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8/30(화) -
아, 가을인가!- (김동길 교수) 해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이런 주제로 생각도 하고 이런 주제로 글을 쓰게 됩니다.
“아, 가을인가!”
내가 가을에 태어난 탓으로 가을바람을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올 것이 왔다”라는 느낌도 있습니다. 조상들이 농경사회를 살면서 추수하는 기쁨도 누렸겠지만 가을이 가면 엄동설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임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1951년, 6.25 사변이 한창이던 부산 피난시절에, 내 나이 스물넷이었는데, 당시 부산에 피난 와서 보수동의 어떤 큰 창고를 가교사로 개조하고 서울의 진명여학교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교장은 이세정, 교감은 박용경, 나는 영어교사로 취직하여 2학년 담임이 되었습니다.
뒤에 유명한 성악가로 이름을 날린 바리톤 조상현은 음악교사였는데
어느 가을 날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박목월이 시를 쓰고 김성태가 곡을 붙인 ‘이별’이었습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한낮이 지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그러나 일 절 부르고 나서는 물론, 이절 삼절을 부르고도
매번 되풀이하는 후렴은 이렇습니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그 때 내가 사랑하던 어린 제자들 효숙이, 양자, 영희, 은숙이, 진순이는 한결같이 이화여대 영문과에 진학하였고, 다 미국에 살고, 효숙이만이 캐나다에 사는데 더러는 칠십을 넘어 팔십이 됐을 텐데,
영희는 병들어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가 구십이 다 된 걸 알면 다들 깜짝 놀라겠지요.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
이 노래가 들려오면 언제나 나는 부산 보수동의 그 진명 창고 교실과
예쁜 내 제자들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보고는 싶지만 볼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습니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가을바람이 싸늘 붑니다.
초가을의 어느 날,
나도 그렇게 조용히 떠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거듭거듭, 인생은 괴로우나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