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 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 지고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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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na go
My hometown, the southern sea, The blue sea water comes into my view.
How can I forget, even in my dream, the calm blue sea of my hometown?
Seagulls still might be flying. I wanna go back, wanna go.
All my playmates from my childhood I miss them
How could I forget, no matter where I go, my playful hometown buddies?
What they are doing now, I wanna see, wanna see.
The seagulls, and the playmates, are all still in my hometown
How on earth can I live here, away from my hometown?
Shouldn't I leave all behind and return home, shouldn't I?
Returned and reunited as before, I'd live as were those days.
My heart, dressed in the colorful clothing, I'd fare laughing on and on
To those days of no tears, let's go back, let's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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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의 바다는 이은상이 태어나고 살았던 마산 앞바다 합포만(合浦灣)으로,
(1984년 문화방송 조사에서 내가 좋아하는 가곡 1위 곡).
가곡 "가고파" 와 김동진(金東振) 선생님4;
국민가곡 '가고파'의 김동진 선생
파란만장 일생 96세로 영면
故 金東振 선생(1913~2009)지난 7월 31일 별세한 작곡가 김동진 선생은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12월 임진강을 건너 월남했다.
평양음악대학 교수로 평양교향악단의 전신인
중앙교향악단과 합창단을 창단하며
지휘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공산 치하에 염증을 느꼈다.
그가 서울에 도착했을 때 헌병의 검문을 받았다.
아무런 신분증이 없었지만 자신이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가곡〈가고파〉의 작곡가라고 소개하자 헌병은 아무 말 없이 놓아주었다.
삶과 죽음이 말 한마디에 갈리는 치열한 전시에도 '국민 가곡'의 힘은 그만큼 컸다.
'가고파' - 테너 이인범 (이 곡을 최초로 부름)
가고파 - 테너 안형일
가고파 - 소프라노 조수미
https://www.youtube.com/watch?v=9J4eVVM2aT8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노래의 첫구절만 들어도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 함께 가슴이 시려오며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되는 <가고파>는 1933년 선생의 약관 20세 때 작품이다. 양주동의 강의를 통해 이은상의 동명(同名) 시를 알게 된 그는 곧바로 곡을 붙였다. 그만큼 우리가 이 노래에 친숙해 있고 이 노래에 정이 들어 있는것 같다. 그런데 이 노래가 이렇게 널리 알려지고 사랑을 받게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故 테너 이인범씨가 일제 시대 <전 일본 성악 콩쿨>에서 우승하여 전 일본 도시를 순회 공연을 할때 어느 공연장에서나 그 당시 신곡으로 처음 선을 보인 이곡을 레파토리에 꼭 넣어 부르면서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고 우리의 민족혼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그래서 이 노래의 작곡자 김동진씨는 이인범씨 때문에 자기 노래가 유명 해지고 자기가 이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음으로 오늘의 내가 있게 해준 분은 바로 이 분이라고 故이인범씨 장례식장에서 弔辭를 읽을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고 한다.
<가고파>는 이은상의 실제 고향인 경남 마산 앞바다를 그리며 지은 노래이다. 파랗고 잔잔한 고향 바다와 그 위를 날고 있는 물새들 그리고 같이 뛰어 놀던 어릴적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구구절절히 그려내고 있다. 鷺山 李殷相의 시에 金東振이 곡을 붙인 10절의 가사를 가진 通節形式의 이 노래는 1933년 김동진씨가 평양숭실전문학교에 다니던 학생시절에 작곡, 광복뒤 널리 알려졌다.
한국 가곡의 형태가 아직 정립단계에 이르지 못했던 당시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타는 심정을 낭만적인 표현으로 잘 그린 시와, 이 시의 정서를 잘 담아낸 이곡은 노랫말과 선율이 맑고 아름다워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불리는 가곡의 하나가 되었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젊은 시절의 김동진씨가 지은 이 가곡은 한국 가곡의 역사에 있어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김동진 [金東振, 1913 ~]:작곡가. 평안남도 안주(安州) 출생.
숭실전문(崇實專門) 영문과와 일본 고등음악학교(高等音樂學校)를 졸업했다.
1938년 만주 신징교향악단[新京交響樂團] 바이올린·작곡을 담당했으며 평양교향악단(平壤交響樂團)을 창설하여 지휘했다.
월남 후 해군 정훈음악대 창작부장 겸 지휘자·초대 예술원회원·중앙대학교 예술대학과 경희대학교 음악대학교수를 지냈다.
정부수립 1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승리의 길》을, 서울 시향(市響) 제77회 정기연주회에서는 《가야금 협주곡》을,
혁명경축 음악회에서는 《조국》을 작곡·발표하여 한국 현대 음악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가곡 《가고파》 《내마음》 《목련화》 등은 민족의 서정과 향수를 담은 작품으로 널리 불려지고 있다.
1982: 평화의 노래/1984: 민들레꽃/1985: 도봉,새로운 계절, 망향가, 평양경계가/1987: 소리/1988:사철가,긴농부가,
자진농부가/1990: 백두산/1991: 하나가 되라/199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1994: 남산이여 영원하라, 겨울의 아침,
서소문 길섭 눈물다리, 달아달아 밝은달아, 통일이여 어서오라/1998: 한강/2001: 금강산 찬가, 땅끝해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