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볼튼 회고록 중 한국정부 부분( 고수들의 도움이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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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튼의 회고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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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의 대미 메세지는 남한이 만들었다.
한국이 동계올림픽을 개최하자 북한이 다시 스포트라이트에 올라왔다. 마이크 펜스와 이방카 트럼프는 미국을 대표했다. 나는 펜스가 북한이 미국과 한국 사이에 관계를 갈라놓거나 올림픽을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쓰지 못하게 움직인 것에 대해 칭찬했다. 펜스는 이에 대해 호의적으로 응답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은 내수적 정치 선전을 위해 그가 북한고위관료들, 특히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인권 침해로 인해 미국 제재대상)을 초청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going all out).
사실 김여정의 목적은 문씨를 북한에 초청하는 것이었고 문씨는 이를 즉각 수락했다. 그리고 훗날 우리가 배운 것은 남한이 북한의 참가비를 모조리 대주었다는 것이었고 이는 올림픽 정신때문이 아니라 슬프지만 한국인들의 널리 알려져있는 패턴(sad, well-established pattern) 때문이었다.
한국의 좌파들은 "햇볕정책"을 숭배(worshipped)했고, 이 정책은 북한에 친근하게 나오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개념이었다. 대신 계속해서 햇볕정책은 북한의 독재정권에 지원을 한 것에 불과(merely subsidized)했다.
(중략)
4월 12일, 시리아 전쟁의 참화 속에 나는 한국의 국가안보실장인 정의용씨와 만났다. 3월 백악관에서 정씨는 김씨의 트럼프 면담 요청을 대신 전달했고 트럼프는 갑자기 이를 받아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씨는 이렇게 전달은 자신이 하지만 김씨가 트럼프를 만나라고 김씨에 권고를 한 나라는 다름이 아닌 한국이라고 실토했었다!
이 외교적 참사 (diplomatic fandango)는 철저히 한국인들의 작품이었다. 한국은 김씨에 대한 진지한 전략 대신 "통일" 어젠다를 내세우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우리(미국)가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하려는 전략에 대해 한국이 해석한 것은 미국 국익의 그 어느것과 동일하지 않았고 내게 있어 김정은과 트럼프의 회담은 결국 알맹이 하나 없는 위험한 쇼질(risky theatrics)이었다.
나는 정씨에게 4월 27일 남북회담에서 비핵화에 관한 얘기를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한국이 멋대로 행동할시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 사이의 관계 균열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런 뒤 트럼프에게 문재인과 최대한 협력을 하여 트럼프가 한국의 협상을 거부했다라는 헤드라인이 뜨지 않도록 할 것을 주문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날 오후, 나는 일본의 국가안보실장인 야치 쇼타로와 만났고 그는 일본의 견해를 설명했다. 김씨-트럼프 회담에 대한 일본의 견해는 한국의 견해와 완벽히 정반대였고, 줄여말하자면 이는 나의 견해와 일치했다. 야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지는 고정되어있으며 평화적 해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찬스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부시의 6자회담에서 나왔던 "action for action" 포뮬러를 전혀 원하지 않았다. "Action for Action"는 이론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이는 결국 북한에 이득이 될 뿐이었다--북한에 경제 제재를 해제하고 경제지원을 하는 것은 당장 일어나지만 북한의 비핵화는 머나먼 미래로 계속해서 지연을 시킬 수 있었기때문이다.
이는 미국만큼 북한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일본은 트럼프/김씨 회담이 일어난 직후부터 비핵화를 시작해 2년 내로 완료할 것을 원했다. 나는 그 대신 리비아에서의 경험을 살려 6-9개월내로 비핵화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야치는 이에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Mar-a-Lago에서 트럼프를 만나자 아베는 내가 했던 말처럼 6-9개월 내 비핵화를 요청했다!
야치는 또한 북한이 일본인들을 납치했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아베의 성공적인 정치적 커리어의 핵심이자 일본인들이 감정적으로 나오는 요소 중 하나였다. 결국 트럼프는 아베와의 회담 후 납북일본인 문제를 해결하고 김정은과의 추후 회담에서 비핵화를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중략)
2. 몸이 달아오른 문재인
4월 21일, 북한은 더 이상의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요란한 선전물을 발표했다. 언론은 이를 "위대한 진보"라고 포장했다. 나는 그저 이것이 북한의 프로파간다 공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필요한 실험이 끝났다면 북한은 실험을 굳이 더이상 안해도 무기화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씨는 4월 24일 문씨가 김씨와 DMZ에서 만나기 전에 나와 다시 만났다.
나는 정씨가 "판문전 선언"이 2쪽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 말했을 때 내심 안도했다--이는 즉 비핵화의 조건들이 구체적일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김정은이 제재로 인해 코너에 몰렸고 그래서 경제 발전을 내세우는 것이라 믿는 것같았다. 나는 이 논리가 설득력이 없다고 봤다.
4월 27일, 김씨와 문씨가 DMZ에서 만난 것은 올리브 가지를 하늘에 날리는 것일뿐 아무런 알맹이도 없었다. 금요일 오전, 나는 트럼프에게 미국에서 한국을 가장 깊게 분석하는 사람들 중 하나인 Nick Eberstadt의 뉴욕타임즈 기고문을 건넸다. Eberstadt는 이 회담을 이렇게 평했다. "마치 바넘이 얘기하던 호구는 항상 존재한다를 잘 보여준 외교같다".
나는 트럼프가 이를 읽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인들의 어젠다는 우리와 동일하지 않으며 우리는 미국 국익을 관철해야된다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판문전 선언은 놀라울 정도로 모호했다(anodyne). 문씨는 토요일 트럼프에 전화를 걸어 그의 회담을 보고했다.
문씨는 여전히 기뻐날뛰고 있었다(ecstatic). 김씨는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며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저 영변 핵실험장 냉각탑 폭발때처럼 북한의 익숙한 "가짜 양보"였다. 문씨는 트럼프와 김씨가 판문점에서 만나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으며 그 후 남북미 3자회담을 요청했다.
이는 그저 문씨가 사진을 찍고 싶어 안달이 났기 때문(ensuing photo op)이었다. 다행히 문씨는 김씨가 싱가포르를 선호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그런 뒤 드디어 폼페오와 내가 문씨와 함께 날짜를 조율하도록 지시했고 이는 다행스러웠다.
문씨는 트럼프의 리더쉽을 칭찬했고 트럼프는 문씨가 한국 언론에 트럼프가 이 회담을 개최하는 핵심이었다고 발표하기를 요청했다. 그는 문씨의 보고를 받은 뒤 북미회담에 대해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아베와 다시 대화를 나눴다. 아베는 Mar-a-Lago에서 발언했던 모든 핵심조항들을 반복했고 이는 문씨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관점과는 달랐다.
김씨를 믿지 않던 일본은 구체적인 약속을 원했고 이는 핵문제와 납북일본인 문제 둘다를 아울렀다. 아베는 트럼프가 오바마보다 더 강경해야된다고 요청했다.
나는 그 후 당시 중동에서 출장업무를 보던 폼페오와 대화를 했다. 그는 아베와 문씨의 트럼프 통화를 듣고 있었다. 나는 문씨의 전화가 "죽기 일보 직전의 경험"(near-death experience)과도 같았다고 털어놓자 폼페오는 이렇게 말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질 뻔했네".
(중략)
3. 문재인의 사기행각
우리가 나눴던 또다른 중요한 이야기는 "한국전쟁 종전 선언"이었다. 나는 처음에 이 종전선언이 김정은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는 이것이 문재인의 아이디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그의 통일 어젠다를 지지하기 위한 메세지인만큼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어차피 결과물은 없을 것이라는 확률이 높았던만큼 이런 짓을 할 경우 김정은이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뿐만이 아니라 "평화회담"을 통해 북한이 더 이상 단순한 핵뿐만이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위험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경제제재를 해제해야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회담이 법적구속력을 가지는 것을 막으려 햇으며 트럼프가 동의할지도 모르는 수상한 문서들을 최대한 줄이려 애를 썼다. 나는 문씨가 트럼프에게 이런 나쁜 생각들을 광고할 가능성에 대해 걱정했지만 이는 내가 막을 수 없었다.
(중략)
싱가포르 회담이 취소되었을 때 한국인들은 분노했다. 정씨는 아침에 내게 전화를 걸어 이것이 방미를 막 마친 문씨에게 엄청난 정치적 치욕이라고 비난했다. 나는 정씨에게 북한의 최수희가 미국 부통령에 대해 뭐라 말했는지부터 조심스럽게 읽어보라고 답변했지만 그는 분노를 거두지 않았다. 문씨도 비슷하게 격정을 토로했다.
토요일 오후, 우리는 문씨와 김씨가 DMZ에서 만났다는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접했다. 강경화는 폼페오에게 김씨가 만남을 주선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문씨는 예상했던대로 이를 즉시 수락했다. 문씨는 미국이 "action for action"을 원하지 않는다고 김씨에게 전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그 후 입장을 바꿔 북한이 비핵화를 수락할 경우 미국에서 정치적 지원을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 우리는 문씨를 최대한 협상에서 배제해야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중략)
트럼프는 한미군사연합훈련을 줄이고 싶어하며 이것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는 아마 최악의 주제선점이었다. 북한이 이제 미국의 최고사령관으로부터 직접 한반도 내 미군 배치도 협상 대상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문재인과 햇볕정책을 주장하는 사람들마저 불쾌하게 했을 얘기였다--그들의 정책의 핵심은 미국의 한반도 내 강력한 영향력 행사를 필수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에게 있어 한국 좌파들이 "햇볕정책"이라는 판타지를 좇게 하는 유일한 요소는 미국이 한반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을 떠날 경우 그들은 사실상 혼자서 북한을 방어해야되고 그들 정책이 얼마나 어리석은지에 대해 늦게나마 깨닫게 될 것이었다.
(중략)
6월 5일, 폼페오와 나는 트럼프와 점심식사를 가져 문씨가 싱가포르에 계속 참석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입장을 한국에 전달했다. 트럼프는 싱가포르에 계속오고 싶어하는 문재인에게 전화를 걸어 "삼자회담 따위는 없으며 당신은 회담이 열리는 국가의 대통령인 것도 아니지 않냐"라고 물었다.
트럼프가 말했던 것들 중 확실한 것은 문재인과 미국 사이의 관계가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이는 우려스러웠다. 문씨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트럼프는 문씨의 어젠다는 미국의 어젠다와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씨의 어젠다는 비핵화보다 남북관계 개선이었다. 또한 트럼프는 2018년 선거가 있기 전 북한에 대한 호재를 원했다. 그러기에 그는 한국이 통일을 추진하는 대신 비핵화에 힘을 실어줄 것을 요청했다.
4. 시진핑의 문재인 평가와 조현병 환자
시진핑은 북중회담에서 김정은에게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트럼프를 믿을 수 없다고. 어떤 편지를 쓰던 간에 그는 자본가들이 그렇듯이 널 등쳐먹으려 할 뿐이야.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북한을 남한으로 만드는 거지. 트럼프, 폼페오, 볼튼은 다 똑같은 놈들이다. 미국놈들은 믿을 수 없어. 그들은 단기적 이익만 좇을뿐이야.
그리고 문재인? 그 놈도 미국놈들과 똑같이 생각하지만 그는 미국놈들보다 더 열등하지--평화주의자고 나약하거든. 그러기에 우리는 문재인을 무시하고 밀어붙일 수 있지만 미국놈들은 적어도 권력을 이해하지. 그러니까 넌 나와 함께 가야돼. 핵무기를 유지하면서 경제지원을 받아내고 권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그거밖에 없어.
이 협상을 계속하게 되면 넌 좀 있으면 평양의 나뭇가지에 목매달린채 발견될거야."
(중략)
부시는 김정일을 이렇게 표현했었다. "아기의자에 앉아 음식을 던지면 미국과 다른 이들이 주워서 그릇에 다시 담아주는 셈". 이는 변하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정의용과 다시 말을 나눴다. 정씨는 문씨의 조현병스러운(schizophrenic) 아이디어인 "action for action"을 거부하는 것은 옳지만 영변핵실험장 해체는 CVID 전략의 초기단계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는 궤변 그 자체였다. 이미 문씨는 "action for action"과 비슷한 중국의 "parallel and simultaneous" 전략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5. 궁지에 몰린 문재인의 무리수
하노이 회담이 무산된 뒤 문재인은 4월 11일 워싱턴에 찾아왔다. 우리는 강경화와 정의용을 대동한 문재인을 먼저 만났다. 그런 뒤 우리는 한국조차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과 연락이 닿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에서 회복해야했고 문씨는 이런 평양의 행동으로 인해 그에게 정치적 타격이 가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는 그 동안 "햇볕정책"을 해야 북한에서 의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 주장했지만 이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회담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문씨 정권은 회담실패 탓을 돌리기위한 “희생양"을 미국쪽에서 찾으려 호심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씨는 정오 백악관에 찾아갔고 우리는 트럼프를 대동하고 그를 다시 만났다. 트럼프는 하노이 회담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게 옳다고 말했다. 문씨는 그건 괜찮아도 적어도 모멘텀 유지를 위해 드라마틱한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판문점에서 만나거나 미국 해군 군함에서 북미회담을 가지는 것을 제시했다.
트럼프는 즉시 문씨의 일장연설(monologue)에 끼어들어 중단시켰고 이는 다행스러웠다--트럼프는 문씨의 일장연설을 들으면서 졸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즉시 문씨의 아이디어는 잘 듣겠지만 회담은 협상으로 이어져야한다고 말했다.
문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회담의 내용보다 "회담" 자체의 이미지에 신경을 쓰고 있었고, 그 이미지 중에서도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 자기가 노출되어야한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트럼프는 이에 넘어가지 않고 북핵비핵화를 하는 협상이 있어야 회담을 할 수 있다고 재차 묵살했다.
트럼프는 그 후 주한미군 문제를 제기했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주둔이 매년 50억달러나 소요되며 미국이 40억달러를 잃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국가들은 주둔비를 더 지불하겠다고 말했으며 한국이 협상에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스스로 그가 문씨를 지금까지 많이 보호해주지 않았냐고 말했다.
문씨는 이에 대해 한국 기업들은 미국에 많이 투자하고 있고 트럼프의 요구사항이 너무높다고 대답했다. 트럼프는 다시 미국이 미군기지 주둔에 대해 땅을 빌렸는지, 아니면 공짜로 주둔하는지에 대해 물어보았고 문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문씨는 한국이 GDP의 2.4%를 국방에 지출한다고 했고 트럼프는 이를 이용해 독일을 욕했다.
그런 뒤 트럼프는 다시 한국이 자주국방을 하지 않아도 되어 경제개발에 힘을 쓸 수 있었던 것을 지적했다. 반면 미국은 지금까지 있었던 한국의 협상단들이 워낙 까다로웠기에 미국이 50억달러나 쓰고 있다는게 트럼프의 지적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에도 공평한 댓가를 원했다.
6. 한일관계애 대한 궤변
그 후 북한에 대해 논한뒤 트럼프는 한일관계에 대해 물어봤다. 우리는 도쿄와 서울 사이의 갈등이 문재인 집권 이후 심해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문씨는 1965년 조약의 사항들을 뒤엎고 싶어했다. 그 조약은 일본의 관점에 의하면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추가책임을 끝냈고, 이는 위안부 문제와 2차대전 당시 징용문제까지 포함이었다.
문씨는 이에 대해 역사가 양국관계의 미래를 가로막으면 안된다고 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이를 문제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역사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일본이 전혀 아니다. 그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선동하는 것은 문재인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인들이 그랬듯이 문씨도 내수적 문제가 생기면 이를 무마하기 위해 반일감정을 선동시키고 있다고 봤다.
트럼프는 이에 한국이 일본과 연합군사훈련도 하지 않으려 하는 주제에 과연 일본과 동맹을 맺어 싸울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문씨는 솔직하게 도쿄와 서울은 연합군사훈련을 할 수 있지만 일본군을 한반도에 진주시키면 다시 역사의식을 고취시킨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에 만약 우리가 북한과 싸워야한다면 한국이 일본의 참여를 받아들이겠냐고 재차 몰아붙였다.
문씨는 이에 대해 답변을 하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대신 그는 미국이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으며 한국과 일본은 같이 싸울 것이고 자위대가 한국 땅만 밟지 않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문씨는 서울에 돌아가면 북한과 3차북미회담을 하도록 주선하겠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에 앞서 얘기햇듯 날짜는 상관없고 협상부터 우선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문씨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었지만 핵문제에서 북한의 외교관들은 독자적 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고위급회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에 폼페오와 내가 작업할 것이라고만 대답했다.
quidproquo.egloos.com/5369727
1. 북한의 대미 메세지는 남한이 만들었다.
한국이 동계올림픽을 개최하자 북한이 다시 스포트라이트에 올라왔다. 마이크 펜스와 이방카 트럼프는 미국을 대표했다. 나는 펜스가 북한이 미국과 한국 사이에 관계를 갈라놓거나 올림픽을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쓰지 못하게 움직인 것에 대해 칭찬했다. 펜스는 이에 대해 호의적으로 응답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은 내수적 정치 선전을 위해 그가 북한고위관료들, 특히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인권 침해로 인해 미국 제재대상)을 초청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going all out).
사실 김여정의 목적은 문씨를 북한에 초청하는 것이었고 문씨는 이를 즉각 수락했다. 그리고 훗날 우리가 배운 것은 남한이 북한의 참가비를 모조리 대주었다는 것이었고 이는 올림픽 정신때문이 아니라 슬프지만 한국인들의 널리 알려져있는 패턴(sad, well-established pattern) 때문이었다.
한국의 좌파들은 "햇볕정책"을 숭배(worshipped)했고, 이 정책은 북한에 친근하게 나오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개념이었다. 대신 계속해서 햇볕정책은 북한의 독재정권에 지원을 한 것에 불과(merely subsidized)했다.
(중략)
4월 12일, 시리아 전쟁의 참화 속에 나는 한국의 국가안보실장인 정의용씨와 만났다. 3월 백악관에서 정씨는 김씨의 트럼프 면담 요청을 대신 전달했고 트럼프는 갑자기 이를 받아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씨는 이렇게 전달은 자신이 하지만 김씨가 트럼프를 만나라고 김씨에 권고를 한 나라는 다름이 아닌 한국이라고 실토했었다!
이 외교적 참사 (diplomatic fandango)는 철저히 한국인들의 작품이었다. 한국은 김씨에 대한 진지한 전략 대신 "통일" 어젠다를 내세우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우리(미국)가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하려는 전략에 대해 한국이 해석한 것은 미국 국익의 그 어느것과 동일하지 않았고 내게 있어 김정은과 트럼프의 회담은 결국 알맹이 하나 없는 위험한 쇼질(risky theatrics)이었다.
나는 정씨에게 4월 27일 남북회담에서 비핵화에 관한 얘기를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한국이 멋대로 행동할시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 사이의 관계 균열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런 뒤 트럼프에게 문재인과 최대한 협력을 하여 트럼프가 한국의 협상을 거부했다라는 헤드라인이 뜨지 않도록 할 것을 주문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날 오후, 나는 일본의 국가안보실장인 야치 쇼타로와 만났고 그는 일본의 견해를 설명했다. 김씨-트럼프 회담에 대한 일본의 견해는 한국의 견해와 완벽히 정반대였고, 줄여말하자면 이는 나의 견해와 일치했다. 야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지는 고정되어있으며 평화적 해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찬스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부시의 6자회담에서 나왔던 "action for action" 포뮬러를 전혀 원하지 않았다. "Action for Action"는 이론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이는 결국 북한에 이득이 될 뿐이었다--북한에 경제 제재를 해제하고 경제지원을 하는 것은 당장 일어나지만 북한의 비핵화는 머나먼 미래로 계속해서 지연을 시킬 수 있었기때문이다.
이는 미국만큼 북한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일본은 트럼프/김씨 회담이 일어난 직후부터 비핵화를 시작해 2년 내로 완료할 것을 원했다. 나는 그 대신 리비아에서의 경험을 살려 6-9개월내로 비핵화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야치는 이에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Mar-a-Lago에서 트럼프를 만나자 아베는 내가 했던 말처럼 6-9개월 내 비핵화를 요청했다!
야치는 또한 북한이 일본인들을 납치했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아베의 성공적인 정치적 커리어의 핵심이자 일본인들이 감정적으로 나오는 요소 중 하나였다. 결국 트럼프는 아베와의 회담 후 납북일본인 문제를 해결하고 김정은과의 추후 회담에서 비핵화를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중략)
2. 몸이 달아오른 문재인
4월 21일, 북한은 더 이상의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요란한 선전물을 발표했다. 언론은 이를 "위대한 진보"라고 포장했다. 나는 그저 이것이 북한의 프로파간다 공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필요한 실험이 끝났다면 북한은 실험을 굳이 더이상 안해도 무기화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씨는 4월 24일 문씨가 김씨와 DMZ에서 만나기 전에 나와 다시 만났다.
나는 정씨가 "판문전 선언"이 2쪽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 말했을 때 내심 안도했다--이는 즉 비핵화의 조건들이 구체적일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김정은이 제재로 인해 코너에 몰렸고 그래서 경제 발전을 내세우는 것이라 믿는 것같았다. 나는 이 논리가 설득력이 없다고 봤다.
4월 27일, 김씨와 문씨가 DMZ에서 만난 것은 올리브 가지를 하늘에 날리는 것일뿐 아무런 알맹이도 없었다. 금요일 오전, 나는 트럼프에게 미국에서 한국을 가장 깊게 분석하는 사람들 중 하나인 Nick Eberstadt의 뉴욕타임즈 기고문을 건넸다. Eberstadt는 이 회담을 이렇게 평했다. "마치 바넘이 얘기하던 호구는 항상 존재한다를 잘 보여준 외교같다".
나는 트럼프가 이를 읽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인들의 어젠다는 우리와 동일하지 않으며 우리는 미국 국익을 관철해야된다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판문전 선언은 놀라울 정도로 모호했다(anodyne). 문씨는 토요일 트럼프에 전화를 걸어 그의 회담을 보고했다.
문씨는 여전히 기뻐날뛰고 있었다(ecstatic). 김씨는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며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저 영변 핵실험장 냉각탑 폭발때처럼 북한의 익숙한 "가짜 양보"였다. 문씨는 트럼프와 김씨가 판문점에서 만나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으며 그 후 남북미 3자회담을 요청했다.
이는 그저 문씨가 사진을 찍고 싶어 안달이 났기 때문(ensuing photo op)이었다. 다행히 문씨는 김씨가 싱가포르를 선호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그런 뒤 드디어 폼페오와 내가 문씨와 함께 날짜를 조율하도록 지시했고 이는 다행스러웠다.
문씨는 트럼프의 리더쉽을 칭찬했고 트럼프는 문씨가 한국 언론에 트럼프가 이 회담을 개최하는 핵심이었다고 발표하기를 요청했다. 그는 문씨의 보고를 받은 뒤 북미회담에 대해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아베와 다시 대화를 나눴다. 아베는 Mar-a-Lago에서 발언했던 모든 핵심조항들을 반복했고 이는 문씨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관점과는 달랐다.
김씨를 믿지 않던 일본은 구체적인 약속을 원했고 이는 핵문제와 납북일본인 문제 둘다를 아울렀다. 아베는 트럼프가 오바마보다 더 강경해야된다고 요청했다.
나는 그 후 당시 중동에서 출장업무를 보던 폼페오와 대화를 했다. 그는 아베와 문씨의 트럼프 통화를 듣고 있었다. 나는 문씨의 전화가 "죽기 일보 직전의 경험"(near-death experience)과도 같았다고 털어놓자 폼페오는 이렇게 말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질 뻔했네".
(중략)
3. 문재인의 사기행각
우리가 나눴던 또다른 중요한 이야기는 "한국전쟁 종전 선언"이었다. 나는 처음에 이 종전선언이 김정은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는 이것이 문재인의 아이디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그의 통일 어젠다를 지지하기 위한 메세지인만큼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어차피 결과물은 없을 것이라는 확률이 높았던만큼 이런 짓을 할 경우 김정은이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뿐만이 아니라 "평화회담"을 통해 북한이 더 이상 단순한 핵뿐만이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위험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경제제재를 해제해야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회담이 법적구속력을 가지는 것을 막으려 햇으며 트럼프가 동의할지도 모르는 수상한 문서들을 최대한 줄이려 애를 썼다. 나는 문씨가 트럼프에게 이런 나쁜 생각들을 광고할 가능성에 대해 걱정했지만 이는 내가 막을 수 없었다.
(중략)
싱가포르 회담이 취소되었을 때 한국인들은 분노했다. 정씨는 아침에 내게 전화를 걸어 이것이 방미를 막 마친 문씨에게 엄청난 정치적 치욕이라고 비난했다. 나는 정씨에게 북한의 최수희가 미국 부통령에 대해 뭐라 말했는지부터 조심스럽게 읽어보라고 답변했지만 그는 분노를 거두지 않았다. 문씨도 비슷하게 격정을 토로했다.
토요일 오후, 우리는 문씨와 김씨가 DMZ에서 만났다는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접했다. 강경화는 폼페오에게 김씨가 만남을 주선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문씨는 예상했던대로 이를 즉시 수락했다. 문씨는 미국이 "action for action"을 원하지 않는다고 김씨에게 전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그 후 입장을 바꿔 북한이 비핵화를 수락할 경우 미국에서 정치적 지원을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 우리는 문씨를 최대한 협상에서 배제해야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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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한미군사연합훈련을 줄이고 싶어하며 이것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는 아마 최악의 주제선점이었다. 북한이 이제 미국의 최고사령관으로부터 직접 한반도 내 미군 배치도 협상 대상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문재인과 햇볕정책을 주장하는 사람들마저 불쾌하게 했을 얘기였다--그들의 정책의 핵심은 미국의 한반도 내 강력한 영향력 행사를 필수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에게 있어 한국 좌파들이 "햇볕정책"이라는 판타지를 좇게 하는 유일한 요소는 미국이 한반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을 떠날 경우 그들은 사실상 혼자서 북한을 방어해야되고 그들 정책이 얼마나 어리석은지에 대해 늦게나마 깨닫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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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폼페오와 나는 트럼프와 점심식사를 가져 문씨가 싱가포르에 계속 참석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입장을 한국에 전달했다. 트럼프는 싱가포르에 계속오고 싶어하는 문재인에게 전화를 걸어 "삼자회담 따위는 없으며 당신은 회담이 열리는 국가의 대통령인 것도 아니지 않냐"라고 물었다.
트럼프가 말했던 것들 중 확실한 것은 문재인과 미국 사이의 관계가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이는 우려스러웠다. 문씨가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트럼프는 문씨의 어젠다는 미국의 어젠다와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씨의 어젠다는 비핵화보다 남북관계 개선이었다. 또한 트럼프는 2018년 선거가 있기 전 북한에 대한 호재를 원했다. 그러기에 그는 한국이 통일을 추진하는 대신 비핵화에 힘을 실어줄 것을 요청했다.
4. 시진핑의 문재인 평가와 조현병 환자
시진핑은 북중회담에서 김정은에게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트럼프를 믿을 수 없다고. 어떤 편지를 쓰던 간에 그는 자본가들이 그렇듯이 널 등쳐먹으려 할 뿐이야.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북한을 남한으로 만드는 거지. 트럼프, 폼페오, 볼튼은 다 똑같은 놈들이다. 미국놈들은 믿을 수 없어. 그들은 단기적 이익만 좇을뿐이야.
그리고 문재인? 그 놈도 미국놈들과 똑같이 생각하지만 그는 미국놈들보다 더 열등하지--평화주의자고 나약하거든. 그러기에 우리는 문재인을 무시하고 밀어붙일 수 있지만 미국놈들은 적어도 권력을 이해하지. 그러니까 넌 나와 함께 가야돼. 핵무기를 유지하면서 경제지원을 받아내고 권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그거밖에 없어.
이 협상을 계속하게 되면 넌 좀 있으면 평양의 나뭇가지에 목매달린채 발견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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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김정일을 이렇게 표현했었다. "아기의자에 앉아 음식을 던지면 미국과 다른 이들이 주워서 그릇에 다시 담아주는 셈". 이는 변하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정의용과 다시 말을 나눴다. 정씨는 문씨의 조현병스러운(schizophrenic) 아이디어인 "action for action"을 거부하는 것은 옳지만 영변핵실험장 해체는 CVID 전략의 초기단계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는 궤변 그 자체였다. 이미 문씨는 "action for action"과 비슷한 중국의 "parallel and simultaneous" 전략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5. 궁지에 몰린 문재인의 무리수
하노이 회담이 무산된 뒤 문재인은 4월 11일 워싱턴에 찾아왔다. 우리는 강경화와 정의용을 대동한 문재인을 먼저 만났다. 그런 뒤 우리는 한국조차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과 연락이 닿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에서 회복해야했고 문씨는 이런 평양의 행동으로 인해 그에게 정치적 타격이 가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는 그 동안 "햇볕정책"을 해야 북한에서 의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 주장했지만 이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회담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문씨 정권은 회담실패 탓을 돌리기위한 “희생양"을 미국쪽에서 찾으려 호심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씨는 정오 백악관에 찾아갔고 우리는 트럼프를 대동하고 그를 다시 만났다. 트럼프는 하노이 회담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게 옳다고 말했다. 문씨는 그건 괜찮아도 적어도 모멘텀 유지를 위해 드라마틱한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판문점에서 만나거나 미국 해군 군함에서 북미회담을 가지는 것을 제시했다.
트럼프는 즉시 문씨의 일장연설(monologue)에 끼어들어 중단시켰고 이는 다행스러웠다--트럼프는 문씨의 일장연설을 들으면서 졸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즉시 문씨의 아이디어는 잘 듣겠지만 회담은 협상으로 이어져야한다고 말했다.
문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회담의 내용보다 "회담" 자체의 이미지에 신경을 쓰고 있었고, 그 이미지 중에서도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 자기가 노출되어야한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트럼프는 이에 넘어가지 않고 북핵비핵화를 하는 협상이 있어야 회담을 할 수 있다고 재차 묵살했다.
트럼프는 그 후 주한미군 문제를 제기했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주둔이 매년 50억달러나 소요되며 미국이 40억달러를 잃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국가들은 주둔비를 더 지불하겠다고 말했으며 한국이 협상에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스스로 그가 문씨를 지금까지 많이 보호해주지 않았냐고 말했다.
문씨는 이에 대해 한국 기업들은 미국에 많이 투자하고 있고 트럼프의 요구사항이 너무높다고 대답했다. 트럼프는 다시 미국이 미군기지 주둔에 대해 땅을 빌렸는지, 아니면 공짜로 주둔하는지에 대해 물어보았고 문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문씨는 한국이 GDP의 2.4%를 국방에 지출한다고 했고 트럼프는 이를 이용해 독일을 욕했다.
그런 뒤 트럼프는 다시 한국이 자주국방을 하지 않아도 되어 경제개발에 힘을 쓸 수 있었던 것을 지적했다. 반면 미국은 지금까지 있었던 한국의 협상단들이 워낙 까다로웠기에 미국이 50억달러나 쓰고 있다는게 트럼프의 지적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에도 공평한 댓가를 원했다.
6. 한일관계애 대한 궤변
그 후 북한에 대해 논한뒤 트럼프는 한일관계에 대해 물어봤다. 우리는 도쿄와 서울 사이의 갈등이 문재인 집권 이후 심해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문씨는 1965년 조약의 사항들을 뒤엎고 싶어했다. 그 조약은 일본의 관점에 의하면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추가책임을 끝냈고, 이는 위안부 문제와 2차대전 당시 징용문제까지 포함이었다.
문씨는 이에 대해 역사가 양국관계의 미래를 가로막으면 안된다고 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이를 문제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역사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일본이 전혀 아니다. 그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선동하는 것은 문재인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인들이 그랬듯이 문씨도 내수적 문제가 생기면 이를 무마하기 위해 반일감정을 선동시키고 있다고 봤다.
트럼프는 이에 한국이 일본과 연합군사훈련도 하지 않으려 하는 주제에 과연 일본과 동맹을 맺어 싸울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문씨는 솔직하게 도쿄와 서울은 연합군사훈련을 할 수 있지만 일본군을 한반도에 진주시키면 다시 역사의식을 고취시킨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에 만약 우리가 북한과 싸워야한다면 한국이 일본의 참여를 받아들이겠냐고 재차 몰아붙였다.
문씨는 이에 대해 답변을 하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대신 그는 미국이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으며 한국과 일본은 같이 싸울 것이고 자위대가 한국 땅만 밟지 않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문씨는 서울에 돌아가면 북한과 3차북미회담을 하도록 주선하겠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에 앞서 얘기햇듯 날짜는 상관없고 협상부터 우선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문씨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었지만 핵문제에서 북한의 외교관들은 독자적 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고위급회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에 폼페오와 내가 작업할 것이라고만 대답했다.
추천 1
작성일2020-06-22 11:44
상식님의 댓글
상식
내수적- > 국내
ㅋㅋ 호시탐탐? 문똥구리...!
너저분한 문씨는 1965년 한일합의를 뒤엎는 신의없는 짓을 하려고 혈안이 됐었구먼... 선동하는 지랄을 하는 것은 문재인 자신이었다고 누가 봐도 빤한 지적을 하고 있구먼, 볼턴...
ㅋㅋ 호시탐탐? 문똥구리...!
너저분한 문씨는 1965년 한일합의를 뒤엎는 신의없는 짓을 하려고 혈안이 됐었구먼... 선동하는 지랄을 하는 것은 문재인 자신이었다고 누가 봐도 빤한 지적을 하고 있구먼, 볼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