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여유당전서' -고전의 향연 - 옛 선비들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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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03-13 10:01
유샤인님의 댓글
유샤인
"...다산은 유배된 후 할 일이 없어" -진재교
위의 말은 유배된 후 정조밑에서 열심히 일했던 것처럼 할일이 없어...한동안 의욕을 잃고 우울증에 빠졌던 일을 언급한 문장인것 같다.
실은 한 젊은 과부의 도움으로 의욕을 다시 찾아 그의 우울증을 회복한 후로 꽤나 바쁜 삶을 살은 것으로 아래 글을 읽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
아래글의 출처: http://www.kb34.net/xe/index.php?document_srl=158285
위의 비디오를 다 보고 나니 조선의 서남부쪽에서 동학혁명이 일어나게 된 연유를 잘 이해하게 되고 그 사상이 지금까지도 이리저리 전수해 내려와 그 쪽한국인들이 복지국가를 염원하며 북한의 사회주의에 관심을 적지 않게 갖게 되는 연유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의 성원자였던 정조를 잃고 유방당하자 실의하여 비실비실하던 정약용을 다시 살려 놓고 그가 유배생활을 철처히 최대한으로 살게 해준 배후역에는 22세의 청상과부가 있었다는 이야기와 (결국 그녀는 그의 첩실이 되었단다)
그가 그녀와 알콩달콩 잠자리를 같이할 때 남자들도 겪는 그 갱년기를 극복하고 새로히 생의 의욕을 다시 찿았다는 대목의 글이 새삼 떠오르게 하는 비디오 였다.
====
다산이 남긴 저서가 동학란의 기본 정신이 되었던것 같으며 동학란의 반항정신이 오늘날 전라도인들의 반항정신의 근원이 아니었나 저는 봅니다.
귀양가서 우울증에 사로 잡혀 의욕을 잃고 살던 다산에게 젊은 과부가 호박죽을 끓여다 바치며 (몸도 바친 모양인데) 그래서 다산은 의욕을 다시 찾았고 그녀가 일러 주는 양반들 특히 양반에 붙어 사는 놈들의 행패를 다산은 다 목격하였었나 본데 그 결과로 문제의 저서를 남긴 줄로 본인은 이해 한답니다.
http://www.kb34.net/xe/index.php?document_srl=129270&mid=travel
위의 말은 유배된 후 정조밑에서 열심히 일했던 것처럼 할일이 없어...한동안 의욕을 잃고 우울증에 빠졌던 일을 언급한 문장인것 같다.
실은 한 젊은 과부의 도움으로 의욕을 다시 찾아 그의 우울증을 회복한 후로 꽤나 바쁜 삶을 살은 것으로 아래 글을 읽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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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의 출처: http://www.kb34.net/xe/index.php?document_srl=158285
위의 비디오를 다 보고 나니 조선의 서남부쪽에서 동학혁명이 일어나게 된 연유를 잘 이해하게 되고 그 사상이 지금까지도 이리저리 전수해 내려와 그 쪽한국인들이 복지국가를 염원하며 북한의 사회주의에 관심을 적지 않게 갖게 되는 연유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의 성원자였던 정조를 잃고 유방당하자 실의하여 비실비실하던 정약용을 다시 살려 놓고 그가 유배생활을 철처히 최대한으로 살게 해준 배후역에는 22세의 청상과부가 있었다는 이야기와 (결국 그녀는 그의 첩실이 되었단다)
그가 그녀와 알콩달콩 잠자리를 같이할 때 남자들도 겪는 그 갱년기를 극복하고 새로히 생의 의욕을 다시 찿았다는 대목의 글이 새삼 떠오르게 하는 비디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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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남긴 저서가 동학란의 기본 정신이 되었던것 같으며 동학란의 반항정신이 오늘날 전라도인들의 반항정신의 근원이 아니었나 저는 봅니다.
귀양가서 우울증에 사로 잡혀 의욕을 잃고 살던 다산에게 젊은 과부가 호박죽을 끓여다 바치며 (몸도 바친 모양인데) 그래서 다산은 의욕을 다시 찾았고 그녀가 일러 주는 양반들 특히 양반에 붙어 사는 놈들의 행패를 다산은 다 목격하였었나 본데 그 결과로 문제의 저서를 남긴 줄로 본인은 이해 한답니다.
http://www.kb34.net/xe/index.php?document_srl=129270&mid=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