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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겨울연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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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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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 (1)

바람이 먼지를 일으키다 뜰에 몇 잎 남은 낙엽을 훑고 지나간다.
창으로 내다본 대학병원 뜰은 한 해가 다 해가는 이 계절만큼이나 쓸쓸했다.
갑자기 허전해지는 마음이 하얀색 간호사 제복 위에 덥쳐입은 분홍색 스웨터 주머니로 손을 넣게 만들었다.
올해를 며칠 남기지 않은 일력이 눈에 들어왔다.
' 음... 올해도 혼자란 말이야...'
서울 근교 데이트 코스로 그럴싸한 곳은 죄다 꿰고 있는 숙에게 한 해를 며칠 남기지 않은 이 때까지 데이트 상대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올해 초, 묵직하던 일력을 메달면서 숙은 다짐했었다.
춘천까지 나가서 소양호를 건너진 못할 망정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태릉 쯤에라도 가서 한적한 공원벤치라도 함께 즐길 상대를 꼭 만나고 말 것을..

숙은 대학을 졸업하고 바라던 대로 대학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굳이 신생아실을 지원할 만큼 아이를 좋아했다. 특히 갓 태어나는 생명의 신비로움 그 현장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그런 만큼 숙은 자기가 가진 직업을 기꺼워하며 지내고 있었다.
연말 연시로 바삐 돌아가는 즈음, 숙은 이브닝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날 따라 유난히 날은 차가왔고 바람마저 을씨년스러워 해거름부터 여간 허전한 마음이 아니었는데 근무가 끝나는 열시가 되어서는 괜시리 화도 나고 심사가 뒤틀려 교대하는 동료의 새 옷을 트집잡기 까지 할 지경이었다.

거리는 흥청거리고 있었다.
봐 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뵈는 여자들이 남자의 두툼한 외투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희희낙낙 즐거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시선을 맞추고 있었고 휘황한 불빛 아래 서로에게 마음을 뺏긴 듯 채 흐느적거리는 걸음의 연인들이 거리에서 술렁이고 있었다.
“휴우...”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 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흥청거리는 거리 어딘가에서 불루크리스마스가 들려왔다.

“다녀왔습니다.”
“넌 어디가 모자라서 연애도 못 하냐? 같은 시간 같은 목소리로 '다녀왔습니다.'는... 그러면서 선은 왜 안 본다는거야?”
엄마의 한결같은 대꾸에 오늘은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핸드백을 팽개치듯 던지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엄마는 가만히 문을 열어보지만 쌩하니 문 닫으라고 눈길도 주지 않고 숙은 소리쳤다.

엄마에게 기어이 참지 못한 한마디를 하고는 숙은 더 쓸쓸해졌다.
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점점 깊어갔다. 너무 조용한 방을, 밤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라디오를 켰다.

“이곳은 아주 먼 곳입니다.
지금 방송을 듣는 많은 분들이 계신 곳에서 아주 먼
그리고 아주 다른 세상입니다.
눈이 옵니다.
눈이 내리면 그 눈은 내리기 시작한 순간만 저희에겐 축복입니다.
한 번 내리기 시작한 눈은 그칠 줄을 모르고 내립니다.
내리면 쌓이는 이곳의 눈은 이곳에선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닙니다.
얼어붙기 전에 연병장의 눈과 부대로 향하는 모든 길에 내리는 눈은
곧 우리들의 손으로 치워져야 하니까요.
방한복과 군고구마 아줌마의 장갑같이 두툼한 장갑으로도 우리의 손은
금새 얼얼해지고 겨우 내 놓은 빰은 곧 깨어질듯 아려옵니다.
잿빛으로 칠한 하늘은 낮인지 저녁인지 시간을 분간케 못하며
하루 종일 눈을 내립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끝없이 눈을 치웁니다.

며칠을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내리는 동안 저는 외로왔습니다.
눈을 치울 때, 저는 더 외로왔습니다.
이 눈을 말끔히 치우도록 내 손과 발이 다 얼어붙고
빰과 코가 깨어져 버린대도 즐거이
이 눈을 치우게 할 만한 한 사람,
눈이 내리기 시작한 순간, 그 축복같은 순간에 떠올릴 한 사람이 없었기에
저는 외로왔습니다.
눈은 쉬지 않고 내리고, 내리는 눈 따라 저는 또 그렇게 외로왔습니다.
...”

음악 리퀘스트 프로그램인 심야방송에서 어느 전방 부대의 군인으로 부터 배달되어온 편지를 방송하고 있었다.

(2)편도 있고 아마 3편도..ㅎㅎ계속됩니다.

* * * * * * * * * *

글쓰기가 목에 박힌 가시가 된 채,
늘 아프게 아무 것도 삼키지 못하게 하면서 빠져나오지도 않은 채,
시, 수필, 소설... 머리 속에 넣어두고 손대기를 꿈도 못 꾼 채,
열심히 다른 일만 살피면서 이국 땅을 헤치고 다녔나 보다.

이제는 더 미루지 말고 함 써보자고,
그냥 그렇게 나를 위해, 내가 나에게 보이는 글로 써보자고...
소설도 쓰고 싶은데... 우선 짧은 꽁트 하나 먼저 선을...
배경은 한 30년 쯤 전이나마 넘어 지난 그 때 7080~~

작성일2012-12-02 18:30

김기자님의 댓글

김기자
기대가 됩니다
기대 하겠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첫 장을 읽었습니다
놀랐습니다 ^^

생각나는이님의 댓글

생각나는이
글쓰기가 목에 박힌 가시라...참 슬픔이군요..글쓰기가 즐거움이어야 하는데, 나를위한 기쁨이어야 하는데..
20여년전 대학 2년때 저도 지방 신문 신춘으로 등단했던 기억입니다.
그때는 남에게 보여 주기위한 글을 쓰기위해
님 말씀처럼 목에 가시였던것 같습니다.
지금은...
저의 행복을 위해 매일 매일 글을씁니다.
글쓰는 얇팍한 재주로 먹고 살던 일을 놓으니 이렇게 좋습니다.
손가락에 못이 밖히도록 지겹게 ?적대며 먹고 살던 3여년...
좋았다고만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아하는일도 밥벌이가 되어 버리면 더이상 좋음은 없어지는가 봅니다.
이제는...
울 어머니 칠순때 기념으로 시집한권 안겨드리자는
형 누나의 소원에 가끔씩 이곳에 ?적 거리며 감각을 찾습니다.

타국에서의 삶,
글쓰는이들에게는 지옥이지요...
일상에서 찾아드는 스치는 순간의 감동을 주는 어휘가 없으니
맘먹지 않으면 아름다운 우리 문학을 접할수 없으니...
그래도 글을 손끝에 침 발라가며 책장넘기는 맛 아니겠습니까?

꿈꾸는이는 살아 있습니다. 마알간 마음이...
꿈꾸는이는 살아 있습니다. 솟구치는 열정이...
꿈꾸는이는 살아 있습니다. 지독한 행복이...

글쓰는일 이 취미가 되고 나니
다시 좋아 집니다.
저는 꿈을 이루었나 봅니다...
글쓰기로 밥벌어 먹던시절,하루하루 마감 시간에 전쟁을 치루던 시절,
즐겁게 끄적이며 사는게 제 꿈이었는데,
요즘은 즐겁습니다.
재미 납니다. 글 쓰는게...
초롱님도 꿈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우리 사랑방 가족들은 초롱님의 꿈을 지지 합니다.
글쓰기가 목에 박힌 가시라...
마음이 짠해집니다....

초롱에미님의 댓글

초롱에미
생각님~
글쓰기가 제게도 기쁨입니다. 여태 가시로 날 아프게 하던 그것이...
조금씩, 자꾸 속으로부터 뱉어내면서...
그걸 하지 못하던 세월이 가시처럼 날 찌르고 있었지요.
십여년 잡고 있던 업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젠 가장 많은 시간을 나를 위해 내려고 합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님 글에서 따뜻함이 느껴져 제 마음이 위로가 됩니다.
감사~~~

하나 님의 댓글

하나
생각님  그리고    초롱님  글이  정말  마음에  와닿네요    잘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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