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삼창은 기도의 잘못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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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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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삼창은 기도의 잘못된 시작이다.
부흥회 때나 기도원에서 합심기도 할 때에,
'주여! 크게 삼창하고 기도하자' 며 인도자가 보통 제안한다.
이것은 온 마음을 모아서 간절하게 기도하자는 뜻으로 잡념을 없애고 오로지 기도에 집중하자는 독려성 제안이겠지만, 그러나 '주여 삼창'은 분명히 성경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기도의 잘못된 시작이다.
1. 삼창에 대한 사회적 배경
그러면 일반적으로 흔히 쓰는 삼창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자.
우리는 크게 기쁠 때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환호성이 바로 '만세'이다. 문헌상으로는 '산호만세(山呼萬歲)' 라 한다.
예로부터 임금을 경배할 때 외치는 환호인데 중국에서는 한무제가 숭산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하와 백성들이 만세를 삼창한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온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신라시대의 진흥왕이 화랑들을 모아 향연을 베풀면 성에서 출영 나온 많은 미녀들과 함께 등불로 밤을 밝히고 남녀가 짝을 이루어 놀면서 부르는 만세소리가 사해를 끓어오르게 했다(歡聲湧四海/山呼震之)는 내용이 기록으로 전해져 온다. 아마 신라시대에도 '만세' 라는 환호성이 일반화 되어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숫자 중 ‘삼’(三)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만세’(萬歲)도 한번이 아닌 세 번 즉 삼창을 해서, 만년(萬年)같은 오랜 세월을 영원히 살아 번영한다는 뜻으로 만세를 꼭 세 번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국경일 등 국가적 행사 말미에는 꼭 대한민국만세를 세 번 한다. 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결정하는 데도 꼭 ‘삼세번’이다. 가위, 바위, 보를 해도 세 번, 승부를 겨루는데도 3판2승을 많이 적용한다. 이처럼 ‘삼세번’은 일상생활 뿐 만 아니라 사회규범이나 정치문화에서도 매우 많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을 잘못했을 때도 '두 번까지는 용서를 해주지만 세 번째는 가차없이 조치하겠다'고 얼음짱을 놓기도 한다. 기업체나 조직의 이사회 등 그리고 법원에서 판사가 사건을 마무리하면서 안건 처리 결과를 방망이 세 번 두드림으로 확정시킨다.
'주여!' 삼창은 이러한 관습과 사회적 통념 등이 결합이 되어 기도 할 때에 부흥사들이 이용하여 '주여' 를 삼창하는 것이 이어져 어느 정도의 관습으로 이어져왔다는 것을 추정하는데 결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세상문화가 교회로 유입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 '주여!' 삼창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볼 때,
가. 같은 말을 되풀이함으로 강조 의지의 표현.
1) 사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 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2) 렘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 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3) 겔21:27/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 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4) 단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 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 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
5)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 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나. 크게 부르짖음으로 강청(强請) 의지의 표현.
1)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2) 마 9: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3) 크게 소리 지를 때에 결단(決斷)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다른 생각이 틈 타지 못하게 하는 최면(催眠) 효과.
3. '주여!' 삼창이 비성경적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가. 성경에서 가리키는 '주'(主, lord)를 바로 알아야 한다.
-개역한글 성경에 '주여'라는 호칭이 구약에 100회, 신약에 107회로 207회 나온다. 그것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구약에서는 여호와를 가리켰다 (삿13:8).
- '여호와'(창18:32;출15:17)대신 사용한 경칭이다. 기원전 6세기에는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시편을 노래할 때,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여, '아도나이'(나의 주님)라는 명칭으로 대신하였다.
2)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마16:16;막8:29;눅13:26;요11:27;행22:8)를 가리켰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여호와)을 가리키던 '주'(퀴리오스)를 예수님과 관련시켰다.
3) 주인. 소유자. 상급자를 가리켰다(창23:15,44:7;삿4:18).
나. '주여!' 삼창에서 가리키는 '주'(主, lord)는 '하나님'이 아니다.
-기도의 대상이 '성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가리켜야 한다.
구약 시대에는 '주'라 칭호하면 대부분 '하나님'을 가리키나, 신약시대에는 성자 이신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기도의 대상이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을 "아버지여!"라고 호칭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명하셨다(마6:9 ;눅11:2).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여!' 라고 호칭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셨다(마26:39;막14:36;눅10:21;요12:27).
삼위일체 이신데 어떠하냐? 하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예배가 아버지께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여!' 삼창은 기도의 대상을 잘못 정한 부르짖음인 것이다.
‘헛된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욥35:13).
한번 '주여'가 들어간 성경구절에는 내 주인의 종으로 표현된 곳이 많다.
그렇지만 '주여 주여' 라고 반복 강조한 구절은 버림받은 자들이 부르짖는 절규의 소리이다(마7:21).
예수님은 마7:22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
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25:11에는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눅 6:46에는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
예전에 어느 기도원 집회에 갔을 때 일이다. 목회자가 통성기도하기를 제안하면서 '주여'삼창을 하는 근거를 설명하였다. 그분은 '주여!' 삼창하는 근거로 다니엘 9장19절 말씀을 내세웠다.
즉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
이 말씀은 '주여'의 반복이 아니라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이다. 물론 세번도 아니며, 따지자면 다섯가지이다.
4. 결론
부르짖는 다는 것은 잘못 된 것이 아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렘33;3)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주여! 삼창' 이 문제인 것이다.
'주여 삼창' 의 문제를 정리해 보면,
① 예배와 기도의 대상이 '아버지 하나님' 이어야 하는데 '예수님'으로 잘못 정하고 있다. 우리 주님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다. 주님의 가르치심은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는 것은 예수님 이름을 내 세워서 받으라는 것이다.
② 주여 삼창의 성경적 근거로 내세운 말씀이 잘못 해석되었다.
*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참고: 마6:7).
또한 세계의 교회 중에 '주여' 삼창하는 교회는 한국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주여 삼창'의 근거가 복음과 함께 온 흔적을 초대교회나 유럽교회에서 그 어디에서나 결코 찾을 수 없다.
장 동 락 목사
복사 http://blog.naver.com/jnknano/80199363135
'주여!' 삼창은 기도의 잘못된 시작이다.
부흥회 때나 기도원에서 합심기도 할 때에,
'주여! 크게 삼창하고 기도하자' 며 인도자가 보통 제안한다.
이것은 온 마음을 모아서 간절하게 기도하자는 뜻으로 잡념을 없애고 오로지 기도에 집중하자는 독려성 제안이겠지만, 그러나 '주여 삼창'은 분명히 성경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기도의 잘못된 시작이다.
1. 삼창에 대한 사회적 배경
그러면 일반적으로 흔히 쓰는 삼창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자.
우리는 크게 기쁠 때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환호성이 바로 '만세'이다. 문헌상으로는 '산호만세(山呼萬歲)' 라 한다.
예로부터 임금을 경배할 때 외치는 환호인데 중국에서는 한무제가 숭산에서 제사를 지낼 때 신하와 백성들이 만세를 삼창한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온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신라시대의 진흥왕이 화랑들을 모아 향연을 베풀면 성에서 출영 나온 많은 미녀들과 함께 등불로 밤을 밝히고 남녀가 짝을 이루어 놀면서 부르는 만세소리가 사해를 끓어오르게 했다(歡聲湧四海/山呼震之)는 내용이 기록으로 전해져 온다. 아마 신라시대에도 '만세' 라는 환호성이 일반화 되어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숫자 중 ‘삼’(三)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만세’(萬歲)도 한번이 아닌 세 번 즉 삼창을 해서, 만년(萬年)같은 오랜 세월을 영원히 살아 번영한다는 뜻으로 만세를 꼭 세 번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국경일 등 국가적 행사 말미에는 꼭 대한민국만세를 세 번 한다. 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결정하는 데도 꼭 ‘삼세번’이다. 가위, 바위, 보를 해도 세 번, 승부를 겨루는데도 3판2승을 많이 적용한다. 이처럼 ‘삼세번’은 일상생활 뿐 만 아니라 사회규범이나 정치문화에서도 매우 많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을 잘못했을 때도 '두 번까지는 용서를 해주지만 세 번째는 가차없이 조치하겠다'고 얼음짱을 놓기도 한다. 기업체나 조직의 이사회 등 그리고 법원에서 판사가 사건을 마무리하면서 안건 처리 결과를 방망이 세 번 두드림으로 확정시킨다.
'주여!' 삼창은 이러한 관습과 사회적 통념 등이 결합이 되어 기도 할 때에 부흥사들이 이용하여 '주여' 를 삼창하는 것이 이어져 어느 정도의 관습으로 이어져왔다는 것을 추정하는데 결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세상문화가 교회로 유입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 '주여!' 삼창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볼 때,
가. 같은 말을 되풀이함으로 강조 의지의 표현.
1) 사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 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2) 렘7;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 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3) 겔21:27/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 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4) 단9: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 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 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
5)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 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나. 크게 부르짖음으로 강청(强請) 의지의 표현.
1)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2) 마 9: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3) 크게 소리 지를 때에 결단(決斷)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다른 생각이 틈 타지 못하게 하는 최면(催眠) 효과.
3. '주여!' 삼창이 비성경적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가. 성경에서 가리키는 '주'(主, lord)를 바로 알아야 한다.
-개역한글 성경에 '주여'라는 호칭이 구약에 100회, 신약에 107회로 207회 나온다. 그것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구약에서는 여호와를 가리켰다 (삿13:8).
- '여호와'(창18:32;출15:17)대신 사용한 경칭이다. 기원전 6세기에는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시편을 노래할 때,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여, '아도나이'(나의 주님)라는 명칭으로 대신하였다.
2)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마16:16;막8:29;눅13:26;요11:27;행22:8)를 가리켰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여호와)을 가리키던 '주'(퀴리오스)를 예수님과 관련시켰다.
3) 주인. 소유자. 상급자를 가리켰다(창23:15,44:7;삿4:18).
나. '주여!' 삼창에서 가리키는 '주'(主, lord)는 '하나님'이 아니다.
-기도의 대상이 '성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가리켜야 한다.
구약 시대에는 '주'라 칭호하면 대부분 '하나님'을 가리키나, 신약시대에는 성자 이신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기도의 대상이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을 "아버지여!"라고 호칭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명하셨다(마6:9 ;눅11:2).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여!' 라고 호칭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셨다(마26:39;막14:36;눅10:21;요12:27).
삼위일체 이신데 어떠하냐? 하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예배가 아버지께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여!' 삼창은 기도의 대상을 잘못 정한 부르짖음인 것이다.
‘헛된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욥35:13).
한번 '주여'가 들어간 성경구절에는 내 주인의 종으로 표현된 곳이 많다.
그렇지만 '주여 주여' 라고 반복 강조한 구절은 버림받은 자들이 부르짖는 절규의 소리이다(마7:21).
예수님은 마7:22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
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25:11에는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눅 6:46에는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
예전에 어느 기도원 집회에 갔을 때 일이다. 목회자가 통성기도하기를 제안하면서 '주여'삼창을 하는 근거를 설명하였다. 그분은 '주여!' 삼창하는 근거로 다니엘 9장19절 말씀을 내세웠다.
즉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
이 말씀은 '주여'의 반복이 아니라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이다. 물론 세번도 아니며, 따지자면 다섯가지이다.
4. 결론
부르짖는 다는 것은 잘못 된 것이 아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렘33;3)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주여! 삼창' 이 문제인 것이다.
'주여 삼창' 의 문제를 정리해 보면,
① 예배와 기도의 대상이 '아버지 하나님' 이어야 하는데 '예수님'으로 잘못 정하고 있다. 우리 주님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다. 주님의 가르치심은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는 것은 예수님 이름을 내 세워서 받으라는 것이다.
② 주여 삼창의 성경적 근거로 내세운 말씀이 잘못 해석되었다.
*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참고: 마6:7).
또한 세계의 교회 중에 '주여' 삼창하는 교회는 한국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주여 삼창'의 근거가 복음과 함께 온 흔적을 초대교회나 유럽교회에서 그 어디에서나 결코 찾을 수 없다.
장 동 락 목사
작성일2017-09-13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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