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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1 만남도 헤어짐도
살면서의 이 모든 만남도 헤어짐도 다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 있음을, 자랄 것은 다 자라버린 이제서야 깨달았다. 아주 오래전 같은 학교를 다니며 서로 비슷한 길에 서서, 붓을 들고 함께 그림을 그리며 멋진 작품을 꿈꾸던 친구들을 만나 짧은 여행을 떠났다. 지나가 버려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냥 내게 주어진 것 같았던 습관 같은 남편과 아들도 아예 없었던 거처럼, 20살의 나 그대로 서 있었다. 온전한 나 하나 만으로서 친구들과의 시간들은 끝없는 이야기와 웃음과 순수함 그것만으로도 긴 세월 훨훨 날려 버리며, 문듯 눈가의 주름도 흰머리도 세상의 아픔들도 구름처럼 사라져 버렸다. 혼자 오래 살고 있는, 몸이 좋지 않은, 세상의 화려함을 잃어버린 누군가는 있었지만, 너무도아름다운 하나하나의 친구들 - 모두가 떠나는 마지막 날, 보내야 하는 언제 다시 만나 이렇게 같이 있을까 싶은 서운함에 눈물부터 흘러내리며 껴안고 또 껴안았다. 오래전 이미 나에게서 떠나 버렸다고 아예 마음의 빗장 속에 닫아 두었던 젊음의 청춘이 순식간에 왔다 다시 사라진다고 느꼈었기에, 더 서운하고 더 붙잡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 자신도 완벽히 잊어버렸든 옛날의 나를 기억해주며, 나의 모자람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많은 실수들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오롯이 잊고 있었던 옛날의내가 다시 나타나,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 잘 살고 있다고 머리 쓰다듬어도 주었다. 예전의 내가 있었었기에 지금 이 순간, 땅에 단단히 다리를 딛고 서있는 것이고, 그때의 그 아픔과 기쁨과 실수로 다져졌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그래, 떠나 버렸다고 믿었던 청춘의 다시 만남도 헤어짐도 그저 내 마음 안에서 느끼고 있었던 것이지, 그것은 없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던 것이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든 부끄럼 없는 나를 위해 더 머리 숙이며 살라고 가르쳐 주었다.
2015-06-02 탁월한 선택
요즈음 세계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재앙'이라는 단어가 속출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사건과 상황을 설명하는 표현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달포 전인 4월에 이어 5월에는 네팔에서의 격렬한 지진발생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소식에 우리 모두는 서늘한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습니다. 또한 지난해 8월에는 우리의 고장인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 6.0 규모의 지진으로 샌프란시스코 일대 100만 명이 강한 진동을 느낌과 동시에 세계 최대 와인산지인 나파 벨리 지역이 크게 파손되었던 아픔을 기억합니다. 게다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이곳 캘리포니아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물 전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지구의 지각변동과 밤 사이에 일어나는 예기치 않는 사고등으로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불안하다 못해 무서워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도 시급한 이 때에 나는 무엇인가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불의한 사고를 대비하여 미리 마음을 가다듬고 단속하는 일이지요. 구체적으로 그 날을 예비한 구급 약품과 양식을 저축해 놓는 일입니다. 몸의 단백질 섭취와 열량을 위해 비프저키를 비롯한 미숫가루, 초콜릿과 쿠키, 그리고 신변의 보호를 위해 호루라기와 마스크, 손전등과 겨울 옷가지 등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식수는 아예 여러 박스 비축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강아지 사료도 잊지 않고 꼼꼼하게 챙겨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여차하면 준비된 배낭을 짊어지고 달음질할 태세로 현관문 옆에 항상 대기해 놓았습니다. 좀 창피하긴 하지만 행여 샤워 중일 때나 변기에 앉아 있을때 이런 재난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궁리를 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전투태세를 완벽하게 끝내고 있는 나에게 지인 한 분이 스마트 폰으로 카톡 한 개를 보내왔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나에게 이야기 하기' 글 중의 일부입니다. '너무 잘하려 하지 말라 하네. 이미 살고 있음이 이긴 것이므로.(중략)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 하네. 천천히 가도 얼마든지 먼저 도착할 수 있으므로. 죽도록 온 존재로 사랑하라 하네. 우리가 세상에 온 이유는 사랑하기 위함이므로. 향나무는 자기를 찍은 도끼에도 향을 묻힌다네요' 이 짧은글 몇 소절이 아침햇살처럼 내 마음에 쏟아져 스며들었습니다. '빚'이라는 글 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빛'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단단히 꾸렸던 짐을 미련 없이 풀어 놓습니다. 용케 살아 남아 미안해 하는 것보다 아직 턱 없이 못다 베푼 사랑, 죽을 힘 다해 퍼주고는 잘 죽을까 합니다. 수필가 에스터 최
2015-06-01 선생님께
[샌프란시스코 한국 문학인 협회]에서 매달 읽는 책 덕분에 지적인 풍요를 누리는 삶입니다. 더구나 지난달에 읽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뇌리를 파고들어 선생님의 뜻대로 모두 필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절절한 아름다움은 전신에 전류가 되어 흐르면서, 저도 선생님께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문학을 당신의 운명이라고 말씀하시는 우리들의 선생님, 선생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문학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문학은 곧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웃을, 사회를, 국가를, 나아가서는 인류를 사랑하게 되는 길이기도 하다"고요. 선생님, 저는 사회나 국가, 인류까지는 몰라도 나 자신과 이웃만이라도 진지하게 사랑할 수 있는 작가이기를 바라며 이 글을 올립니다. 선생님,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프란츠 쿠사버 카푸스]에게 쓴 편지에는 "나는 글을 꼭 써야 한다" 는 답이 나오면 "삶을 이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산달이 되도록 가슴속에 잉태하였다가 분만하라고. 모든 인상과 느낌의 모든 싹이 완전히 자체속에서, 어둠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속에서, 무의식 속에서, 우리 자신의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것 속에서 완성에 이르도록 내버려두라고, 그러고 나서 깊은 겸손과 인내심을 갖고 새로운 명료함이 탄생하는 시간을 기다리라고, 이것만이 예술가답게 사는 것이라는. 그리고 말합니다. 여기서는 시간을 헤아리는 일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여기서는 1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심지어 10년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무릇 예술가라고 하는 존재는 세지도 헤아리지도 않아야 한다고요. 나무처럼 성장해 하는 존재. 수액을 재촉하지도 않고 봄 폭풍의 한가운데에 의연하게 서서 혹시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여름은 오니까. 여름은 마치 자신들 앞에 영원의 시간이 놓여 있는 듯 아무 걱정도 없이 그리고 여유 있게 기다리는 참을성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것을 날마다 배우고 있다고. 인내가 모든 것이라는 것을. 선생님, 릴케는 또 말합니다.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당신의 성장을 기뻐하라고요. 또 말합니다. 꼭 필요한 것은 위대한 내면의 고독뿐이라고. 선생님, 10통의 길지 않은 편지들이었지만 남은 생을 두고 두고 읽고 또 읽고 싶은 내용이었습니다. 이 책을 권해주신 선생님, 어버이날이있고 스승의 날이 있는 이 계절에 감격과 환희로 감사의 글을 끝냅니다. 감사합니다.
2015-05-05 어머니 날 즈음에
산그늘의 봄 서인숙 산은 제 모습을 모른다. 모르는 아픔이 있다. 화창한 봄날 산은 제 모습을 호수를 향해 던졌다 호수는 기다린 듯 물결을 치솟다 잠잠하게 산을 감싸 안았다 나무 우거진 숲 속은 원시이듯 맨살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은 수목의 언어들이 피워 오른 물의 영토 산은 황홀한 웃음을 터뜨리다 노을 쏟아 낸다. 해는 산을 넘었다. 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80대의 엄마가 쓰신, 격려의 시 한편 . 가슴속에 쏴 하는 아픔이 내게로 던져진다. 산다는 것은, 나이의 딱 그 숫자만큼 아팠다가 나았다가 하며 만들어진 나이테처럼, 굳은살로 무거워진 무게만큼 아팠다는 것이리라. 내가 지독히도 좋아했었고 또 그보다 더 미워하고 싫어하는 바로 위 핏줄의 연결인 엄마의, 내려다보는 사랑인 것이다. 난 아직도 버둥거리며 거추장스러워하며 그 사랑에 힘들어하지만, 내가 넘을 수 없는 절대적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산은 제 모습을 모른다고 하신다. 모르는 아픔이 있다고 하신 거처럼 나도 모른다. 그래서 더 많이 아프고 더 모자라고 그래서 영원한 자식인 것이다. 언제쯤 나도 당신처럼 될 수 있고, 당신의 사랑을 제대로 느끼면서 - 모르는 자식이 아닌 조금은 알아주는 자식으로- 노을을 쏟아내며, 당신의 자랑스러움이 될 수 있을지...
2015-05-01 폼생폼사
그 얘기를 전해 듣는 순간부터 멀쩡하던 배가 갑자기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위장이 울렁거려 입맛까지 싹 달아났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살맛도 없어졌습니다. 콩 심은 곳에 콩 나고 팥 싶은데 팥이 나련만 좁쌀 알을 심었을 그녀가 어찌하여 품지도 않은 황금알을 독차지 했는지 불거진 내 심통은 영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그녀와 이웃사촌으로 지내온 지 어언 15년, 먼 형제보다 가까운 이웃이 백 번 낫다는 말대로 서로간에 속내 다 털어 보이며 살아온 관계인 것 같은데 그녀에게 찾아온 뜻밖의 횡재가 왜 나를 이토록 괴롭게 하는지 그것이 더 환장할 노릇입니다. 이 참에 말이야 바른 말인데요.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한 날부터 나는 실상 많은 것을 베풀었습니다. 알뜰하다 못해 짠순이인 그녀에게 밥값은 물론 영화, 여행, 쇼핑 등 만날 때마다 지불되는 돈은 거의 제 차지였습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이민의 땅에서 뛰고 달리며 달러를 벌어 생존하기는 그녀나 나나 도토리 키 재기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내 처지가 상대보다는 조금은 숨 돌릴 수 있다는 배려로 나는 매번 쿨 하게 행동했지요. 그럴 때마다 미안해진 친구가 종종 내게 던진말은 " 고마워, 언젠가 내가 잘 되면 그 땐 너에게 비단방석 깔아 줄께. 호호호.." 그런데 정말 그녀에게 대박이 터졌습니다. CNA(간호보조사)로 일하는 그녀에겐 유달리 가깝게 지내던 환자가 있었는데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소유하고 있던 당신의 집과 재산을 몽땅 이 친구에게 넘겨 준 것입니다. 버젓이 당신 자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은 동양 아줌마한테 송두리째 그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물려 준, 코 크고 눈 파란 이 나라 사람의 본심을 이해하기란 너무나 버겁습니다. 하여튼 그녀는 쓰나미보다 더 무섭다는 렌트비 내는 날짜에 떨지 않아도 되고, 주행 중 자동차가 허락 없이 정차하는 일에 당혹해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빵과 우유를 사기 위해 달려가던 원 달러($1) 가게의 출입을 졸업했으며, 'Good will' 스토아에서 중고품 옷과 신발을 고르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서도 완전히 물러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백조로 변신한 친구에게 눈을 맞추며 당연히 화문석 호화로운 비단 방석에 앉혀 주겠거니 고대하던 나는 몇 날 안되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갑자기 거부가 된 그녀가 이곳 저곳에서 들이 내미는 손이 못내 부담스러웠던지 잠수함을 타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그렇지, 나마저 버려두고 가다니... 참으로 치사한 친구입니다. 그 날 이후 절반 이상을 살아온 내 삶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남들처럼 이렇다 할 배경이 없는 나는 은근슬쩍 튀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매주 한 번, 일확 천금을 꿈꾸며 로토를 사들인 날 수를 합하면 강산이 두 번 변했을 테고, 박수 받기 위해 주머니를 털어 선행을 주도한 일은 열 손가락이 넘습니다. 어떻게든 무대에 올라서서 주인공이 되어 찬사를 받고 싶기만 한 나! 하늘은 여전히 폼.생.폼.사 로 살아가고 있는 나를 향해 꾸짖어 말합니다. "이 철없는 것아, 세상 이치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여"
2015-04-04 에스터 최의 행복한 쉼터 : 닭 대가리
이른 아침 누군가가 문을 세차게 두드렸습니다. 잠이 덜 깬 실눈으로 현관문을 열자 뜻밖에 옆집 남자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순간 너무 당황하여 문을 쾅 하고 닫아 버렸습니다. 그리곤 아차 싶어 다시 문을 열자 그 남자는 몹시 화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습니다." your car door is open" '이 새벽에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람' 나는 눈을 껌벅이며 잠시 멍청해졌습니다. 그러나 몇 초 후 사태를 감지한 나는 한 걸음에 자동차를 파킹해 놓은 곳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이런 젠장 …'자동차 안은 직격탄을 맞은 것보다 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기분 정말 꽝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한번은 공원 주차장에서, 또 한번은 다른동네 주택가에서, 그리고 이번엔 우리집 파킹장에 버젓이 주차해 놓은 안전지대에서 일이 발생했습니다. '자동차에 손을 댄 녀석이 어떤 놈인지 나타나만 봐라. 그냥 단 한 번에 이단 옆차기로 날려 버리리라' 열을 품어내다가 나는 금새 맥이 쭉 빠져버렸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신 경찰나리의 말씀이 유리창이 깨지지 않은 정황으로 비추어 볼 때 내가 자동차 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가 닭 대가리란 말인가?' 위로는 고사하고 건망증으로 치부하는 경찰의 태도에 기분이 더 나빠졌습니다. 그러나 실은 마음이 꺼림직하긴 했습니다. 평소 자동차 문조차 잘 닫지 않고 내려 배터리가 나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그건 그렇고 나의 재산목록 1호인 자동차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은 옆집 남자가 우리집을 찾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몇 년 동안 이웃으로 살면서도 얼굴 마주하여 그 흔한 'How are you?' 인사 한번 나눈 적이 없었기에 그의 돌출 행동이 고맙기 보다는 겁이 났습니다. 혼자 사는 그 남자는 밝은 대낮엔 집에 잠적해 있다가 캄캄한 밤에만 밖으로 나와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끔 한밤중에는 괴성을 지르곤 해서 종종 경찰이 다녀가기도 하고 누군가가 그를 방문해 올 때도 남자의 큰 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여튼 알수 없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바로 내 옆 집에 살고 있다는 것에 나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면으로 그의 얼굴을 대한 오늘아침, 웬일인지 그의 푸른 눈이 하루 종일 아른거렸습니다. 그렇게 맑고 깊은 눈은 생전 처음 보았습니다. 야심한 밤에 울부짖곤하던 그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아름다운 눈 속엔 어떤 비밀이 숨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저녁 평소대로 황혼이 지기 전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건너편에 살고 있는 수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함께 걸으며 오늘의 빅뉴스인 자동차 사건을 얘기 하면서 옆집 남자의 공헌담까지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수잔이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참으로 안됐어. 그 젊은 양반, 이라크 전쟁에서 너무 큰 쇼크를 받아 정신이 반은 나갔다지? 참으로 보기 드문 성실하고 착한 마이클이었는데 말야. 속히 그 전쟁의 아픔을 잊어야 할 텐데..." 수잔의 말을 듣고 있는 내 마음이 송곳에 찔린 듯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마이클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다가왔습니다. 적군에게는 악마였으나 아군에게는 영웅이었던 남자, 공식적으로 160명을 비공식적으로는 255명을 저격 사살한 미해군 전설의 저격수 '크리스카일'처럼 삶과 죽음을 넘나 들었던 또 다른 실화의 주인공이 바로 내 이웃, 옆 집 남자였습니다. 나는 고민합니다. 전쟁에서 밀려나 수호신의 그림자가 되어 이웃을 지켜주고 있는 그의 고독을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기도합니다. 몇 번이고 자동차를 털리게 한 '닭 대가리'인 나처럼 그도 전쟁 속 파편의 기억들일랑은 깡그리 잊어버리는 또 다른 '닭 대가리'였으면 좋겠습니다.
2015-04-01 2014년 노벨문학상 작가 패트릭 모디아노의 '지평'을 읽고서
지평의 뜻부터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생기는 선으로 보이는 풍경이라는 뜻이다. 무엇과 무엇이 만났었고 또 누구와 누구가 만났다고 하여 생기는 것 - 관계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2차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의 혼란과 가치관의 상실속에서 시작된, 관계의 지독한 상실속에서 외롭다 못해 처절한 청춘의 남녀가 지하철 앞에서 만난다. 무엇인지 제대로 된 공포의 실체도 모르는 체 도망 다니는 20살 남짓의 여자와, 인간관계의 첫 시작인 부모로부터의 학대에 숨어다니고 있는 남자의 시작도 끝도 없는 사랑 이야기다. 그런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과 미래라는 거대한 계획은 갑자기 타인에 의한 작은 일에 뽑히면서 이별은 시작되었고, 그관계들은 어느덧 긴 기억의 창고에 갇혀 버린다. 40년 후의 남자는 오랜 시간 상실되었던 기억 속의 파편들을 작은 수첩에 적어 가면서 다시 그 여행 - 관계는 시작되고, 작은 단어 하나와 이름의 첫 글자 하나에서 살아온 시간들이 불빛처럼 떠오르면서, 잊고 있었다는 끝나지 않은 그 사랑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요즈음의 나 자신도 문득 떠오르는 단어들이, 생각지도 않았든 이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들었던 웃음소리까지 기억나게 하는 순간들이 생겼다. 이름은 잊었지만 작은 노래 속의 한 구절이 오래전에 있었든 사랑의 흉터 자리를 다시 가려워 긁게 하고, 미움 속에 헤어졌든 어디에선가 분명히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친구의 모습을 기억하게 한다. 어디에서부터 기억들이 지워져 갔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많은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은 마치 밤 기차 속 여행처럼, 누구는 다음 종착지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서 눈빛 한번 없이 씩씩하게 내렸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은 체마지못해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바라보며 떠났을 것이다. 사랑하면 내 곁에 남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내게 남겨 놓았던 그 만남 - 관계는 아직도 이곳에 사는 내 기억과 심장과 살갗 밑에서 오늘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며 그 또한 바로 내가 만든 나 자신인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타고 있는 이밤 기차는 누군가를 태우고 또 누군가는 내려놓으면서도, 쉼 없이 오늘도 만남을 만들어 가면서 지금도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15-03-01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며
얼마만큼이 나의 몫일까 인생에서,,,, 오랜만에 영화를 보며 한참을 울었다.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책임을 위해 희생하며 온갖 힘든 일을 하다, 나이들어 뒤돌아 보든 어느 날 꿈속에서 만난 아버지께 이야기한다. 당신이 등뒤에 매어 주신 - 나의 몫에 온 힘을 다했다고 응석 부리며, 참으로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나자신의 감정까지 덧붙여서 제대로 이입하며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게도 분명히 버티며 지켜가며 최선을 다해야 하는 나만의 몫인 인생이 있을 것이다. 혹 아직도 그 몫이 무엇인지 제대로 찾지도 못한 체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조바심내지만, 아마 지금의 오늘 이 자리가 진정 나의 몫이라고 여기고 싶다. 귀찮고 힘들어도, 그만두고서 숨고 싶어도, 끝까지 묵묵히 천천히 진심으로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내게 주어진 몫을 다하였다며 자랑하게 될 거라 믿고 싶다. 그 어떤 다른 선택보다 당신이 주신 그 길이 옳았다고 자신하면서. 그래, 얼마만큼이 나의 몫인지 모르겠지만, 떠나야 하는 그 어느날. 그동안의 많은 일 과장하며,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끝냈다며 마음껏 응석 부릴 수 있으면 더 좋겠다.
2015-02-08 깨어 있음에
모두가 깨어 있으라고들 한다. 더 많이 느끼고 더 성장하고 더욱더 제대로 사람처럼 잘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깨어 있음으로써 느끼게 되는 하루하루의 기쁨이 과연 우리는 얼마나 감사히 받아 드리고 있을까. 눈 뜨는 일과의 시작에서부터 눈을 감는 하루의 끝자락 사이,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고,,,, 이 신체의 기능부터 모든 것이 당연한 듯 그냥 스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얼마나 무심하게, 무감각하게 이 많은 소중한 것을 생생하게 느끼며 감사하고 있을까. 진정으로 깨어 있어 느끼는 삶은 감사의 연속임을. 비록 모순과 역설과 이율배반이 인간 인식일지라도, 또한 고통이 제2의 축복이라는 신앙적 관점이 아니라도, 이 모든 것은 삶의 부분임을 깨달으며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삶은 살아 있는 자체가 은총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기에 느끼는 삶이 너무도 귀함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느끼게 된다. 이렇게 깨어 있어 느끼는 삶은 나에게 더욱 더 가족과 친지의 귀중함을, 삶의 아름다움을 뇌리와 가슴에 젖어들게 한다.
2015-01-05 흐르는 세월 앞에서
세월여류(歲月如流 ) 라고 했던가요. 참으로 세월은 빨리도 흘러가고 있네요. 일부러라도 시간을 세지 않으려 무심한 듯 봄의 꽃 비도 맞았었고, 끝날 것 같지 않았든 여름의 뜨거움도 좋아하려 했었고, 가을의 진홍색 감들이 이미 익어 농해가는 것도 모른 척하며 일부러 열매를 따지도 않았는데도 결국 차가운 겨울비와 함께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새로운 숫자를 바꾼 체 환한 모습으로 새해는 왔습니다. 무엇을 하였으며 또 무엇을 따로 하여야 한다는 압박감은 가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른 시간은 나를 재촉하며 등을 떠미네요. 마음 밭에 서성이면서 작은 무어라도 하나 키우고 싶어 책상 앞에 앉아 봅니다만, 금세 허리도 다리도 저려 그만 바깥의 소리와 냄새와 재미있는 딴 짓거리로 마음이 팔려 멍하니 있습니다. 아무려면, 맛 나는 거 먹으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거보다 신 나고 재미있고 행복한 일이 어디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혼자 있음 마음속 구석 자리의 바람 소리가 싫어 얼른 다시 책상 앞으로 다가갑니다. 내심 좋아서 즐기면서 하여야지 하며 진정 주인인 척 여유 부려 보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갈 때도 있네요. 그래도 다 내려놓고서 즐기렵니다 그래야 나의 여유가 오히려 거름이 되어 더 단단한 열매를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같은 정열을 가진것도 아니고 예술을 위해 피나는 고통의 순간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만, 하고 싶다는 간절함만은 미처 파 보지 못한 우물 속의 물처럼 오랫동안 흐르고 있었고 언제나 내게 목마름의 갈증을 적셔 주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끝을 맺는 마침표를 아주아주 한참 뒤에 찍는다 해도 늦지 않을 것이며 이 모든 게 바로 나의 것, 나의 몫으로 허락된 것이라 믿으렵니다. 그리고 수 없는 날들이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하여도, 마냥 시간만 세며 초조해하는 거 보다 이제는 이토록 빨리 흐르는 세월을 아끼면서 작은 열매일지라도 단단하게 새롭게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그냥 저절로 시간이 가면 되는 것이 아닌 - 진정 새로운 것이 영글어졌으면 합니다.
2014-12-05 그때 그 여행에서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모든 것이 마냥 제자리에 잘 있고 한없이 평화롭고 행복하지만, 지금 있는 여기를 떠나 그냥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어 마음도 몸도 다 간지럽다. 어느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내 깊은 속 안의 감정들이 졸고 있는 것 같고, 이 졸음을 깨우기 위해서는 무언가 해야만 하는 조급함에 휩싸이며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래서 서둘러 갈 곳을 정하고 가방을 챙기면서, 떠난다는 짜릿한 바람기를 은근히 즐기며 그날을 기다린다. 오랫동안 꿈꾸어 오든 페루 여행에서의 첫날은 어디서 부는지도 모를 텁텁한 바람의 낯설음과 비릿한 냄새로 시작되었다. 낯선 곳에서의 설레임보다는 아리고 쓰린 이 느낌들이 밑에서 위로 올라오며 첫날 잠을 설쳤다. 새로운 것을 보는 기쁨과 처음인 곳에서의 들뜬 가벼움이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다 가라앉은 체 무게에 무게를 더하면서, 잉카의 모습들은 차라리 애처로웠다. 거대한 돌덩이들을 높은 산꼭대기까지 움직여 하나하나 조각을 하고, 그 목적인 삶의 영원한 지속을 위해 또 다른 사람의 목숨을 딛고서 이룩한 선조들의 후예인 지금의 그들은, 아직도 체 별로 가진 것 없는 가난의 얼굴들이었다. 차라리 소리쳐 온 세계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상상을 초월한 조상의 유물들을 보여주며 살아가면 지금보다 나으리 리만, 그들은 묵묵히 지금의 가진 그것만으로도 신비하리만큼 아픔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과거 조상들의 욕심으로 남겨진 웅장한 모습과 미래의 알지 못하는 금빛의 오아시스를 꿈꾸는 거 보담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더없이 익숙한 오늘이 더 편하고 행복한 거라는 걸 깨닫고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허름한 옷차림에 머리엔 꽃 하나 꼽고 등 뒤에 작은 애기 업고서, 한 손 가득 꽃나무가지를 들고 미소 지으며 가다 눈빛으로 마주친 낯선 땅의 그녀에게서, 난 내 슬픔의 뒤집힘이 무엇이었으며 또 가끔 내가 왜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욕심이었다....... 살던 곳을 떠난다는 것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곳에서의 도망 -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의 새로운 사랑을 찾기 위해서라 깨닫는다. 있던 곳을 낯선 먼곳에서, 마음으로 다시 만나보고 만져주며 사랑한다고 해주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나의 익숙한 모습을 바라보다, 황급히 목마른 모습으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긴 편한 잠으로 한참을 안도한다. 떠난다는 이유가 싫어서 미워져서가 아니라 더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믿으면서, 어디로 가야 또 나를 새로이 만날수 있을지 상상하며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까만 밤을 뒤척인다.
2014-11-07 입동 유감(立冬 有感) …입동 유언 (立冬 遺言)
태양과 초록이 짙은 여름을 건너 결실과 베품의 가을이 되었습니다. 캘리포니아 가을은 ‘가을인가’ 하고 창을 열면 벌써 입동(立冬)이 찾아듭니다. 입동은 겨울이 들어서는 날이라는 뜻으로 절기상 이날부터 겨울의 시작점이 됩니다. 입춘, 입하, 입추와 같은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4립의 하나로 양력으로는 11월 7~8일로 겨울채비를 하기 시작하며 대표적인 겨울 준비가 김장입니다. 인생을 봄,여름 ,가을 ,겨울 4계절로 나누어 생각해 봅니다. 꽃처럼 젊음이 만발하는 유년과 학창시절을 지나 이성에도 눈을 뜨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태어나서 20살까지 피어나는 봄을 느낍니다. 가정을 이루고 성공을 위해 힘껏 달음박질 하며 자신감과 패기와 욕심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30,40대가 여름으로 활개를 칩니다. 한여름 더위처럼 욕심이 한풀 꺽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인생의 절정이랄 수 있는 50,60대로 그간의 삶에 대한 결실을 접하게 됩니다. 그간 뜨거운 더위와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아 자식들이 결혼해 떠나갈 때 열매와 함께 잎새마저 다 털어내고 김장을 준비하는 노후 생활 처럼 겨울 나기를 준비하는70,80대가 겨울로 시렵습니다. 이민 생활을 살아가며 가을에서 입동을 맞는 인생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힘있게 뿌리 내린 나무처럼 정신적 유산을 유업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노랗고 발알갛게 단풍으로 물드는 꿈결같은 여정으로 입동의 추위가 찾아들기 전에 따뜻한 겨울 채비로 여유로운 노후도 설계합니다. 특히 가을이 깊어가면서 가을의 나이로 깊어지는 사람들이 장례 컨설팅과 유언장 준비로 찾아드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연소득 7만달러 미만인 사람중에 유언장을 가진자가 절반인데 비해 그보다 고소득자인 경우는 65%가 유언장을 준비했다는 갤럽 여론 조사입니다. 유언을 남겼는지 여부는 사망일로부터 대개 30일 안에 밝혀야 하며 샌프란시스코 거주자가 서울에 출장갔다가 변을 당했다 하더라도 죽은 사람의 거주지 주소인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상속이 집행되어야 합니다. 유언은 18세 이상의 성년으로서 정신상태가 건강하고 자신의 재산상태나 가족관계에 관한 건전하고 일반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남길 수 있습니다. 유언장은 사후 유언의 내용에 시비를 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증인2명이 서명한 유언장을 남기는게 좋고 만일을 대비하여 법조인이나 은행 혹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 그 사본을 맡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유언이 국가에 보고되고 반드시 공식기록이 남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 등을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달갑지가 않습니다. 또한 유언의 작성 및 집행은 재산이 있는 곳에서 가능하며 유언의 집행 시간도 1~2년가량 소요될 뿐 아니라 상당한 금액의 변호사 비용도 따라 옵니다.. 장례식에 시신을 앞에 두고 유언의 내용을 둘러싸고 자식들 혹은 친척 사이에 다툼이 생기는 상황을 많이 보게 되는데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처럼 사후에 집행되는 유언이라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유언에 의한 재산상속시 배우자는 면세가 되지만 남은 배우자도 사망시에는 그 몫이 자식들에게 상속되어 60만 달러가 넘는 부분에 대해 연방정부에 상당한 세금을 납부해야 됩니다. 특히 이유 없이 부모의 유언으로부터 제외되었다거나 유언의 내용이 자신에게 현저히 부당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누구든지 유언의 내용에 대해 이의 (contest)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유언자가 치매상태에서 유언장을 작성했거나 유언에 '지나친 간섭' 흑은 '부당한 압박’등의 증거를 확보해 타인의 영향이 가해진 경우라던지 증인의 서명,공증이 없는 유언장에 대해 상속에 불만이 있는자등은 이의 제기를 하곤 합니다. 또한 유언이 두 개 이상 작성되었을 경우에는 시기적으로 최근 것이 유효하고 그렇지 않으면 둘 다 유효한 유언으로 해석됩니다. 현재는 이런 유언장의 이의 제기,상속세등 문제점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60만 달러 이상의 주택이나 재산을 가진 입동의 시기로 접어든 많은 분들이 김장을 담구듯 노후대책-겨울 나기 준비책, 유언의 대안으로 '리빙 트러스트'를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풍성한 가을되시고 따뜻한 겨울나기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이 목적이지 법률적인 조언이 아니므로 단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김병오 공인 법무사,내일 장례 컨설턴트 Tel (408)688-1416 E-mail:dkimlegal@gmail.com
2014-11-05 포도원에서 진행되는 결혼식
태양의 열기는 해 질 무렵인데도 뜨거웠다. 이 뜨거운 여름날, 한껏 차려입고 초대에 응한 나는 높은 하이힐의 고통도 잊은 채 그저 눈물이 흐름을 막을 길 없었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랑으로 포화되어 있는 그 곳에서, 내 가슴의 한켠에서 일고 있는 아련한 파도 - 화려한 꽃들 위로, 눈부신 자리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지나간 나의 청춘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힘들지도 슬프지 않았는데도, 진실로 행복하고 마냥 꿈같이 흘러간 시간들이었다고 말할 수가 없음이리라. 무모했고 소중함도 감사할 줄도 몰랐기에 그저 뜨거운 청춘으로 아팠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그 화려한 순간들이 지난 후의 빈자리가 내 눈앞에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나는 애써 이 모든 영상을 지워 버리며, 이 아름다운 한 쌍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둘이서 함께 가야만 하는 날들의 오랜 여정을 생각하며, 온 마음으로 축복해 주었고 꼭 행복해야 한다고 힘껏 품어 주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상상해 보았다. 누가 내게 다시 그 시절의 그 나이로 되돌아가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았다. 젊음의 온갖 반짝이는 아름다움에도, 돌아가고 쉽지는 않았다. 그 때의 의미 없는 방황과 청춘의 허비와 무지...비록 그 하나하나가 내 뼈와 살 속으로 스며들어 오늘의 나를 이룩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나로부터, 나로 인해 만들어진 지금의 모자람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감사할 수 있는 세월의 무게에 행복을 느끼는 시점에 와 있기에. 하여, 손안의 작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간 내 젊은 시절을 아쉬워하는 것보다는, 삶의 세찬 바람까지를 품을 수 있는 오늘의 여유와 나날이 둥그러져 가는 삶을 가슴으로 나누며 영위하는 이 시간을 축복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모든 인연들이 더욱 더 소중해지며 또 다시 눈물이 흘렀다. 조금 전 태양의 열기 안에서, 그 포도원의 결혼식장에서 흘린 눈물과는 아주 아주 다른 색감의 눈물이...
2014-10-05 자화상
4번째 자화상을 그리려 거울 앞에 앉았다. 몇 번의 숫자, 그 변화의 번호가 무심코 내가 살아온 세월의 모습 - 그 하나하나의 의미로 매겨진다. 20대 사랑을 시작하고서 그렸든 제일 처음의 것은, 눈도 코도 얼굴도 다 날아다니고 있다. 그만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랑에 취해 떠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삶의 두려움을 몰라 억지의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모습이다. 두 번째의 것은 온 얼굴의 근육들이 제대로 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체, 산다는 것의 도전에 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면서 살던 때의 모습이다. 뭘 그리 눈에 불을 켜고서 살았을까 싶지만 내가 봐도 싫다. 욕심과 오기가 얼굴 밑에 놓여져서 거울 속에서도 바로 제대로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의 자화상은 세월도 흘렀고 모든 것이 편안해졌지만, 여전히 힘세어 보이고 억세다.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른 채, 아직도 자신을 편안히 껴안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네 번째의 얼굴을 그리고자 다시 캔버스 옆 거울 앞에 앉지만, 이제는 두렵다. 지금까지 그렸던 자화상들이 바로 내가 살아온 흔적들이 그대로 보이고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그리는 나의 모습은, 하나의 물체로서 그냥 나라는 것을 내려두고 바로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다.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일부러 포장하지도 않고 얼굴에 새겨진 것들 - 그 속안의 것들인 세월의 자국까지 그린다는 것이다. 바로 나를 드러내어 스스로를 씻어내고 깨끗해지는 고해의 순간처럼 - 잘못된 그때를 기억하면서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약속으로 매김 하는 고백인 것이다. 무언가를 들어내지 않고서는 남아있는 공간을 만들 수 없듯이, 나를 드러내고 자리를 비워두지 않고서는 진정한 것이 나올 수 없으리라는 마음으로 하나씩 배워간다. 그냥 내가 지니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보여지는 자화상을 그리는 작업의 숫자는, 얼마나 오래 만들어질런지는 모르지만 계속하고 싶다.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되리라고 믿으면서. 네 번째 나의 자화상 얼굴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표현되어지고 나타나, 또 다시 나를 뒤돌아 보게 하면서, 언제 마지막 내 이름으로 마무리가 될런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제는 정말 예쁘고 우아하고 멋지고 아주 환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를 기대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 아침 이 거울 앞에 앉는다.
2014-09-01 가보지 않은 길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 유명한 노벨 수상자인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고 한다. 난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마냥 시간을 제멋대로 넘쳐 흘러가게만 하고 있는 것일까? 익숙하지 않은 낯설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편안하지 않다는 것 때문에, 아니 게으름 때문일 거다.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맞게 온갖 핑계로 덧칠하며 살다, 세월이 지나 이제는 더 이상의 거짓말도 통하지 않는 나이로 되돌아와 버렸다. 생각해보면 매일매일 맞이하는 아침의 날도 가보지 않은 새 길이지만, 그 오늘은 새롭고 불편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하루를 다시 시작하며 오늘은 더 잘하려 애써 보는 것이다. 하루가 잘 못 된다고 일 년 내내, 평생을 잘못되게 살지 않듯이 그냥 부딪혀서 가보는 것이고, 망설임보다는 작지만 따뜻한 자신을 향한 격려를, 용기를 주면서 가보고 싶다. 일상의 먹고 자고 또 생활해야 하는 기본인 숨 쉬는 것의 - 살아간다는 것을 해결하고 나면, 무언지는 모르는 그 헛헛한 목마름에 한 밤을 뒤척이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 왜 살고 있고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의 벽에 부딪혀, 뜻하지 않은 후회의 눈물도 자책과 함께. 그냥 이렇게 마냥 살아야 한다는 것에만 매달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스스로 이루어가고 지켜야 하는 그런 삶의 길이 꼭 있을 거라는 늦은 자각이다. 새로 맞이하는 오늘이 두렵지 않듯이, 그래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무서워 말고 가 보는 거다. 어쩌면 길을 잃고 헤매는 날이 오더라도 그냥 맨땅에 주저 앉아 울면서 후회하는 날이 있을지라도 가보는 것이다. 모르는 길을 걸어가다 보면 넘어져 무릎에 생채기가 날 때도 있고 엉뚱한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이것이 행운이 되어 또 다른 뜻밖의 길을 찾게 되고 또 다른 신비한 만남도 생기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잘 가든 길만 걸어가면서 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대로 습관처럼 살다가 가고 싶지 않다. 미처 가보지 않은 또 다른 길이 바로 내가 가야 하는 운명이 될지도 모르니까. 머뭇거리지 말고 씩씩하게 걸어가 보자. 그래도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흉내는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2014-08-01 희망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져 가는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한발자욱, 꿈을 위해 가고 있는 날들을 만나면서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이랍니다. 작은 것이지만 모아지고 합쳐져서 끝내 크게 될 거라는 그런 희망인 거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엄마의 책상 위 글귀는 스피노자의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오늘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였습니다. 남자 같은 필체로 커다랗게 매년 새로이 써여지는 그 글은, 너무도 뚜렷이 내 안에 박혀 있어 도저히 빼낼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꼭 해야만 하는 일에 매달리셨는지, 기억 속의 엄마는 노란 임신복의 한여름의 더위에서도 기다란 땀을 흘리며 책상 위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계셨거든요. 엄마로서의 삶보다 자신을 위한 희망이 너무도 강해, 부러져 버릴까 어린 마음에도 내내 두려웠던 엄마였는데, 지금은 바로 내가 불현듯 그런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 오랜 세월 책상 앞에 엎드려 글을 쓰든 엄마가 꿈을 이루어 아름다운 시인이 되고, 아직도 책상 앞 컴퓨터에서 희망을 잃지 말라는 글들을 저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저녁 때의 밥상을 기다리고 있든 저희들보다 더 소중했었느냐고 차마 물어보지도 못한 체입니다만, 어느새 저도 감히 희망을 아니 꿈을 품고서 그 사과나무를 심고자 빨간 태양의 치열한 뜨거움도 파란 한밤의 바늘같은 냉철함도 예리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세상 밖의 일에 서툴러 수 없는 실수와 부끄러움과 턱없이 모자라는 능력에 낯 뜨거워, 기둥 속의 기둥 뒤에 숨어서 그냥 있든 곳으로 되돌아가는 게 나을지 후회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희망은 밤의 나약한 나를 뻔뻔한 낮의 강함으로 숨겨주곤 합니다. 굳이 오지 않는 내일을 위해 무어 그리 기운 쏟고 있느냐는 철없던 시절의 저의 의문도, 이제는 스스로가 답을 찾을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의 마지막이 온다고 하더라도 비록 세월의 흉터가 움푹 파여진 땅일지라도, 희망을 심으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주어진 것들을 허비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하루가 쌓이고 모아져서 크게 사람다워질 거라고 믿을 겁니다. 김해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월간 한국수필 2009년 제178회 신인상 수상 Santa Clara county Art Fair에서 2년 대상과 장려상 수상 개인전 개최 2009년 "Butterfly - 나비 그 흔적들" - Aegis Gallery, Saratoga 현재 Aegis Gallery of Fine Art Gallery 회원으로 작품 활동 중
2014-07-01 나비와 나
삶의 양상을 둘러보면 참으로 신비스럽다. 용모는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심성 그리고 취미와 취향, 재능등 모두가 각각이다.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모습으로, 다양한 종류의 세계가 펼쳐져 흥미롭기 그지없다. 나의 경우는 유난히도 나비에 대한 사색이 오랜 세월 나를 지배해 왔다. 나비가 내 속에 자라고 있다고 믿을 만큼 나비에 대한 애착과 사랑 속에 있었다. 삶이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위로하며 내 마음에 약속하곤 했다. 언젠가는 내가 너희를 멋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세월이 지나고 이제는 내 안의 나비들이 더 이상은 작은 공간 안에 머물 수 없도록 다 자랐다고 나와야만 한다는 떠밀림에 휘둘려, 마음속 가득 들어 있든 좋아하는 나비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좋아하는 것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내버려 두었든 붓과 물감을 잡고서, 멋진 다른 세상을 꿈꾸면서 그려가기 시작하였다. 가끔 남들이 묻는다. 왜 나비만 계속해서 그리느냐고. 무슨 멋지고 기특하고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그 화려하고 멋진 날갯짓의 반짝임이 좋아서 - 그 좋다는 거 하나 그것, 전부인 것이다. 좋아한다는 그 느낌 하나로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에 조금은 다른 눈으로 보게 되면, 더 알고 싶고 더 만지고 싶고 더 가지고 싶고 더 이해하게 되면서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하찮은 것에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고서 눈빛을 주고 아껴주면, 바로 내가 좋아해 주는 그만큼 내게 응답해주고 보답해준다. 모든 세상은 내가 느끼는 그대로 그 크기만큼 내게로 오고, 또한 삶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보게 되면 더 잘 보이며 더 사랑하게 되어질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세상은 보다 더 넓어지고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지리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 준다. 작은 나비를 좋아하게 되면서 내 삶도 나비처럼 예쁘게 멋지게 날갯짓하며 더 넓게 세상을 향해 날아가리라 믿으면서, 세상의 작은 일에도 진심을 다하여서 바라보고 싶다.
2014-03-31 그녀는 우리의 눈을 열어주었다
소치의 불꽃이 꺼지는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시작된 정복의 야욕. 푸틴 , 강제로 얻은 올림픽 승리의 여세를 몰아 크림반도로 진군해 갔다. 이미 수순에 다 예정돼 있었던 일. 세 명의 전 현직 미 대통령을 포함, 서방세계의 지도자들 아직도 푸틴의 의도를 꿰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크림반도로 세계의 이목은 전가돼 버렸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소치올림픽 생각들, 정리하고 싶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쇼트 프로그램에서부터 그 녀에게 바로 못 미치는 지점에 소트니코바를 갖다 부치더니 마지막 날에는 훨씬 능가하는 점수를 과감하게 부여했다. 혹시 각본이 이미 짜여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왕좌를 차지하고자 좌우로 점 점 좁혀 들어오더니 마지막 순간 보이지않는 드로운 공격으로 결정타를 터뜨려버렸다? 최후의 순간에 희생양이 되어버린 김연아. 패배가 아닌 어쩔수 없는 숙명으로 알고 무대에서 내려선 그 녀. 금메달 보다 더 값진 환한 눈을 우리에게 주었다고 생각한다. 4 년 전 뱅쿠버 동계 올림픽, 70 억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도 원했던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했을 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체 비용 120 억 달러를 들여 멋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겠다고 선언했었다. 4 년이 지난 지금 전체 비용은 그가 약속했던 액수의 4 배에 달한 500 억 달러가 들었다고 뉴욕타임즈는 보도했었다. 몇 십 억달러를 초과한 것이 아니라 380 억 달러나 더 들었다니, 이해하기가 쉽지않다. 러시아의 고질적인 부정 부패? 푸틴의 어린시절 친구이자 , 절친한 유도대련 파트너*에게 무려 70 억 달러에 상당하는 건축공사 계약이 주어졌다고 한다. 막대한 이권이 재력가들에게 나누어 진 것을 엿볼수 있다. 스탈린 시절부터 독재자의 강압에 익숙해 있던 러시아 국민 들. 전체 인구 1 억 4 천만 중에서, 독재에 굴하지 않는 많은 시민들이 있겠지만 다수가 ' 해결사로 등극한 푸틴'이 러시아의 영화를 다시 이루어주기를 기대했었다. "비용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다. 승리만 안겨다오(?)"의 원칙이 제일 먼저 적용돠었던 국민 최대의 관심사, 아이스 하키 게임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을 때 러시아 국민 들은 크나큰 좌절감을 맛보았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었다. 그 들의 기대는 점차 분노와 실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피겨스케이팅, 마지막 남은 승부. 어떻게 하든지 이겨야만 했었다. 9 명의 저지들, 그 가운데 2 명은 분명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알다시피 한 명은 러시아 빙상연맹 총재의 부인, 다른 한 명은 지난 동계 올림픽에서 사전 부정행위로 처벌을 받은 인물로 다시 심사위원 자리에 복직시켯다. 왜 그 자리에 다시 올라선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세계 여론과 한국.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의 주도적인 아사드 독재정권 지원으로 십 만 이상의 사망자가 났지만 아무도 러시아에게 정면으로 돌던진 국가는 없다. 왜, 보복과 후일, 어디서 다시 마주칠지 모르는데. 한국? 자기들끼리 돌던지며 싸우는데. 큰소리 쳐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 그리고 전체 방영권을 따 독점중계 중인 미국 NBC 방송. 미국의 상업 방송, 그 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마니 마니 마니. 너무도 깊숙히 관여돼있기에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잘 알고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연아 하나. 그 녀를 능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채점 방법을 바꾸면 가능할 수도 있다. 예술적 우아함보다는 힘찬 파워에 근거한 세분화된 테크닉에 각기 월등한 점수를 부여하면 승산은 충분하다. 그러기에 이미 수 년 전부터 파워가 넘치는 두 명의 '철소녀'를 키워왔다. 원래 기대를 걸었던 15 살 소녀 리프니츠카야는 초장에는 그렇게 잘 나가더니 쇼트 프로그램에서 꽈당하고 자빠졌으니, 더 이상 재간을 부릴 수가 없다. 단 마지막 남은 한 명, 그 녀만, 제대로 스케이팅을 해준다면 승산은 있다. 연아 만큼 우아하지는 않지만 어리고 신선한 패기로 과감한 스케일로 밀고만 나가 준다면, 물론 쓰러지면 안되겠지만... 손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우리가 볼 때 그 녀는 연아의 상대는 아직 아니었다. 그러나, 그 녀는 과감했었고 자빠져 나가지도 않았었다.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마치 예전 드레스덴 철의 장막에서 늘 했듯이 그는 끈질기게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플랜 A가 아니면, 다시 플랜 B로 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500 억 달러를 뿌린 푸틴과 그의 추종자 들, 마지막 승리를 얻지 못할 때 무엇이 그 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연아의 희생으로 우리는 그 들 어둠세력의 참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연아, 너무 무거운 짐을 홀로 지게한 것, 참으로 미안하다. 허지만 덕택에 많은 것을 다시 배울 수가 있었다. "푸틴, 그의 눈 속에서 진심을 읽을수 있었다고"말했던 부쉬의 발언이 얼마나 어설픈 것인지 다시 깨달수 있었던 것, 연아 덕택이다! 김연아, 그 녀는 우리의 눈을 다시 환히 열어주었다. 그 열린 눈으로 크림반도를 쳐다보면, 푸틴의 결코 선하지 못한 그 의도가 확실히 더 선명하게 보여질 것이다. 이원창의 열린문 wonyi54@gmail.com
2012-06-29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후손에게 물려주자
매년 6월이 오면 가슴이 아리다. 6.25때 전사하여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는 내 삼촌 때문만은 아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수많은 호국영령들과 아직도 고통받고 있을 그 가족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또한 6.25의 잿더미 위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지구촌의 기적을 만들어 낸 대한민국에 대해 그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의 입장에 무조건 동조하는 종북세력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되었고 지금도 젊은이들이 이런 정신을 이어받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지켜가고 있다. 6.25전쟁 때에는 현역군인들뿐만 아니라 3만명에 달하는 소년병들도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 6.25전쟁을 통해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 18만명이 희생되었고 99만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했다. 2,573명의 소년병들도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산화하였다. 조국을 지키겠다는 선배들의 애국심은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하기 위해 3번에 걸친 북한군과의 전투(1999년 제1연평해전, 2002년 제2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에서 우리의 젊은 해군 장병들은 목숨을 바쳐 이를 지켜 내었다. 2010년에는 NLL을 경비하던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피격되어 46명의 용사들이 전사하기도 했고, 북한의 연평도에 대한 포격도발로 인해 해병대원 및 민간인들이 죽거나 부상(해병대 2명 전사, 16명 중경상, 민간인 2명 사망, 3명 중경상) 당하기도 했다. 적의 총탄이 팔을 관통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총을 놓지 않았던 한국 해군 장병, 적의 포격으로 헬멧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르고 전차를 돌려 대응 사격을 가했던 우리 해병대 장병들의 군인정신이 NLL과 서해를 지켜냈던 것이다. 북한은 6.25전쟁의 동족상잔도 모자라는지 6.25이후 지금까지도 국지도발, 테러, 사이버 공격 등을 감행함으로써 동족에 대한 죄는 물론 역사와 미래에 대한 죄를 짓고 있다. 한국을 적화통일 하겠다는 그들의 전략은 북한 정권이 수립된 이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오로지 적화전략에 몰두하여 모든 자원의 우선권을 군부에 할당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 군부는 틈만 나면 도발을 일삼음으로써 한국 국민들에 대해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군부에 대한 자원의 편중화로 인해 사회 인프라와 경제는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었고 수십만 명의 탈북자들이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떠돌고 있다. 이로써 북한 정권은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도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경제발전은 놀랍고도 경이롭다. 1961년 83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의 국민소득(GNI)은 2011년 22,489달러가 되었고,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10년 1조 145억달러를 달성함으로써 1조달러 클럽에도 가입하게 되었다. 2011년에는 무역 1조 800억달러를 기록함으로써 세계 9번째의 통상대국이 되기도 했다. 한국은 세계 45개국과 FTA를 체결함으로써 경제영토는 세계 3위가 되었고, 올해에는 세계에서 7번째로 20-50 클럽(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규모 5천만 명)에 진입하였다. 세계의 금융위기 속에서도 한국의 신용등급은 오히려 상승(A2→A1)하였으며 3천억불이 넘는 외환을 보유함으로써 세계 7위의 외환보유국가가 되었다. 이 모두가 선배세대들의 노력과 땀을 현재 세대들이 열매로 바꾸어 놓은 결과이다. 정치발전도 놀랍다. 개발독재를 끝내고 큰 혼란 없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87년 체제를 시작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2011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8.1을 기록함으로써 세계에서 22위를 차지하였다. 물론 개혁을 통해 더 발전시켜야 하지만 경제발전만큼이나 놀라운 진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목숨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한국 국민들의 호국정신,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지도자들과 국민들의 사명의식으로 인해 한국의 국가브랜드 지수는 15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국제질서에 순응해야만 했던 한국이 2010년 G20 정상회의와 2012년 서울핵안보정상회의를 주관함으로써 세계의 질서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로 바뀌어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것이 한국의 정체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에 동조하는 일부 종북세력이 있다. 이들은 북한이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고려연방제로의 통일을 앵무새처럼 따라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게 하고 있다.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외면한 채 철 지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한국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 뿐인 생명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했던 호국영령들은 이들이 하루빨리 건전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돌아와 국가의 더 큰 발전을 위해 헌신해 줄 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6.25전쟁 발발 62주년! 제2연평해전 발발 10주년! 이것은 잊고 싶은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들을 기억하는 그런 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분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세계속의 중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뀔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김열수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장)
2012-06-01 어려우신 이웃을 도우며 보람을 느낌니다
봉사회는 어려우신 이웃을 도우며 보람을 느낌니다. 직장을 잃게되어 살아가던 터전에 큰 변화가 생기거나 다른 어려운 일들을 당하여 소망을 잃으신 분들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드리는 일은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들어 사회복지서비스를 확대하면서 많은 혜택이 직접적으로 봉사회를 찾으시는 분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연히 그 액수를 합쳐보니, 생각지 못했던 금액으로 계산이 되어 제 자신도 스스로 놀랐습니다. 그것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봉사회의 직원들을 고무시키고, 격려할 것 같아서, 7월부터는 통계를 모아 보려고 합니다. 그저 몇 사람만 자료에 넣어 계산을 해 보았을 뿐인데 몇 만불을 훌쩍 넘기는 것을 보고, 제 마음이 설레여 왔습니다. 숫자라는 것이 내용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지 못했던 그 결과를 통해 적어도 그만큼의 가치는 봉사회를 통해 창출된다고 생각하니, 자못 자부심을 느낌니다. 일단은 그 숫자와 결과의 경중을 헤아려 봄으로써, 반대편 추의 기준 잣대를 튼실히 마련해 가는 기회로 삼으려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 한쪽 저울의 무게가 더해 갈수록, 그 다른 한쪽 추에는, 조심스러움과 경륜,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섬세함을 더해 가겠습니다. 그리고 정보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더욱 책임감 있는 기관으로 거듭 나려 합니다. 삶과 희망이라는 무게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인 만큼, 건너편 기준잣대도 이에 못지 않게 돕고자 하는 순전한 마음과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성하는 부지런함으로 균형을 잡아 가야 할 것입니다. 봉사회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을 돕는 과정과 도움을 통해서 재창출된 사람들의 삶과 희망입니다. 더도 덜도 말고 꼭 그렇게만, 서로를 돕고 희망을 만들며 살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사회, 다른 사람들의 감사할 거리를 세어보며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는 사회, 이런 사회가 봉사회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뜻과 열망을 모으도록 중심을 잘 잡아가는 노력과 어려운 한 분 한 분을 상황에 맞추어 돕는 노력을 기울여 가겠습니다. 보람이 큰 만큼 그에 따른 노력이 더 많아야 할 것입니다. 함께하여, 도와주시고, 격려해 주시며, 더 잘 할수 있도록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현아 관장 (실리콘벨리 한미봉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