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빈티지 / 박도희

나쁘지 않은 시
늦가을을 닮고 싶은 의자
배터리가 다 된 시계
죽은 매미들이 새 배터리를 만들고 있다는 상상
장난의 운명을 믿는 헝겊 뼈다귀를 물고 오는 강아지
제 속도감을 즐기는 햇살
50% 세일 아이스크림
각종 펜 사랑
시선이라는 행위 예술을 위하여
막대사탕을 물고 타는 버스
모자란 슬픔
현혹=과제
패, 경, 옥 같은 택배물
늙기로 한 터널
오후 찻잔에 담는 비
기어코 찾으려고 하는 눈물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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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들에 대하여 / 오래된 남자

아주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오래된 심장을 매만지며 오래된 나를 바라본다.

너무 오래된 인생을 오래된 틀린 철자법으로 살아오며
사랑을 잃어버린 탁한 눈동자가 되었지만 그건 내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이 그리우면서도 지겨운 매일 밤,
떠나는 애인을 잡지 못해 어설프게 늙은 오래된 문자들과
오래된 고독의 냄새를 맡으면서도 점화되지 못한 오래된 욕망의 부조화,
이런 밤들이 시계라면 오래된 바늘을 진작에 부러뜨려야 했다.

오래된 꽃이 피었다.
지칠 때까지 지친 오래된 기억들도 함게 피었다, 함빡

오래된 꽃이 떨어진다.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은 오래된 세월도 같이 떨어진다, 털썩

지금이 몇 시일까,
다시는 죄를 짖지 않기로 결심하는 고해성사의 시간일 것이다.
오래된 苦海와 오래된 告解의 혼란 속에서 오래된 내가 천천히 죽어간다.

아주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오래된 심장을 매만지며 다시 오래된 나를 바라본다.

오래된 틀린 철자법을 오래된 심장에서 꺼내어
오래된 후회위에 오래된 참회록(懺悔錄)을 다시 써본다.

오래된 가슴에서 오래된 눈물이 흐를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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