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과 야유에 무관심했던 거인, 콜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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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31호 (2019-06-17일자)
조롱과 야유에 무관심했던 거인, 콜 총리
-파리를 방문한 헬무트 콜 독일 총리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리무진을 타고 에펠 탑 앞을 지나갔다. 콜 총리가 미테랑에게 물었다.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석유를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에펠탑이 석유 시추 탑과 닮긴 닮은 듯 ^^)
-콜 총리는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다가도 번개가 치면 웃는 표정을 짓는다. 번쩍! 사진을 찍는 줄 알기 때문에.
-독일의 겐셔 외상이 중요한 정치 모임에 지각했다. 땀범벅이 된 채 거친 숨을 몰아치면서 “죄송합니다. 정전이 돼서 엘리베이터에 2시간 갇혀서 뛰어왔습니다.” 콜이 이 이야기를 듣고 거들었다. “할 수 없지요. 지난번에 저도 고생했습니다. 정전되는 바람에 에스컬레이터에 갇혀서….”
그러께 오늘(6월 17일) 세상을 떠난 독일의 콜 총리, 독일의 통일을 완성시킨 ‘통일 재상’이었지요. 프랑스와의 관계를 복원하고 유럽연합(EU) 탄생의 토대를 닦았지만, 평생 자신을 조롱하는 우스개를 들었습니다.
콜은 193㎝에 몸무게가 120㎏이 넘는 거구였지만 미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카툰 작가들은 배추나 배 모양으로 얼굴을 묘사했습니다. 독일 통일 후 혼란기에는 온갖 ‘가짜뉴스’로 조롱과 비난을 받았지만, 한쪽 귀로 흘리며 지냈습니다.
콜은 행복한 가정환경에서 지낸 것도 아닙니다. 형은 2차 세계대전 때 미군과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아내는 미성년 때 러시아군에게 겁탈당한 후유증과 햇빛과민증으로 우울하게 살다가 자살했습니다. 두 아들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돌보지 않아 자살에 이르게 했다며 비난하다가 콜이 35살 연하의 총리실 직원 마이케 리히터와 재혼하자 부자의 연을 끊다시피 했습니다.
콜은 정계에서 은퇴한 뒤 뇌졸중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재작년 오늘 87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습니다. 장례식은 스트라스부르에서 첫 유럽연합(EU)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콜 총리가 없었다면 지금의 강대한 독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콜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통일을 우려하는 미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을 설득해 통일을 완성합니다. 그러나 통일의 후유증 때문에 정치생명을 마감합니다.
만약 콜이 자신을 비난하는 온갖 목소리에 대응하며 시간을 허비했다면, 자신의 우울한 내면에 주저했다면, 독일을 둘러싼 외국의 비난에 양보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겁니다. 콜이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역사에 대한 폭넓고 객관적인 인식 덕분일 겁니다. 그는 역사를 전공했고 역사에 대한 정확한 혜안으로 정치적 판단을 했습니다. 나치에 동조했던 국민의 처지까지도 포용해서 나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지만, 전체를 아우르고 미래를 봤습니다.
보잘것 없는 근거로 누군가 비난하는 것은 쉽습니다. 비난과 싸우며 자신을 변호하는 것은 덜 쉽지만 아주 어렵지는 않습니다. 비난과 조롱을 포용하면서 미래로 나가는 것은 정말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울퉁불퉁한 산길을 가는 사람이 이룹니다. 많은 독일인이 우스꽝스럽게 기억하는 콜은 그런 거인이 아닐까요?
작성일2019-06-1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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