 겨냥해 벌이는 황운하 당선인을 비롯해, 신라젠•라임 수사 등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다면 왜 그런지,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지를 선택해 그 이유를 상세하게 적어주십시오.
▲윤석열 총장의 임기는 내년 8월까지입니다. 윤 총장이 임기를 무사히 채울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채울 수 있다면 왜 그런지, 채울 수 없다면 왜 그런지를 선택해 그 이유를 상세하게 적어주십시오.
▲윤석열 검찰총장의 이념적 성향은 어디에 해당한다고 보십니까.(객관식. 택1)
① 좌파 ② 중도좌파 ③ 중도우파 ④ 우파
▲그렇게 선택한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윤석열 총장이 정치에 나설 의사가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객관식. 택1)
① 없다 ② 적다 ③ 많다 ④ 아주 많다
▲윤석열 총장이 정치에 마음이 있든 없든 그가 현실정치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다면 왜 그런지, 아니라면 왜 아닌지 그 이유를 상세히 적어주십시오.
▲윤석열 총장이 미래통합당을 정계 입문의 발판으로 선택한다면 당내에선 어떤 반응을 보일 거라고 보십니까. 그로 인해 예상되는 전망을 자세히 기술해주십시오.
▲윤석열 총장의 장모가 최근 ‘사문서 위조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이 건이 윤 총장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거라고 보십니까. 자세한 답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윤석열 총장이 갖고 있는 강점이 무엇인지 상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윤석열 총장의 약점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십시오.
▲그간 당의 대표를 맡았던 검사 출신 황교안-홍준표-강재섭-박희태 전 의원과 비교했을 때, 윤석열 총장만이 갖고 있는 남다른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윤석열 총장이 정계에 입문한다고 가정했을 때, 황교안 전 대표와 윤석열 총장 중 차기 대권주자로 누굴 지지할 의향이십니까.
이들 대다수는 윤석열 총장에 대해 얘기하는 걸 꺼렸다. 그중 두 의원에게서만 답변이 왔다. 다음은 다선(多選)인 E 의원의 답변을 요약한 것이다.
“윤석열 총장의 이념 성향은 중도우파쯤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정치에 나설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합니다. 당내에서도 아직 정리된 입장은 없는 걸로 압니다. 다만 윤 총장이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검사로서 가져야 할 자질을 갖추고 있고, 이러한 기본적인 소양이 윤 총장의 가장 큰 강점일 겁니다. 원칙주의자로서 소신을 갖고 지금의 권력형 비리 수사를 성역 없이 완수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현 정부와 여권이 윤 총장을 겨냥한 흔들기가 있겠지만, 법치수호를 위해서라도 임기는 끝까지 채워야 합니다.”
E 의원은 장모 불구속 기소 건에 대해선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교안-윤석열 중 누굴 지지하겠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말을 흐렸다. E 의원의 답변을 보면, 윤 총장의 등판에 다소 회의적임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재선(再選)에 실패한 F 의원은 당내 상황을 바탕으로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 중, 윤석열 총장에게 구원(舊怨)이 있는 이들이 몇몇 있습니다. 이른바 ‘적폐수사’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죠. 이 사람들이 윤 총장을 반길 리 만무합니다. 윤 총장이 특유의 리더십으로 이들을 공들여 설득하지 않는다면 당내 안착(安着)은 어려울 겁니다. 정당은 이념 공동체인 동시에 동지적 관계로 묶여 있는 집단입니다. 그간 자신들을 겨눴던 검사 출신의 외부 인사가 들어온다면 그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홍준표-황교안-윤석열을 비교한다면?
‘같은 검사 출신인 황교안-홍준표 전 대표와 비교한다면 어떠냐’고 묻자 F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윤석열은) 두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죠. 황교안보다는 능수능란하고 홍준표보다는 덜 계산적이라고 할까요. 홍준표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 황교안에 대한 실망감이 역설적으로 윤석열의 기대치를 올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향적인 자세에서 당내 분위기만 조성한다면 윤 총장을 영입해 당의 자산으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통합당 보좌진 일부는 ‘윤석열 대망론’에 약간의 희망을 거는 눈치였다. 통합당이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의원 보좌진 중 상당수가 실업자 될 위기에 놓였다. 이들은 ‘당이 자신들을 챙겨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다. 그런 불만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듯했다. 통합당의 전신(前身)인 한나라당 시절(2007년)부터 당에 몸 담아온 국회의원 보좌관은 이런 의견을 내놨다.
“우리 당 영감(보좌진이 국회의원을 일컬을 때 쓰는 은어)들은 대체로 강한 자들에게 약한 편입니다. 2016년 총선 때 새누리당 공천 보세요. 몇몇 중진 빼고는 ‘박근혜 청와대’의 일방적 공천에 제동도 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시(內侍)’ 소리도 들었죠. 총선에서 대패(大敗)했음에도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는 분들 많습니다. 보좌진이 소모품인 양 취급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윤석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합니다.”
이 보좌관은 “사실 총선을 치르면서 윤석열 마케팅으로 재미 본 당선자가 있다”고 귀띔했다. 그가 말해준 이는 충남 공주•부여에서 당선된 정진석 의원이었다. 정 의원은 선거를 치르면서 ‘윤석열은 하나 남은 충청의 인재’ ‘윤석열, 제가 지키겠습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써 올리기도 했다. 참고로 윤 총장의 부친 윤기중 명예교수의 고향이 충남 공주다.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도 서울 유세에서 “대한민국의 법질서와 민주주의 보존을 위해 우리는 윤 총장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현역 의원 비서관은 “박근혜 탄핵 사태 이후 홍준표-황교안 전 대표가 보여준 리더십은 그 끝이 좋지 않았다”며 “당의 체질 개선과 물갈이 차원에서 윤석열 총장을 영입하는 데 동의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尹, 외삼촌 매개로 TK와 接點”
다만 이 비서관은 당내 기반뿐 아니라 지역 기반이 허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윤 총장 본인은 서울, 외가(外家)는 강원도(강릉)인 걸로 아는데 정치함에 있어 이게 장점일지 단점일지는 잘 모르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비서관은 “현재 통합당의 핵심 지역 기반인 대구•경북(TK)과 접점(接點)이 없다는 게 걸림돌 중 하나”라고 했다.
이와 상반되는 얘기도 있다.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G씨는 “윤석열 총장은 외삼촌을 매개로 대구•경북 지역과 밀접한 인연을 쌓았다”고 말했다. G씨의 말이다.
“윤 총장의 외삼촌 고(故) 이봉모(1930~2016)씨는 한양대 화공과를 졸업해 한양대병원장까지 지냈고, 11~12대 한국국민당 국회의원을 역임했습니다. 이봉모씨는 한양대 설립자인 김연준(1914~2008) 이사장의 최측근으로 한양대를 실질적으로 경영한 분이죠. 이봉모씨는 1970년대 야구협회 부회장을 지내면서, 고교 야구에서 두각을 드러낸 경북고 야구선수들을 대거 스카우트해 한양대로 끌어왔어요. 그 덕에 경북고 출신 야구선수 중 상당수가 이봉모씨를 은인(恩人)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게 윤 총장과 무슨 관련이 있냐’고 묻자, G 변호사는 “윤 총장도 야구를 좋아해 어렸을 때 외삼촌(이봉모씨)을 따라 대구에 자주 놀러왔다고 한다”며 “그 시기 경북고 출신 야구선수는 물론 지역 인사들과 안면을 튼 걸로 안다”고 말했다. G 변호사는 “윤 총장이 박근혜 정권 때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좌천돼 대구고검에서 2년 정도 근무했는데, 그때도 지역 인사들의 환대를 받았다”며 “TK에서 윤 총장 이미지는 나쁘지 않다”고 했다.
‘제3지대’ 구축 시나리오
대다수 인사는 윤석열 총장이 정치에 입문할 경우, 통합당을 기반으로 나설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윤 총장의 정치 성향이 통합당에 가깝고, 현실적으로 통합당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거라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와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이도 있었다. 법조인 A씨가 그중 하나였다. A씨는 “윤석열 총장은 기성 정치에 깊은 불신을 갖고 있다”며 “그런 그가 정치를 한다고 해도 지금의 기성 정당과 손잡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진단했다. 그의 말이다.
“윤석열은 인생의 쓴맛을 보며 밑바닥까지 추락해본 사람입니다. 그것도 정치 권력에 의해서죠. 보수와 진보로부터 다 핍박을 받았으니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이나 회의 같은 게 있을 겁니다. 그런 그가 성향이 보수라고 ‘통합당을 선택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건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오히려 ‘공정’이라는 매력적인 기치를 내걸고 ‘제3지대’를 구축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나’라고 반문하자 “불가능을 뛰어넘는 게 정치다. 그렇다면 한번 써볼 수도 있는 시나리오”라며 이렇게 분석했다.
“일단 통합당의 대(對)국민 이미지가 너무 안 좋습니다. 윤 총장을 받아들일지도 현재로선 미지수고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지 않을 확률이 큽니다. 그럼 독자세력 구축인데 이게 오히려 윤 총장에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제3지대를 구축하면 중도층의 반(反)문재인 정서를 일부 흡수할 수 있고, 이른바 개혁보수 성향 국민의 지지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미래통합당으로 대표되는 제1야당이 윤석열을 중심으로 ‘헤쳐 모여’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21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한 율사(律士) 출신 인사도 “통합당은 어차피 희망이 없다”며 “윤 총장이 좀 더 넓은 시각을 갖고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경제가 파탄 나야 尹 등판할 수 있지 않나…”
윤석열 총장에 대한 재계 인사들의 인식은 어떨까. 대기업은 속성상 권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차기 권력엔 더더욱 예민하다. 그렇기에 대기업은 정보기관만큼 치밀하게 정보를 수집하며 권력의 흐름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모 대기업 기획조정실 중견 간부(부사장급)는 “윤 총장이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확고한 시장경제주의자라는 건 알겠는데 그간의 행보를 보면 우리로서는 불안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H씨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윤석열 검찰이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를 벌이면서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을 구속한 사례를 지적했다. H씨는 “윤석열이 등판하는 시점은 경제가 파탄 나는 시점이 왔을 때”라고 예측했다. 그의 말이다.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문재인 정권의 포퓰리즘이 점점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국가 재정을 쏟아부어 국민들에게 ‘현금살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부메랑이 돼 정권의 목을 조를 겁니다. 우리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타이밍이 오면 국민들은 ‘문재인 정권으로 도저히 안 되겠다’고 각성(覺醒)하겠죠. 안타깝게도 경제가 완전히 파탄 나는 순간이 와야 윤석열이 등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현재 중소기업 대표로 있는 H씨는 윤석열 총장과 약간의 인연이 있다. H씨는 “2000년대 중반 우리 회사(과거 근무했던 대기업)가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적이 있어 내가 정보 취득에 나섰다”며 “그때 윤석열 검사를 접촉하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H씨는 “고교 동문이던 검찰 수사관에게 ‘윤 검사와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했는데, 수사관이 ‘그 양반(윤석열)에게 부탁해봐야 소용없다. 망신만 당한다’며 만류하더라”고 했다.
당시 수사관은 H씨에게 “윤 검사는 검찰 내에서 알아주는 강골(强骨)이다. 부탁이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부탁하면 아마 더 세게 조사할 것”이란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H씨는 “그 사람(윤석열)이 어떤 사람인지 좀 알고 있으니까 지금의 그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건 사실”이라며 “역사에 남는 검찰총장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H씨는 “대권 얘기는 다소 뜬금 없어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모 문제가 발목 잡을까?
지금 윤석열 총장에게 당면한 장애물 중 하나는 앞서 언급한 장모 최모씨 건이다. 범여권 일각은 이 문제를 대대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일부 언론도 이에 발맞춰 윤 총장 장모 건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최씨는 ▲347억원짜리 잔고증명서 위조 ▲요양급여 부당수급한 파주 요양병원 경영 관여 ▲동업자 무고죄 고소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 중 잔고증명서 위조에 대해서만 지난 3월 사문서 위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동업자 정모씨가 고소•고발한 소송사기, 무고, 모해위증 등 혐의는 현재 수사 중이다. 검찰은 잔고증명서 위조에 개입한 의혹을 받았던 윤 총장의 부인 김건희씨에 대해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이에 대해 G씨는 “윤석열 총장 장모 건을 윤 총장과 결부시키는 일부의 행태는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윤 총장 장모 건은 박근혜 정권 당시 청와대가 샅샅이 조사했던 부분이라고 한다. G씨는 “이미 검찰 내부에서 클리어(정리)하게 정리된 사안인데 왜 이제서야 재점화되는지 모르겠다. 다른 의도가 엿보인다”고 의심했다.
G씨가 말하는 ‘클리어하게 정리된 사안’이 무엇인지 조금 자세히 살펴보자.
최씨에게 불만을 가진 동업자 정씨는 2012년 윤석열 대검 중수1과장이 최씨 관련 사건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법무부와 검찰에 제출했다. 대검 감찰1과는 윤석열 과장을 조사한 후, 별다른 특이점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종결 처분을 내렸다. 그 뒤 정씨는 윤석열 과장이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을 문제 삼아 ‘윤 과장의 발언으로 인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법무부에 다시 민원을 냈다.
법무부는 “귀하께서 2013년 12월 18일 제출한 민원의 취지는 윤석열 검사에 대하여 엄중한 징계가 필요하다는 취지인 것으로 보입니다. 검사징계위원회에서는 2013년 12월 18일 윤석열 검사에 대하여 정직 1월의 징계처분을 의결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회신을 정씨에게 보냈다. 즉 윤석열 총장은 장모 사건 개입 의혹과 관련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고, 인터뷰 발언에 대해서 ‘정직 처분’을 받은 것이다.
G씨는 “2013년 ‘정직 처분’을 받은 시기는 윤 총장이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직후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모 사건과 관련해 정씨의 주장대로 윤 총장이 개입한 게 사실이었다면, 박근혜 정권이 윤 총장의 옷을 벗겼을 거란 주장이다.
“장모와 부인, 공수처 수사 대상 아냐”
G씨는 이어 “동업자 정씨와 장모 간 금전 거래가 있던 시점은 윤 총장과 김건희씨가 결혼하기 훨씬 전의 일”이라며 “이제 와서 윤 총장 책임 운운하는 건 ‘신종 연좌제’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정권도 (장모 건이) 문제 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에 윤 총장을 중용(重用)한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일부 친문•반(反)윤석열 인사들의 주장대로 윤석열 총장 장모 건은 공수처 수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걸까. 《경향신문》(지난 5월11일자)은 “윤 총장 장모와 부인은 공수처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대상은 검찰총장과 그의 배우자, 직계존비속인데, 장모는 직계존비속이 아니다. 공수처법상 ‘고위공직자범죄’는 형법상 직무유기•직권남용•피의사실공표•알선수뢰•뇌물공여, 직무와 관련된 형법상 공문서위조•위조공문서작성,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부정수수 등이다. 가족의 경우 고위공직자 직무와 관련해 이런 범죄를 저질러야 수사 대상이다. 윤 총장 장모와 부인의 혐의는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윤 총장이 장모•부인과 관련해 고발된 혐의는 현재 ‘의혹’ 수준이다. 윤 총장이 사건에 직접 개입해 수사를 방해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야 처벌 대상이 된다.〉
이상의 취재 노트를 정리하면, 다수의 인사는 윤석열 총장의 정계 등판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이유도 제각각이었다. 이유가 제각각인 데에는 윤석열 총장 본인의 정확한 의중(意中)을 알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했다고 기자는 판단한다. 사실 윤 총장은 공석•사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정치를 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보인 적이 없다.
다만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사석에서 ‘남자는 공직(公職)을 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검사도 공직이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는 게 사실이다. 문재인 정권을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변하느냐, 야당의 내분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윤석열 총장의 입장도 지금보다 더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윤 총장 본인은 총장으로서 임무만 생각하고 있을 뿐, 그 이후에 대해서는 숙고(熟考)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당연히 ‘대망론’에 대해서도 코웃음을 치고 있을지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윤 총장의 의지와 관계 없이 그를 원하는 목소리가 작게나마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망론’의 虛와 實
야권 정치인, 법조계, 학계, 언론계, 재계 인사들에게 물어보니…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분위기만 조성된다면… 尹, 홍준표•황교안과는 다르다”
⊙ 文 대통령도 尹처럼 권력 의지 없었지만 再修 끝에 靑 입성
⊙ “尹, 배경도 있고 자질도 엿보이지만 국정 경험 없는 게 약점”
⊙ 통합당 의원 일부는 尹 영입에 ‘주저’, 보좌진 일부는 ‘찬성’
⊙ “통합당에 尹에게 舊怨 있는 이들 있다”
⊙ 총선 기간 중 ‘윤석열 마케팅’으로 재미 본 통합당
⊙ TK와 윤석열의 뜻밖의 인연 “尹, 외삼촌 매개로 TK와 친밀”
⊙ “文 정권, (장모 사건이) 문제 되지 않음을 알고 尹 중용”
⊙ “제3지대에서 정치 나서면 중도층•개혁보수층 흡수 가능”
미래통합당의 총선 패배는 통합당뿐 아니라 한국 정치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여대야소(與大野小)’라는 평면적 의미를 넘어 2022년 대선(大選) 판도까지 바꿔버렸다.
현재 통합당에는 ‘포스트 황교안’으로 내세울 만한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다. ‘김종인 비대위’ 구성을 둘러싸고 당내(黨內)에 내홍(內訌)이 일고 있는 마당에 대선 얘기는 꺼낼 수도 없는 처지다. 통합당뿐 아니라 국민의당 등 다른 당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야권의 ‘권력 공백’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인물이 진입할 틈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이런 가운데 주목을 끄는 이가 바로 윤석열(尹錫悅•61) 검찰총장이다.
文 정권과 윤석열, 그리고 野의 함수관계
현역 정치인도 아닌 윤석열 총장에게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념 성향이 완전히 다른 박근혜-문재인 정권하에서 수사를 둘러싸고 양(兩) 정권의 핍박을 받은(받는) 인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원칙주의자’라는 이미지가 각인됐고, 전국적인 지명도도 뒤따랐다. 이는 자연스럽게 차기 대권주자로 거명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지난 1월, 모 일간지에서 실시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석열 총장은 황교안 대표를 누르고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 이어 2위에 올랐다. 대검(大檢)은 ‘윤 총장을 여론조사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해당 매체에 공식 요청했다.
검찰총장으로서 행보를 정치와 결부시키는 움직임을 차단한 것이다. 윤석열 총장은 현재 신라젠과 라임, 울산시장 부정선거 의혹 등 당면한 수사 상황을 챙기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위 여론조사 해프닝은 ‘여론의 풍향계’가 윤 총장의 의지와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음이 드러난 상징적인 사례다.
윤석열 총장이 벌이는 수사의 칼날이 거의 다 현 정권을 향해 있다는 점도 특기할 대목이다. 위 세 건(件) 모두 수사 결과에 따라 권력형 비리로 비화(飛火)할 가능성이 있다. 조국 전 장관 일가 비위(非違) 의혹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권과 맞섰던 윤석열 총장이 다시금 현 정권과 한판 승부를 벌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윤석열 총장의 몸값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의 체급을 올려주는 셈인데, 역설적으로 야권엔 호재(好材)일 수 있다. 리더십 부재(不在)로 혼돈을 겪는 야권 입장에서 높아진 윤 총장의 상품가치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권과 윤석열 총장, 그리고 야권은 서로 묘한 ‘함수관계’에 놓여 있다.
文도 처음엔 ‘정치 안 한다’ 공언
오는 7월 발족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범여권 일각과 반(反)윤석열 계열의 법조 인사들은 공수처가 ‘윤석열 총장의 장모 사건을 다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골수 친문(親文) 지지층도 이러한 여론 조성에 매우 적극적이다. 윤석열 총장 관련 기사가 인터넷에 게재되기만 하면, 장모 건을 언급하며 그를 비난하는 친문 성향 네티즌들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윤 총장은 표면적으론 공수처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단 ‘부패 대응 역량이 강화된다면’이란 단서를 달았다. 그럼에도 윤 총장에게 비판적인 인사들은 공수처를 매개로 윤 총장을 압박하고 있다.
공수처에 의한 ‘윤석열 때리기’ 여부는 윤 총장의 총장 임기와도 직결된다. 윤 총장의 임기는 내년 7월까지다. 현재로선 ‘어떤 상황이 와도’ 윤 총장이 임기를 사수(死守)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만약 윤 총장이 정권과의 불화(不和)가 극에 달해 총장직에서 중도 사퇴 한다면 정국에 커다란 파장이 일 수도 있다. 이는 윤석열 총장의 운명을 가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수사에 집중하는 현직 검찰총장을 두고 차기 운운하는 건 섣부른 예단일지 모른다. 권력 의지도 현재로선 뚜렷하게 감지되지 않는다. 여권이 권력의 우위(優位)를 점한 상황에서 윤석열 총장은 그저 법무부의 일개 ‘외청장(外廳長)’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권력 의지에 대해선 반론이 나온다. 일례로 문재인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死後), 여러 번 정계 입문 권유를 받았지만 정치에 뜻이 없음을 공언했었다. 그때까지 문 대통령은 권력 의지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 좋은’ 이미지가 다였다. 그런 문 대통령도 친노(親盧) 세력의 강권과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재수(再修)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윤 총장도 분위기와 판만 조성되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단편 드라마 두 편 정도는…
대선이 2년이나 남았다는 점이 오히려 윤 총장의 정계 등판에 구실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차기 대권에 있어 ‘대세론’은 그간 별다른 힘을 받지 못했다. 과거 대세론을 탔던 이회창, 이인제 등 유력 주자들이 나가떨어진 게 이를 뒷받침한다.
차기 대권주자는 강한 권력 의지를 바탕으로, 극적인 드라마를 통해 국민의 가슴을 파고 들어야 대권을 쟁취할 수 있다. 윤 총장에게서 권력 의지는 느껴지지 않지만, 박근혜-문재인 정권과 대립하면서 ‘단편 드라마’ 두 편 정도는 썼다고 볼 수 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권력에 대항해 강력한 권한을 휘두르고 있는 윤석열 총장이다. 그것도 ‘원칙주의’ ‘강단’이란 포장지에 싸인 채 말이다. 이런 이미지가 윤 총장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런 그가 정치판에 혜성처럼 등장할 가능성은 있는 걸까. 없다면 그 이유는 뭘까.
《월간조선》은 ‘윤석열 대망론의 허와 실’에 관한 각계 인사의 시각을 폭 넓게 담아봤다. 취재 대상은 현역 야권 정치인을 비롯해 법조계, 학계, 언론계(전•현직 정치부•사회부 데스크), 재계 인사들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윤석열 대망론’에 대해 들어보자.
‘대통령학(學)’의 권위자인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대통령의 자질과 업적을 평가하는 모델을 만든 주역이다. ‘제왕적 대통령’(개인)과 ‘제왕적 대통령제’(제도)로 구분해, 총 10가지 준거(準據)를 만들어 역대 대통령의 업적과 자질을 학문적으로 분석했다.
임동욱 교수는 윤석열 총장이 ‘정무 감각이 없다’고 말한 데에 주목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윤 총장은 ‘검사로서 변한 게 있느냐’는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정무 감각이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고 답변했다.
임동욱 교수는 “‘정무 감각이 없다’는 말은 윤 총장이 수사에 있어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 조국-정경심 부부 등 굵직한 수사를 맡으면서 보수•진보 양 진영에서 비판과 칭송을 동시에 받았다”며 “정무 감각이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임동욱 교수는 정무 감각 부재(不在)라는 점에서 “윤 총장이 정치인으로 변신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인, 특히 대통령은 고도의 정무 능력을 필요로 하는 자리인데, 그런 점에서 윤 총장은 정치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임 교수는 “총선에서 패배한 야당이 일종의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심정에서 윤 총장을 염두에 둘 수는 있다”면서도 “그것은 하나의 옵션에 불과할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임 교수는 또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한때 불었던 “‘안철수 현상’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국정 전반 다룬 경험 없는 게 약점”
임동욱 교수는 그러나 “윤석열 총장만이 가진 내공은 확실히 있다”며 윤 총장의 ‘상품가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윤 총장이 사시(司試) 준비하는 8년 동안 논 게 아니거든요. 그때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졌지만, 그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미국의 유명한 자유시장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1912~2006)의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라고 하지 않습니까. 가풍(家風)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부친인 윤기중(전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교수)씨는 저도 존경하는데, 학계에서 신망이 높은 분입니다. 그런 DNA가 지금의 윤석열 총장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DNA도 무시할 수 없거든요.”
임동욱 교수는 또 “윤 총장은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이 누구냐’고 했을 때 ‘북한’이라고 답했다”며 “국방장관도 망설였던 부분을 자신있게 얘기하는 걸 보면서 그의 확고한 신념을 읽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질 중 하나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의 리더십이 아닌 위임(委任•empowerment)”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 총장이 몇 달 전 검찰인권위원회 발족식에서 검찰에 쓴소리를 하는 인권위원회에 ‘불개입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며 “조직을 관리하는 리더로서의 자질은 보인다”고 했다. 다만 “국정 전반을 다룬 경험이 없는 게 약점”이라고 덧붙였다.
임 교수의 분석을 종합하면 ‘정치인으로서의 배경이 있고 자질도 엿보이지만 국정 경험이 없다는 게 약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12년 ‘檢亂’ 당시 尹에 관한 일화
이와 상반되는 견해도 있다. 윤석열 총장과 인연이 있는 변호사 A씨(전직 지검장)는 “정무 감각이 없다는 윤 총장의 말은 겸양의 표현이라고 본다”고 해석했다. A씨는 “내가 아는 윤 총장은 수사의 집중도도 높지만 시류(時流)를 읽는 감각 또한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A씨는 “윤 총장이 검사로서 수사한 대형 사건이 적게 잡아도 10여 건”이라며 “특수부 출신 검사에게 정무 감각이 없다는 건 지나친 겸손 아니면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한 사례를 들려줬다.
“2012년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둘러싸고 검찰 내부에서 한상대 검찰총장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적이 있습니다. 검사들은 중수부 폐지를 결정한 이명박(MB) 정권의 행태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피력하며 한상대 총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이죠. 명백한 항명(抗命)이기도 했고요. 그때 윤석열 총장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었습니다. 윤석열 부장은 큰 틀에서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한편, 후배들을 다독거리며 ‘검찰의 위신에 손상이 가해져선 안 된다’고 달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상하(上下)의 신망을 잃지 않으면서 조직에 윤활유를 칠하며 이끌어나가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게 정무 감각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일까요.”
A씨는 그런 윤 총장의 모습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A씨는 “전 전 대통령은 서로 사이가 안 좋던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과 윤필용 수경사령관 두 사람 모두에게 신임을 받았다”며 “윤 총장도 전두환처럼 활달한 리더십의 소유자로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魔力)이 있다”고 했다. A씨에게 ‘윤석열 총장도 전두환처럼 난세(亂世)를 틈타 대권에까지 오를 수 있다고 보나’ 하고 물었더니 사견임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윤석열 총장이 적당히 물러서면 자기도 죽고 조직도 망가지게 됩니다. 문재인 정권이 공수처 등으로 윤 총장을 계속 압박해올 게 뻔한데 그 ‘승부사’(윤석열을 지칭)가 가만히 물러서려 하겠습니까. 전두환도 12•12 이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고, 내친김에 정권 장악에까지 나선 거 아닙니까. 만약 윤 총장이 외압(外壓)에 의해 밀려난다면 그의 명예에 심각한 손상이 가해지는 일입니다. 아마 그 성격에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때의 선택지는 하나(현실정치 참여)밖에 없죠.”
A씨는 “윤 총장이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의 말만 들으면 윤석열 총장이 상황 논리에 따라 특유의 돌파력을 가지고 대권 고지(高地)를 점령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는 현재 윤 총장이 보여주고 있는 성격에 기인한 탓도 있다. ‘저돌성’ ‘칼잡이’ 같은 인상이 주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尹, 의외로 우유부단… 정치판에서 문제 될 수도”
그의 성격이 겉보기와 다르다는 평가도 상당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처럼 한번 결정하면 그대로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주변의 조언을 들으며 세심하게 저울질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평소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일간지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정치부 데스크를 지낸 B씨는 윤석열 총장 주변 인사들과 친분이 깊다. B씨는 윤 총장에 대해 “의외로 자기 후배 등 주변 사람들이 얘기하면 흔들리는 사람”이라며 “남의 얘기를 뿌리치지 못하는 편”이라고 했다. B씨의 말을 들어보자.
“이런 성격의 소유자는 정치를 한다고 해도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주변의 운동권 그룹에 사실상 얹혀 있는 신세 아닙니까. 황교안 전 대표도 주로 자기와 같은 공안검사 출신에게 조언을 받다가 정국(政局)의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케이스고요. 물론 윤 총장이 황 전 대표 같은 검사 출신이라고 두 사람을 단순 비교하는 건 곤란하죠. 참모를 어떻게 기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B씨도 윤석열 총장의 정계 등판에 있어 선결 조건은 역시 본인의 ‘권력 의지’라고 말했다. 윤 총장 본인이 정치에 뜻이 있어야 하고 자신감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미래통합당 내부 상황이라고 했다. B씨의 설명이다.
“미래통합당이 내년 초까지 뚜렷한 차기 대권주자를 못 찾고, 더불어민주당에 계속 밀리면 통합당 내에서 ‘윤석열 대망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통합당이 윤석열을 받아들일 그릇이 마련돼야 한다는 겁니다. 제 아무리 윤석열의 권력 의지가 강하다고 해도 통합당의 상황이 받쳐줘야죠. 그런데 그 당이 어떤 당입니까. 반기문 대망론이 나왔을 때에도 자기 밥그릇을 안 내어준 당입니다.”
“통합당, 속성상 尹에 10분 만에 붙을 것”
B씨는 홍준표 전 대표가 윤석열 등판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홍 전 대표 성격상, 윤석열 총장이 부각되는 걸 누구보다 꺼릴 거라는 주장이었다. B씨는 또 “일단 윤석열 총장이 당 주도권만 잡는다면 통합당 인사들은 윤 총장에게 자동적으로 붙게 돼 있다”며 “조금 과장하면 10분 만에 줄을 선다. 그게 통합당의 속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윤 총장의 검찰총장 임기가 끝나는 시점도 정계 등판 타이밍으로는 적합하다”고 했다. 임기 만료하고 7~8개월 후가 대선이라 충분히 몸을 풀 수 있다는 얘기다. B씨는 그러나 “현재 윤석열 총장이 총장직에서 자진 사퇴할 가능성은 없다”며 “지금 윤석열 대망론을 ○, ×로 표현한다면, ×에 가깝다”고 결론 내렸다.
윤 총장과 친분이 깊은 언론계 인사 C씨도 “윤석열 총장이 강단이 있을 거 같지만 의외로 섬세한 편”이라고 했다. C씨는 “좋게 말하면 중지(衆志)를 모으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하다”며 “윤 총장 본인보다 주변 참모들의 영향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C씨는 지난 1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인맥을 잘라내는 검찰 인사를 전격 단행한 뒤 달라진 윤석열 총장의 행동 패턴을 예로 들었다. 윤 총장의 수족(手足)들이 검찰 요직 곳곳에 박혀 있을 때에는 거침이 없어 보였지만, 1월 인사 이후엔 수사와 관련해 원론적인 발언만 하고 있다는 얘기다.
C씨는 “윤 총장 장모의 불구속 기소도 윤 총장의 행동 변화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윤 총장이 벌이는 각종 수사만 해도 엄청난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라며 “그 와중에 인척 문제까지 겹쳤고, 이를 의논할 참모들마저 잘려나갔으니 윤 총장의 (우유부단한) 성격상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 방송사 사회부 데스크 출신 D씨는 “설령 윤 총장이 총장직에서 자진 사퇴해 ‘권력에 의한 희생자’ 이미지가 덧씌워진다고 해도 그의 정계 데뷔에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D씨는 박근혜 정권 때 혼외자(婚外子) 문제로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채동욱씨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당시 진보좌파 언론은 혼외자 문제를 특종보도한 《조선일보》만 공격하며 ‘채동욱 띄우기’에 열을 올렸다”며 “그 후 한때 채 전 총장이 정치에 뜻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과는 어떻게 됐느냐”고 반문했다.
“통합당에 尹에게 舊怨 있는 이들 있다”
미래통합당 내부에선 윤석열 총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기자는 지난 4월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10명에게 질문지를 발송해 ‘윤석열 대망론’에 대해 물었다. 총 12개 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재 윤석열 총장이 여권을 겨냥해 벌이는 황운하 당선인을 비롯해, 신라젠•라임 수사 등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다면 왜 그런지,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지를 선택해 그 이유를 상세하게 적어주십시오.
▲윤석열 총장의 임기는 내년 8월까지입니다. 윤 총장이 임기를 무사히 채울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채울 수 있다면 왜 그런지, 채울 수 없다면 왜 그런지를 선택해 그 이유를 상세하게 적어주십시오.
▲윤석열 검찰총장의 이념적 성향은 어디에 해당한다고 보십니까.(객관식. 택1)
① 좌파 ② 중도좌파 ③ 중도우파 ④ 우파
▲그렇게 선택한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윤석열 총장이 정치에 나설 의사가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객관식. 택1)
① 없다 ② 적다 ③ 많다 ④ 아주 많다
▲윤석열 총장이 정치에 마음이 있든 없든 그가 현실정치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다면 왜 그런지, 아니라면 왜 아닌지 그 이유를 상세히 적어주십시오.
▲윤석열 총장이 미래통합당을 정계 입문의 발판으로 선택한다면 당내에선 어떤 반응을 보일 거라고 보십니까. 그로 인해 예상되는 전망을 자세히 기술해주십시오.
▲윤석열 총장의 장모가 최근 ‘사문서 위조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이 건이 윤 총장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거라고 보십니까. 자세한 답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윤석열 총장이 갖고 있는 강점이 무엇인지 상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윤석열 총장의 약점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십시오.
▲그간 당의 대표를 맡았던 검사 출신 황교안-홍준표-강재섭-박희태 전 의원과 비교했을 때, 윤석열 총장만이 갖고 있는 남다른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윤석열 총장이 정계에 입문한다고 가정했을 때, 황교안 전 대표와 윤석열 총장 중 차기 대권주자로 누굴 지지할 의향이십니까.
이들 대다수는 윤석열 총장에 대해 얘기하는 걸 꺼렸다. 그중 두 의원에게서만 답변이 왔다. 다음은 다선(多選)인 E 의원의 답변을 요약한 것이다.
“윤석열 총장의 이념 성향은 중도우파쯤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정치에 나설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합니다. 당내에서도 아직 정리된 입장은 없는 걸로 압니다. 다만 윤 총장이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검사로서 가져야 할 자질을 갖추고 있고, 이러한 기본적인 소양이 윤 총장의 가장 큰 강점일 겁니다. 원칙주의자로서 소신을 갖고 지금의 권력형 비리 수사를 성역 없이 완수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현 정부와 여권이 윤 총장을 겨냥한 흔들기가 있겠지만, 법치수호를 위해서라도 임기는 끝까지 채워야 합니다.”
E 의원은 장모 불구속 기소 건에 대해선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교안-윤석열 중 누굴 지지하겠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말을 흐렸다. E 의원의 답변을 보면, 윤 총장의 등판에 다소 회의적임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재선(再選)에 실패한 F 의원은 당내 상황을 바탕으로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 중, 윤석열 총장에게 구원(舊怨)이 있는 이들이 몇몇 있습니다. 이른바 ‘적폐수사’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죠. 이 사람들이 윤 총장을 반길 리 만무합니다. 윤 총장이 특유의 리더십으로 이들을 공들여 설득하지 않는다면 당내 안착(安着)은 어려울 겁니다. 정당은 이념 공동체인 동시에 동지적 관계로 묶여 있는 집단입니다. 그간 자신들을 겨눴던 검사 출신의 외부 인사가 들어온다면 그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홍준표-황교안-윤석열을 비교한다면?
‘같은 검사 출신인 황교안-홍준표 전 대표와 비교한다면 어떠냐’고 묻자 F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윤석열은) 두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죠. 황교안보다는 능수능란하고 홍준표보다는 덜 계산적이라고 할까요. 홍준표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 황교안에 대한 실망감이 역설적으로 윤석열의 기대치를 올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향적인 자세에서 당내 분위기만 조성한다면 윤 총장을 영입해 당의 자산으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통합당 보좌진 일부는 ‘윤석열 대망론’에 약간의 희망을 거는 눈치였다. 통합당이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의원 보좌진 중 상당수가 실업자 될 위기에 놓였다. 이들은 ‘당이 자신들을 챙겨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다. 그런 불만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듯했다. 통합당의 전신(前身)인 한나라당 시절(2007년)부터 당에 몸 담아온 국회의원 보좌관은 이런 의견을 내놨다.
“우리 당 영감(보좌진이 국회의원을 일컬을 때 쓰는 은어)들은 대체로 강한 자들에게 약한 편입니다. 2016년 총선 때 새누리당 공천 보세요. 몇몇 중진 빼고는 ‘박근혜 청와대’의 일방적 공천에 제동도 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시(內侍)’ 소리도 들었죠. 총선에서 대패(大敗)했음에도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는 분들 많습니다. 보좌진이 소모품인 양 취급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윤석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합니다.”
이 보좌관은 “사실 총선을 치르면서 윤석열 마케팅으로 재미 본 당선자가 있다”고 귀띔했다. 그가 말해준 이는 충남 공주•부여에서 당선된 정진석 의원이었다. 정 의원은 선거를 치르면서 ‘윤석열은 하나 남은 충청의 인재’ ‘윤석열, 제가 지키겠습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써 올리기도 했다. 참고로 윤 총장의 부친 윤기중 명예교수의 고향이 충남 공주다.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도 서울 유세에서 “대한민국의 법질서와 민주주의 보존을 위해 우리는 윤 총장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현역 의원 비서관은 “박근혜 탄핵 사태 이후 홍준표-황교안 전 대표가 보여준 리더십은 그 끝이 좋지 않았다”며 “당의 체질 개선과 물갈이 차원에서 윤석열 총장을 영입하는 데 동의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尹, 외삼촌 매개로 TK와 接點”
다만 이 비서관은 당내 기반뿐 아니라 지역 기반이 허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윤 총장 본인은 서울, 외가(外家)는 강원도(강릉)인 걸로 아는데 정치함에 있어 이게 장점일지 단점일지는 잘 모르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비서관은 “현재 통합당의 핵심 지역 기반인 대구•경북(TK)과 접점(接點)이 없다는 게 걸림돌 중 하나”라고 했다.
이와 상반되는 얘기도 있다.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G씨는 “윤석열 총장은 외삼촌을 매개로 대구•경북 지역과 밀접한 인연을 쌓았다”고 말했다. G씨의 말이다.
“윤 총장의 외삼촌 고(故) 이봉모(1930~2016)씨는 한양대 화공과를 졸업해 한양대병원장까지 지냈고, 11~12대 한국국민당 국회의원을 역임했습니다. 이봉모씨는 한양대 설립자인 김연준(1914~2008) 이사장의 최측근으로 한양대를 실질적으로 경영한 분이죠. 이봉모씨는 1970년대 야구협회 부회장을 지내면서, 고교 야구에서 두각을 드러낸 경북고 야구선수들을 대거 스카우트해 한양대로 끌어왔어요. 그 덕에 경북고 출신 야구선수 중 상당수가 이봉모씨를 은인(恩人)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게 윤 총장과 무슨 관련이 있냐’고 묻자, G 변호사는 “윤 총장도 야구를 좋아해 어렸을 때 외삼촌(이봉모씨)을 따라 대구에 자주 놀러왔다고 한다”며 “그 시기 경북고 출신 야구선수는 물론 지역 인사들과 안면을 튼 걸로 안다”고 말했다. G 변호사는 “윤 총장이 박근혜 정권 때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좌천돼 대구고검에서 2년 정도 근무했는데, 그때도 지역 인사들의 환대를 받았다”며 “TK에서 윤 총장 이미지는 나쁘지 않다”고 했다.
‘제3지대’ 구축 시나리오
대다수 인사는 윤석열 총장이 정치에 입문할 경우, 통합당을 기반으로 나설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윤 총장의 정치 성향이 통합당에 가깝고, 현실적으로 통합당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거라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와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이도 있었다. 법조인 A씨가 그중 하나였다. A씨는 “윤석열 총장은 기성 정치에 깊은 불신을 갖고 있다”며 “그런 그가 정치를 한다고 해도 지금의 기성 정당과 손잡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진단했다. 그의 말이다.
“윤석열은 인생의 쓴맛을 보며 밑바닥까지 추락해본 사람입니다. 그것도 정치 권력에 의해서죠. 보수와 진보로부터 다 핍박을 받았으니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이나 회의 같은 게 있을 겁니다. 그런 그가 성향이 보수라고 ‘통합당을 선택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건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오히려 ‘공정’이라는 매력적인 기치를 내걸고 ‘제3지대’를 구축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나’라고 반문하자 “불가능을 뛰어넘는 게 정치다. 그렇다면 한번 써볼 수도 있는 시나리오”라며 이렇게 분석했다.
“일단 통합당의 대(對)국민 이미지가 너무 안 좋습니다. 윤 총장을 받아들일지도 현재로선 미지수고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지 않을 확률이 큽니다. 그럼 독자세력 구축인데 이게 오히려 윤 총장에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제3지대를 구축하면 중도층의 반(反)문재인 정서를 일부 흡수할 수 있고, 이른바 개혁보수 성향 국민의 지지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미래통합당으로 대표되는 제1야당이 윤석열을 중심으로 ‘헤쳐 모여’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21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한 율사(律士) 출신 인사도 “통합당은 어차피 희망이 없다”며 “윤 총장이 좀 더 넓은 시각을 갖고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경제가 파탄 나야 尹 등판할 수 있지 않나…”
윤석열 총장에 대한 재계 인사들의 인식은 어떨까. 대기업은 속성상 권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차기 권력엔 더더욱 예민하다. 그렇기에 대기업은 정보기관만큼 치밀하게 정보를 수집하며 권력의 흐름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모 대기업 기획조정실 중견 간부(부사장급)는 “윤 총장이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확고한 시장경제주의자라는 건 알겠는데 그간의 행보를 보면 우리로서는 불안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H씨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윤석열 검찰이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를 벌이면서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을 구속한 사례를 지적했다. H씨는 “윤석열이 등판하는 시점은 경제가 파탄 나는 시점이 왔을 때”라고 예측했다. 그의 말이다.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문재인 정권의 포퓰리즘이 점점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국가 재정을 쏟아부어 국민들에게 ‘현금살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부메랑이 돼 정권의 목을 조를 겁니다. 우리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타이밍이 오면 국민들은 ‘문재인 정권으로 도저히 안 되겠다’고 각성(覺醒)하겠죠. 안타깝게도 경제가 완전히 파탄 나는 순간이 와야 윤석열이 등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현재 중소기업 대표로 있는 H씨는 윤석열 총장과 약간의 인연이 있다. H씨는 “2000년대 중반 우리 회사(과거 근무했던 대기업)가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적이 있어 내가 정보 취득에 나섰다”며 “그때 윤석열 검사를 접촉하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H씨는 “고교 동문이던 검찰 수사관에게 ‘윤 검사와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했는데, 수사관이 ‘그 양반(윤석열)에게 부탁해봐야 소용없다. 망신만 당한다’며 만류하더라”고 했다.
당시 수사관은 H씨에게 “윤 검사는 검찰 내에서 알아주는 강골(强骨)이다. 부탁이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부탁하면 아마 더 세게 조사할 것”이란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H씨는 “그 사람(윤석열)이 어떤 사람인지 좀 알고 있으니까 지금의 그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건 사실”이라며 “역사에 남는 검찰총장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H씨는 “대권 얘기는 다소 뜬금 없어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모 문제가 발목 잡을까?
지금 윤석열 총장에게 당면한 장애물 중 하나는 앞서 언급한 장모 최모씨 건이다. 범여권 일각은 이 문제를 대대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일부 언론도 이에 발맞춰 윤 총장 장모 건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최씨는 ▲347억원짜리 잔고증명서 위조 ▲요양급여 부당수급한 파주 요양병원 경영 관여 ▲동업자 무고죄 고소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 중 잔고증명서 위조에 대해서만 지난 3월 사문서 위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동업자 정모씨가 고소•고발한 소송사기, 무고, 모해위증 등 혐의는 현재 수사 중이다. 검찰은 잔고증명서 위조에 개입한 의혹을 받았던 윤 총장의 부인 김건희씨에 대해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이에 대해 G씨는 “윤석열 총장 장모 건을 윤 총장과 결부시키는 일부의 행태는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윤 총장 장모 건은 박근혜 정권 당시 청와대가 샅샅이 조사했던 부분이라고 한다. G씨는 “이미 검찰 내부에서 클리어(정리)하게 정리된 사안인데 왜 이제서야 재점화되는지 모르겠다. 다른 의도가 엿보인다”고 의심했다.
G씨가 말하는 ‘클리어하게 정리된 사안’이 무엇인지 조금 자세히 살펴보자.
최씨에게 불만을 가진 동업자 정씨는 2012년 윤석열 대검 중수1과장이 최씨 관련 사건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법무부와 검찰에 제출했다. 대검 감찰1과는 윤석열 과장을 조사한 후, 별다른 특이점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종결 처분을 내렸다. 그 뒤 정씨는 윤석열 과장이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을 문제 삼아 ‘윤 과장의 발언으로 인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법무부에 다시 민원을 냈다.
법무부는 “귀하께서 2013년 12월 18일 제출한 민원의 취지는 윤석열 검사에 대하여 엄중한 징계가 필요하다는 취지인 것으로 보입니다. 검사징계위원회에서는 2013년 12월 18일 윤석열 검사에 대하여 정직 1월의 징계처분을 의결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회신을 정씨에게 보냈다. 즉 윤석열 총장은 장모 사건 개입 의혹과 관련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고, 인터뷰 발언에 대해서 ‘정직 처분’을 받은 것이다.
G씨는 “2013년 ‘정직 처분’을 받은 시기는 윤 총장이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직후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모 사건과 관련해 정씨의 주장대로 윤 총장이 개입한 게 사실이었다면, 박근혜 정권이 윤 총장의 옷을 벗겼을 거란 주장이다.
“장모와 부인, 공수처 수사 대상 아냐”
G씨는 이어 “동업자 정씨와 장모 간 금전 거래가 있던 시점은 윤 총장과 김건희씨가 결혼하기 훨씬 전의 일”이라며 “이제 와서 윤 총장 책임 운운하는 건 ‘신종 연좌제’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정권도 (장모 건이) 문제 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에 윤 총장을 중용(重用)한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일부 친문•반(反)윤석열 인사들의 주장대로 윤석열 총장 장모 건은 공수처 수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걸까. 《경향신문》(지난 5월11일자)은 “윤 총장 장모와 부인은 공수처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대상은 검찰총장과 그의 배우자, 직계존비속인데, 장모는 직계존비속이 아니다. 공수처법상 ‘고위공직자범죄’는 형법상 직무유기•직권남용•피의사실공표•알선수뢰•뇌물공여, 직무와 관련된 형법상 공문서위조•위조공문서작성,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부정수수 등이다. 가족의 경우 고위공직자 직무와 관련해 이런 범죄를 저질러야 수사 대상이다. 윤 총장 장모와 부인의 혐의는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윤 총장이 장모•부인과 관련해 고발된 혐의는 현재 ‘의혹’ 수준이다. 윤 총장이 사건에 직접 개입해 수사를 방해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야 처벌 대상이 된다.〉
이상의 취재 노트를 정리하면, 다수의 인사는 윤석열 총장의 정계 등판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이유도 제각각이었다. 이유가 제각각인 데에는 윤석열 총장 본인의 정확한 의중(意中)을 알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했다고 기자는 판단한다. 사실 윤 총장은 공석•사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정치를 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보인 적이 없다.
다만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사석에서 ‘남자는 공직(公職)을 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검사도 공직이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는 게 사실이다. 문재인 정권을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변하느냐, 야당의 내분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윤석열 총장의 입장도 지금보다 더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윤 총장 본인은 총장으로서 임무만 생각하고 있을 뿐, 그 이후에 대해서는 숙고(熟考)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당연히 ‘대망론’에 대해서도 코웃음을 치고 있을지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윤 총장의 의지와 관계 없이 그를 원하는 목소리가 작게나마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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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6-1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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