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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4 여행 뒷이야기
꼭 가고 싶다는 바램과 어쩌면 무조건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절박함까지 더하면서 향한,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어렵게 떠나는 만큼의 간절함도 물론 함께했다. 언제나 집안을 맴도는 생활을 넘어서서 어쩌면 무언가 다른 정신적인 영감을 얻고 싶었다. 무섭도록 푸르른 바닷가 언덕 위 가파른 곳에 세워진 성들을 보면서, 오래된 장엄한 성당의 천장 벽화와 십자가를 향해 무릎 꿇고 미사를 올리면서, 동굴 속에서의 긴 세월에 무너져 있는 조각들을 보면서, 울었었고 쓰다듬었었고 이제서야 왔다며 미안하다고 말했었다. 뾰족한 성 탑 꼭대기 계단 위에서는, 갇혀있던 동화 속 왕자님이 그리웠고 다시 가슴 두근거리며 펄떡이는 싱싱한 사랑의 물결도 그리웠다. 어쩌면 예전의 생에서 한번은 지나갔을 것 같은, 익숙하면서 전혀 낯선 기억들이 떠오르며, 무엇인지 모르면서 솟는 그리움과 마음 끝 바닥에 숨어있는 외로움들이, 생소한 언어 속에서 몇 번을 만났다. 긴 여행에서 돌아오면, 난 또 늘 하던 대로 늦잠을 자며, 저녁 밥상 위의 반찬을 걱정하며, 또 운전 중에 끼어드는 이를 향해 소리를 지를 것이다. 산다는 것이 늘 이런 것이지만, 오랫동안 걸어 왔던 인생의 피곤함과 뿌듯함이, 삶이라는 이름으로 묻혀서 빛을 바라지만 나만은 안다. 여기까지라도 얼마나 애썼고 힘들었는지.
2017-04-05 짝사랑은 그리움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해마다 4월이 가까워지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괜히 나만 알기엔 아까운 듯, 일부러 달력에 나의 생일이라고 노란색 형광 칠을 해둔다. 일요일 늦은 오후 살풋 잠이 들었는데, 먼 곳에 있는 아들이 전화로 대뜸 어디에 있냐고부터 묻는다. 당연히 집이라고 했더니 바로 나와서 대문을 열어 보란다. 잠결에 문을 여니, 등 뒤로 환한 햇살을 받은 체, 한 아름 꽃을 안고 아주 이쁘고 밝은 미소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아들이 서 있었다. 한 달 동안 계획하여, 비행기를 타고 꽃을 주문하고 친구와 약속하며 준비했다고 한다. 갑자기 밀려오는 감사함과 어느 누가 이렇게 사랑받을까 싶은 커다란 기쁨에, 꽃다발을 안고서는 엉엉 울어 버렸다. 언제나 가슴 저린 엄마의 짝사랑과 그리움으로 내 안의 한구석에선 늘 외로웠는데,,, 난 그날 내 사랑이 단지 한쪽의 사랑만이 아님도 알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4월은 오고 있지만, 올해는 나 혼자서 여행 계획을 이미 해놓은 상태이다. 나는 그날 나를 낳아 잘 길러주신 부모님과 묵묵히 인생이라는 길을 함께 절대의 동반자가 되어준 남편, 그리고 무한의 사랑을 배우게 해주는 아들에게 감사의 촛불을 켤 것이다. 멀리서 홀로, 그러나 가까이서 함께…
2017-03-03 여행에의 손짓
특별히 부족함이 없는 삶을 나름대로 영위하고 있다. 더하여,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는 목적마저 채워가고 있는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뭔지 모르는 허전함에 젖을 때가 있다. 그것은 여행에의 손짓임을. 마음에 맞는 동반자와 함께 먼 길을 떠나고 싶지 않으냐는 여행에의 손짓이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런저런 약속을 앞두고 늘 불안해하고 초조하기까지 한 나의 성격, 이 성격으로 인한 내 스스로의 손짓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림과 글, 그 재능의 한계에 도달할 수 있는, 아니, 그 이상으로 표현하고 싶은 열정과 열망도 손짓 안에 포함되어 있다. 아니다, 이 모든 중심에 바로 이것이 자리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껍질을 깨지도 못한 체, 다만 얇은 나비의 날개를 달고서 넓은 세상을 날겠다는 말만 되풀이되는 스스로의 다짐만으로는 부족했다. 이 다짐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여행에의 손짓에 따라가야 한다. 이럴 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잠시라도 먼 곳으로 여행하고 싶은 것이다. 손짓을 따라 움직이고 나면 한 단계 올라선 삶의 울림을 안고 돌아오게 된다. 그것을 충전이라고 이름해도 좋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전이 되어지고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으니까,,,,
2017-02-03 내가 원하는 것은,,,,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라고 말하였다. 이런 책을 읽고 있으면 과거의 난 무엇이었으며 또 어떻게 살았는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사춘기의 심각한 반항도, 삶에 대한 고뇌도, 앞날을 위한 심각한 열정도 없이, 마냥 책상 앞에 앉아 입시를 위한 지독한 외우기에 전념했었던 거 같다. 점점 하나씩 세월을 먹으면서, 무엇인지도 모르는체 한 움큼씩 쥐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으며 편안해지고 싶어진다. 진정한 내가 아닐 지인데도, 세상을 살아가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할 때가 분명 있다. 과연 정말 내가 원하고 내 안에서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분명히 읽어보았던 책인데도, 전혀 새로운 것으로 내 앞에 놓여 있다. 거의 100년 전의 "데미안"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체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떤 교육으로 세상을 배웠길래, 이리도 깊고 신중하고 삶에 대해 진심으로, 정면으로 부딪치며 고민하고 살았는지, 나 자신의 우둔함과 가벼움이 부끄럽다. 물론 각자가 살아가는 방법은 다 다르다. 하지만 내면의 진정한 소리를 지나쳐 버리지 말고 귀 기울여 들으라고 한다. 혼란 속에서 들리는 생각의 소리가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헤르만 헤세 자신도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위해서 살지 못했기에 분명 그렇게 썼을 것이다. 아는 만큼 느끼며 살아간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깊이는 얼마만큼이며 진정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무엇이며, 또 난 무엇으로 오늘 지금을 살고있는 것일까? 몇십 년 만에 다시 읽은 데미안에서 다시금 성장통을 겪는다. 그리고 이 성장통에 새삼 감사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는 나를 본다.
2017-01-02 물결 따라
세상 모든 것은 알지 못하는 커다란 물결 따라 흘러간다. 바로 어제까지 멋진 겨울 외투 사러 가고, 맛있는 거 먹고, 신나게 산다는 것을 만끽하며 또 새해에 시작할 큰 욕심 품으면서 의기양양 잠자리에 들었었다. 그러나 일어난 다음 날 차가운 아침은, 나 스스로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로, 온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무서움과 공포가 밀려오고 한순간 깨달았다. 너무 자만했었다는 것을. 폭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말과 소의 이야기가 있다. "우생마사(牛生馬死)" 헤엄을 잘 친다는 말은 물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한 물살을 헤치며 거슬러 올라가다 지쳐 결국 물에 빠져 죽지만, 전혀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소는 거센 물살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레 그 흐름에 맡겨 마지막에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해를 맞으면 모두가 또 다른 약속을 스스로에게 한다. 뭔가를 해보자면서 다시 자신을 무장하고 통제하며, 늘 하는 편안함과 느긋함을 깨면서 마치 어제와 오늘은 별로 좋지 않았다는 듯이, 알 수 없는 내일을 위해 서두른다. 몸의 중심인 허리가 단 한 순간에 움직일 수가 없게 되며, 모든 일상의 간단한 일들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배웠다. 오늘은 오늘뿐이며 무작정 앞만 생각하고 살지 말며, 쉬어가며 하라는 오늘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몇 주를 침대에서만 푹 쉬며 아무런 생각 없이 있다. 열심히 걸어 왔으니 이제는 조금 내려놓고 쉬었다가 가라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 매운 라면도 끓여 먹고 설거지도 내버려 둔 체, 너무도 달달한 사랑 이야기인 연속극 봐가면서, 게으름으로 있으련다. 커다란 파도가 치면, 세상일들 물결 따라 흐르며 살으란다.
2016-12-01 사랑 그리고 예술
진정한 예술 작품은, 긴 시간의 힘든 인내와 삶의 고뇌가 더불어 외로운 창작의 고통에서 나오는 거라 한다. 그리고 그런 작업 속에서 깨어있는 예술가는 늘 춥고 배고프며 외롭다고들 한다. 결혼 후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친구분들에게 늘 그러셨다. "우리 딸은 사랑에 빠져서 예술을 못해요." 하시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닌 세상의 남다른 삶을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셨나 보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말씀하시는 춥고 외로운 예술가를 경애하고 두려워하며 또한 더 멀리 있으려 했었다. 이제 어느덧, 두려워하며 서성이고 있던 그 예술의 문 앞에서 간신히 고리를 잡고, 문턱을 넘어서려 애쓰고 있다. 가끔은 잠 못 이루는 밤도 있어, 눈 밑의 거뭇한 주름 길게 달고서 온 머리를 다 흔들고, 무엇 하나라도 써보려 하얗게 새벽을 보기도 한다. 감히 어찌 예술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 있을까마는, 내게 있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은 작은 기도이며 구원이다. 무엇을 원하고 또 해달라는 소원의 간절함이 아니라 감사의 감사로서 올리고 싶은 무조건적인 겸손함이다. 꼭 그런 힘든 고통 속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조금은 덜 춥고 덜 배가 고프며 덜 외로운 지금의, 넘치는 감사 안에서 만들어가는 나름의 작업들을 난 사랑이라고 하고 싶다. 남은 딱 하나의 간절한 소망은 - 한참을 모자라는 인내이더라도, 높은 삶의 고뇌 속에 있지 않더라도, 간절한 사랑을 넘치게 받아 외롭지 않더라도 ? 꺼지지 않는 창작의 열정 안에서 진정한 예술작품을 단 하나라도 남기는 것이다.
2016-11-03 모딜리아니 전시회를 보고서
기다리고 꼭 해야만 했던 숙제 같았던 만남이었다. 가을 끝자락의 이른 아침, 텅 빈 전시장 안은 쓸쓸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거처럼 뿌연 안갯속에 유독 그림들만 살아서 다가오고 있었다. 기다란 목을 비스듬히 기울인 체 온몸을 다 드러낸 여인의 그림은, 어릴 적 현관 앞 신발장 위에 아주 오래오래 세워져 있었다. 누구의 그림이었는지 알기도 전, 하루에 몇 번씩 신발을 벗고 신으면서 마주쳤던 그 그림은 내 망막과 심장 위에 문신처럼 새겨져 버렸었다. 철들어 그림 공부를 시작하며 모으기 시작한 화집 속에서 모딜리아니라는 이름을 알았지만, 나의 그림 속엔 언제나 아무도 몰래 숨어 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간 만나지듯, 긴 시간을 보낸 후에 비로소 마주한 그의 진짜 작품 앞에서, 난 한동안 숨을 멈추며 서 있었다. 이렇게 이 순간 이런 설레는 뜨거움이, 바로 새로운 그림 공부의 되새김질이라는 의미를 알게 될 줄이야. 그는 너무도 가난하여 캔버스의 뒷면까지도 아껴가며 그려야 했었고, 빵을 사기 위해 조각을 포기하고 잘 팔리는 초상화들만 그려야 했었다. 그러나 그가 표현했던 모든 인물은 고개를 살짝 기울인 기다란 얼굴의 불균형한 모순 속에 있지만, 오히려 더 가슴 속 깊은 곳을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먹먹한 아름다움이었으며, 그림 속 여인의 텅 빈 동공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공감의 아픔이었었다. 만남의 끝은 다시 헤어지는 것이지만, 항상 내가 그려가는 그림의 색깔 위에서, 나비의 날개 위에서 언제나 살아서 흔적을 남겨 놓을 것이다. 그의 불행했던 36년의 짧은 생이였지만 무한한 예술의 생에서는 영원히 살아 행복해 할 것이다.
2016-10-05 여름은 떠났고
올여름의 낮은 유난스레 뜨거웠고 또 해가 진 후의 밤은 묘한 차가움에 오돌오돌 추웠었다. 그 변덕 부리던 계절이, 천천히 보이지 않게 떠나며 시간의 다리를 건넜다. 어젯밤, 누군가가 하늘의 보름달을 꼭 대문을 열고서 보라고 했다. 새삼 문밖으로 나와 본 달은 환하게 더 가까이에 떠 있었으며, 그 달빛 탓인지 대나무들은 그림자와 더하여 훌쩍 더 길어진 모습으로, 얕은 바람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모르는 척해도 나무들은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고 있었고, 어느새 잠결에 따라 나와 유난히 비벼대며 사랑을 원하는 고양이도 벌써 다 자라 버렸고, 나도 그사이 조금씩 알게 모르게 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내가 주제가 아닐 진데도, 어리석게 그냥 모른 척 해버리면 변하지 않은 체 있어 줄줄 알았었나 보다. 변하지 않고 고여 있는 건 썩는 것이라는데 그래도 달라져 떠난다는 건 아프다. 거울 속 나이 들어가는 나의 모습도, 곁에 마냥 있을 것 같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이별도,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시간의 무서움도, 되돌리지 못하는 많은 해야 하는 일들도. 그런 무심함에 억지로 갇혀있는 나에게, 어릴 때 고향으로 성묘 가던 이야기와 보름달을 보라든 작은 글귀 하나가 후두둑 내리는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적셔왔다. 어쩌면 이제는 그 무심함의 게으름도 충분하고 미적거리는 겸손도 그만하고서, 마음 창고 건너편 속에 자물쇠 걸어뒀든 또 다른 욕심과 용기를 꺼내야만 할 거 같다. 그렇지, 또 다른 여름은 다시 올 것이며, 늘어져 있는 허리춤 추겨 올리면서, 산다는 것의 남아있는 몫의 판, 신명 나게 즐기며 해보련다.
2016-09-02 술 한잔
술이 주는 작은 여유에 온종일 꽉 쥐고 있던 하루가 노곤해지면서 힘이 풀린다. 아주 옛날 - 저녁 해 질 무렵,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모두가 하고 있던 일들을 멈추던 때가 있었다. 그 시간이면 뒷마당 돌 불상들이 나란히 서 있는 연못 앞에서 엄마가 맥주를 드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 윗층의 병원에서 일하시다 마당에서 놀고 있던 나를 부르시고서는 "엄마, 맥주 하나 가져다 드려라"고 하며 웃으시던 아버지의 모습도 생각난다. 새삼 맥주를 권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던, 또 해 질 녘의 모과나무 아래 그늘 밑에서 위를 바라보며 눈을 맞추던 두 분의 보이지 않턴 애틋한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 온다. 그땐 왜 그리도 몰랐었는지,,, 하루가 끝나가는 고단한 시간에 아버지는 엄마가 그리웠었고, 또 그 작은 맥주 한잔이 오늘도 수고하였다는 고마움의 표시였던 것 같다. 이 사랑을 이제서야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어느덧 나도 그 시절의 어른 나이가 되어 세월을 많이 묻혀간다. 가끔 해가 산을 넘어가며 모두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서두르는 시간이 되면, 그때의 어린 내가, 차가운 맥주 한잔을 들고서 엄마 흉내를 내곤 한다. 이제는 흘러나오는 애국가도 없고 그 연못도 불상도 모과나무도 없으며 물론 엄마, 아버지도 계시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가면 그 자국만큼 잃어버리는 많은 허전함 때문에, 우린 추억이라 부르면서 또 채워가고 있는가 보다. 모두가 각각 길 위에서 인생이라 하며 걸어가고 있지만, 이런 따뜻한 꺼지지 않는 기억들이 고마움으로 또 축복으로 내게 내려온다. 가끔은 지쳐서 손끝조차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고, 또 온통 짜증에 넘쳐 아무에게라도 함부로 하는 날들이 있다. 그런 날이면, 그 무례함과 오만함과 또 감사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에 용서를 빌면서, 두손으로 힘주어 움켜진 체 살고있는 오늘이라는 이름 앞에서 잠시나마 흐트러지고 싶다. 커다란 반항보다 술 한잔의 비틀림으로 - 조금은 미안해하면서 - 풋내나던 예전의 실수들도 다시 기억하면서, 후회보다는 차라리 작은 여유를 찾으련다.
2016-08-01 친구
친구라는 말만 들어도 왠지 힘이 나고 편안하다. 무엇이 무엇 때문에 무엇으로, 우리는 이런 단어로서 불려지고 또 애뜻해 하며 유독 힘든 날엔 더 생각이 나는 것일까? 어릴 적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 집의 우리 셋은, 같은 학교와 동네 그리고 똑같은 나이로, 항상 함께 언제나 있었다. 늘 잘 넘어져서 온통 무릎에 상처투성이의 나는, 가운데 친구의 병원 집에서 빨간 약으로 치료받고, 맨 끝의 친구 - 식당 집에서 맛있는 장조림 밥상을 받곤 했었다. 무슨 대화를 했었는지 어떻게 놀았는지의 기억들은 가물거리지만, 한없이 편안했고 욕심내며 싸운 적이 없었다는 생각은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헤어졌고, 세월의 시간 안에서 각자의 인생길을 따라 숨 가쁘게 살아오다, 문득 어느 날 우리 셋은 만났었다. 어릴 적 고향 바닷가의 커다란 소나무 앞에서 그냥 얼굴만 바라보며 아무 말없이 서 있다, 떠나야 하는 차 시간이 된 가운데 집 친구는 그렇게 가버렸고, 남겨진 우리 둘은 또 그렇게 헤어졌다. 너무도 다른 서로의 삶으로, 가운데 집의 친구는 아기도 없이 오로지 남을 위해 희생하며 종교적으로 살고 있고, 끝의 집 친구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혼자 모든 것을 정리해가며 열심히 살고 있으며, 나 또한 이 먼 곳에서 떠나왔던 곳을 그리워하며 이렇게 살고 있다. 과연 운명은 있는 것일까? 스스로가 짊어지고서 가야 하는 등 뒤의 십자가는 정말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시간에 휩쓸려 살아지는 것일까? 가끔 우리 셋은 뜬금없는 글들을 보내면서 각각 스스로를 위로하며 또 만나고 싶어 한다. 아무런 할 말도 없고 또 함께 공유해야 하는 공통점도 없으면서, 언제나 마음속의 친구라는 단어의 처음에는 그들이 제일 먼저 순순히 앞자리를 잡는다. 점점 예전의 기억들이 더없이 떠오르는 만큼, 그런 아무것에도 원하던 거 없던 순수함이 그립다. 뭐라도 주고 싶은 아니 내 마음속의 기도라도 그들을 위해 더 올리고 싶은 간절함이다. 한밤의 조용한 시간에 돌아앉아 우두커니 벽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그린다. 큰 세상의 반짝이는 화려한 별보다 작고 좁은 나의 하늘 위의 수수한 별처럼, 외로운 날이면 존재의 따뜻함만으로도 작은 위로가 되어주는 그들을 위한, 무릎 꿇은 욕심 없는 기도를 올린다. 오늘도 친구라는 편안한 이름의 누군가에게.
2016-07-03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며칠을 같은 그림을 들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앉아만 있다가는, 일어나 부엌으로 가 물 한 잔을 들고서 창밖을 바라본다. 생활이라는 공간과 예술이라는 두 가지의 커다란 작업을 한꺼번에 매일같이 나란히 바라보면서 기막힌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갑자기 그리고 싶다는 충동이 언제나 항상 오지를 않는다. 그렇지만 마음과 손은 하자고 그래도 해보자면서 나를 이끈다. 수천수만 가지의 온갖 색색의 나비들이 세상을 날아다니면서 강하면서도 어지럽게 유혹한다. 이렇게도 화려한데 나를 모른 척할 거냐고도 하고, 나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도 하면서, 저녁 밥상의 반찬 걱정하고 있는 나에게 날갯짓한다. 이 귀한 나비들을 어떻게 붙들어서 어떤 마음으로 곁에다 두고 간직하고 있는 것들인데 싶어, 더없이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그림 앞으로 앉는다. 순간의 붓 자국만으로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더 간결하게 양쪽의 줄을 서로 팽팽하게 더 잘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예술이라는 가장자리를 아직도 헤매고 있는 천재가 아닌 난 수없이 절망한다. 어쩌면 다 모른 척하며 그냥 나비들만 붙들고서 그리면 엄청난 작품이 나올 것이며, 난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있을까 하며 상상도 해본다. 그렇지만 해질 무렵의 부엌에서의 난, 언제나처럼 콩나물을 씻고 생선에 소금을 뿌리고 간을 맞추며, 이 테두리 안 동그라미 안에서의 일상을 꾸려간다. 무엇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면서 왜 하는 것일까,,,, “아무런 것에도 매달리고 싶지 않아, 그냥 좋아서 사랑해서 하는 것이다. “ 하면서 구속 아닌 더 질긴 구속을 감사해 하면서, 아직도 끝내지 못한 나비의 그림 앞에서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반쯤 비어있는 캔버스 앞에서의 그림 그리는 과정을 느긋한 게으름으로 즐기고 있다.
2016-06-02 글에서 삶을 배우다
글을 읽으면 그 안에서 인생을 배우게 되며, 그 배운 걸 알고 깨달으면서, 그로 인해 얻고 느끼는 그만큼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책을 처음 받고서는 그 제목이 주는 감동에 조금 흥분했었다. 늘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살아가는 이 삶은, 시작도 끝도 모두 단 한번의 연습도 없으며 또한 정답도 없이 가고 있다. 그렇지만 글에서 배우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책 속의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깨달으며 삶의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인생을 우리는 훈련도 없이 또한 연습도 없이 하려니, 힘들고 실수도 하며 가끔은 엉망진창으로 되기도 하며 살아간다. 이 책 속의 첫 이야기에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 선생님"의 말씀이 시작된다. '사람이 어떻게 죽을 것이냐 하는 문제는 곧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문제와 같다.' 어려운 기다란 어떤 설명보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이렇게 하나의 문장으로 던져줄 수 있다니, 새삼 책을 들고 구석진 자리를 찾던 어릴 적부터의 버릇에 감사할 뿐이다. 책도 사람도 물건도 - 세상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인연이 있다. 좋은 소중한 만남을 인연으로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과 정성과 진실이 필요하듯이, 좋은 책 속의 글들을 찾아 마음으로 읽으며 느끼다 어느 한순간, 내 삶에 꼭 필요한 구절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어떤 어느 한 줄의 문장이 내 인생을 바꾸게 되며 또 세상을 바꾸게 되는 그런 기막힌 인연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여전히 책을 든채 아직도 서성이고 있고 또 그런 운명적인 글을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그나마 지금의 이 자리만큼이라도 서 있을 수 있는 건, 글에서 삶을 배우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2016-05-02 나답게 산다는 것
나처럼 - 나답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 것인지, 또 다른 생일이 곧 오게 되었지만 그나마 이제서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스럽다. 매일매일 어느 한 가지라도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는 일이 없다. 문득 새벽잠에서 깨어 더 잠들까 아니면 일어나 뒷마당에라도 나갈까 하는 것부터, 뭘 먹을까, 무슨 옷을 입을까, 누굴 만나러 나갈까,,, 모든 것이다 스스로가 결정하고 또 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인 것이다. 이런 자잘한 일들이 모여지고 쌓여서 어느덧 습관으로 만들어지고, 그런 습관들이 모여져서 나답다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세상의 소문과 이야기들에 신경 쓰지 않으려, 그냥 모르는 척 듣지도 않은 척하며 살려 한다. 터무니없이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으며 그냥 하고픈 거 하면서, 내가 결정하고 만드는 새로운 길을 열심히 배우며 살기를 원한다. 그것을 만들어가고 이루어가는 건 오직 나 자신일 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머리 쓰다듬어주며 겸손해하라고 일러준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다 문득 글이 쓰고 싶다는 욕망에 많은 노력을 이 일에 온통 쏟은 채 있지만, 혼자 몰래 행복해한다. 새로운 힘든 길이지만 문득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꿈꾸며 바라던 거였다던 걸 알고서는, 어쩌면 난 지금 내가 원하던 사람으로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고 나를 믿으며, 내가 만들어가는 나처럼 산다는 구속을 기꺼이 받으며,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던 사람이 되도록 애쓰면서 이 환하고 눈부신 봄날에 그렇게 나답게 살고 싶다.
2016-04-04 사랑합니다
3월의 첫 봄비 오는 날, 엄마의 몸은 땅에 묻고, 마음은 내 왼쪽 가슴 한 켠에 묻고서는 , 긴 비행시간을 지나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유난히 아들을 좋아하던 엄마의 불평등에 어릴 적부터 늘 심술이었고, 꼭 언젠가는 왜 그랬느냐고 물어볼거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늘 칭찬받고 싶은 목마름에 더 열심히 더 애쓰며 살아왔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한 수 위인 엄마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오롯이 나와 함께 내 손잡고 떠나시면서 정확히 알으켜 주셨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있는 거는 바로 너란다 내 딸아" 언제쯤이면 나는, 엄마처럼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헛껍데기 허물을 벗고서 화려하고 멋진 나비의 새롭고 자유로운 날갯짓으로, 훨훨 더 높이 더 멀리 더 힘껏 날아보련다. 사랑합니다.
2016-03-04 병원 복도에서의 단상
병상의 엄마가 통증에 시달리시다가 간신히 잠드신 것을 보고 병실을 나왔다. 끝이 없을 것 같이 길고도 긴 복도는 한밤중의 정막에 깔려 있었다. 슬픔에 눌린 체 버티어 오든 나의 아픔도, 이 고요 속에서 길고 긴 호흡과 함께 눈물이 되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비릿한 회색빛 한 병실 앞에서, 간호사에게 자판기 커피를 건네주는 환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팔에는 긴 창만한 주사기를 꽃은 체, 한겨울인데도 발가락이 훤히 드러난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러나 구겨진 환자복에 연세도 꽤나 들어 보이는 남자의 얼굴에 퍼진 미소는 그 많은 주름을 다 덮고 있었다. 아름다운 젊은 간호사에게 커피를 건네는 모습은 그렇게 꽃과 같이 복도에 피어올랐다. 그와 함께 그 커피에 사랑의 묘약이라도 담긴 듯 목마른 내 가슴도 커피를 마시고 싶어졌다. 그리고 아파하는 엄마를 껴안으며, 주름진 목 뒤에서 고백하는 핏줄의 절절한 사랑이, 커피에 담겨 내 가슴으로 흘러들어 오는 듯했다. 복도 위에서 펼쳐진 커피 한잔의 단상은, 이렇게, 아무리 고통받고 슬퍼도 - 시간과 무관하게 지나는 이 밤, 눅눅한 병동에서 잠시 한숨 돌린 순간이었다.
2016-03-04 다시 날아 오르는 독수리
"Hi ! How are you?" "Fine" 스스로 먼저 묻고 혼자 대답해 버린 그의 인사 법이다. 아, 이 얼마나 고맙고 눈물겨운 인사이던가! 사경을 헤매던 그가 무려 7시간 40분의 수술을 마치고 처음 건낸 말이다. 차마 어떠냐고 묻지도 못하는 마음을 미리 헤아려서 일까? 거듭 '괜찮다'고 하는 그의 말을 믿지 못하는 표정을 읽었던지 그는 재빨리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기까지 한다. 마취가 아직 덜 깬 듯 괴로워 하면서도 밝게 웃는 노력이 애처로워 가슴이 시리다. 그 긴 수술시간 동안 미지의 또 다른 세상이라도 보고 온 것일까? "바쁜데 와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덧붙이며 악수까지 청하는 그의 장난스런 모습은 평안이 넘쳐 보인다. 도대체 어떤 힘이 그를 이토록 담대하게 하는지, 그를 바라보는 우리는 기쁨과 놀라움으로 어리둥절할 뿐이다. 몇 개 월전까지만 해도 그는 남들처럼 그저 성실하고 착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어느 날 기회가 닿아 한국을 방문했다가 종합건강진단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돼 하루아침에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인생이 될 줄이야… 그토록 건강하던 사람이 위암에다 간암말기까지 겹쳤고 대장에까지 암세포가 침투하고 있었다니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서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했던 가족들은 눈물을 흘릴 시간조차 없었다. 통계적으로 3% 정도 밖에 가능성이 없다는 생명의 끈을 부여잡고, 오늘 그는 위와 간을 도려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을 마친 그가 불안과 초조로 발을 구르던 가족들에게 미소까지 지으며 격려하는 모습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과연 무엇일까? 죽음의 문턱을 넘어 다시 돌아온 그의 얼굴에 넘쳐나는 저 평안함이란. 회복 실로 옮겨가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하늘의 왕이라 일컫는 독수리를 생각했다. 40년이란 세월을 산 뒤에는 다시 높고 높은 바위산에 올라 혼자만의 피나는 고행을 이겨내야만 하는 독수리의 일생이 그의 모습 속에 투영되어 온다. 구부러진 부리와 쓸모 없는 닳아버린 발톱, 그리고 더 이상 하늘을 날지 못하게 하는 무거운 깃털. 독수리는 이제 선택해야만 했다. 남아 있는 시간을 그대로 포기하며 죽어가던지, 아니면 높고 높은 바위산에 올라 자신의 몸을 처절하게 부서트려서라도 새롭게 태어나 또 다른 40년을 맞이하든지. 그러나 독수리는 150여일 동안 스스로 피를 흘려가며 자신의 부리를 쪼아 깨트리고 발톱을 짓이기며 깃털을 잡아 뽑아야만 하는 아픔을 겪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외롭고 힘든 자신과의 처절함에서 마침내 독수리는 매끈한 새 부리와 튼튼한 발톱, 구름처럼 가벼운 깃털을 가진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힘차게 푸른 창공을 날아 오르게 되는 것이다. 휘어진 부리와 뽑혀진 발톱, 떨어져 나간 독수리의 날개처럼 느닷없이 반 토막으로 절단 난 형부의 장기들! 그러나 결국 고통을 이겨내고 거듭 태어나 저 높은 창공을 향해 돌진하는 독수리처럼 형부는 그렇게 다시 비상할 것을 나는 믿는다. 형부의 내면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빛나는 비전을 품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롭게 변화된 독수리가 하늘로 날아 오르기까지 먹이를 물어 다 준 친구 독수리가 있었던 것처럼 형부 곁에는 그를 지독히도 사랑하는 내 언니가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힘겨운 날개 짓 없이도 오직 바람을 따라서 넓고 높은 하늘을 유유히 누비는 독수리처럼 그도 또한 사랑의 기류를 타고 멋지고 힘차게 지구를 날아 오를 것이다.
2016-02-03 멋 부리는 것
멋을 낸다는 것은 똑같은 인생을 조금은 더 행복하게 사는 거라 생각한다. 가끔 우울해지며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옷장 속에서 제일 예쁜 옷을 꺼내입고 아주 멋지게 하며 혼자 집을 나선다. 오직 나만을 위해 제일 이쁘게 가장 환한 얼굴로 웃으면서,,, 옷 하나 바꾸어 입고 입술에 색깔 하나 더 넣었지만, 사느라고 가끔은 힘들어 지친 일상의 나를 위하여주고 싶다. 그냥 누구의 작품이 걸렸는지 굳이 알 필요도 없이 미술관에 들러 원 없이 그림 구경도 하고, 텅 빈 느지막한 오후의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놓고 저 건너 멋진 금발의 젊은 청년 모습도 흘낏거리며 웃어도 보고, 온종일 다른 걱정 않고서 너웃이 해 넘어가는 시간 - 돌아오다 교통체증에 걸려 우연히 찾아낸 CD의 지나간 유행가도 소리소리 내어 따라 부르며, 어느덧 깜깜해진 밤중에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옷 벗으며 혼자 비싯거리며 웃는다. 도로 행복해졌다는 것이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멋 부리는 이런 작은 일탈의 순간들이, 갇혀 있던 생각들을 바깥으로 내놓으며, 더 넓은 더 깊은 또 다른 길을 만들어 더 행복해지려는 노력인 것이다. 예쁜 겉의 멋과 더불어 깊은 예술의 멋이 함께하면, 같은 인생의 길 위에서라도 어쩌면 조금은 더 행복해지리라 믿으면서, 마음껏 한층 더 멋 부리며 진하게 살고 싶다.
2016-02-03 네비와 떠난 겨울여행
금요일 오후 하이웨이 4번을 타고 무조건 동쪽으로 향했다. 초행길이라 심히 불안했지만 충성스런 나의 안내자 네비게이션을 굳게 믿고 마음 편히 여행길에 올랐다. 4번 끝에서 북쪽의 89번 도로를 타다가 88번의 서쪽을 지나 49번 남쪽으로 대장정의 여행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오래 전부터 하늘과 맞닿았다는 호프벨리와 그 곳에 있는 숲속의 작은 카페 'Sorenson's Resort'의 향 짙은 커피가 목마르게 그리웠고 길가에 피어 있을 키큰 엉겅퀴와 세이지 국화도 못 견디게 보고 싶었다. 또 하늘을 닮은 호수에서 무지개 송어를 낚아 올리는 그림 같은 낚시꾼의 모습과 9,800피트 높이에서 볼 수 있을 하얀 눈을 상상하며 나는 길을 떠나고 있었다. 얼마 후 도심을 벗어나자 우거진 갈대 숲이 나타났고 일차선 도로로 좁아진 시골길로 들어섰다. 황금 등선 아래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블랙 엥거스와 양 무리가 눈에 보였다. 저 멀리 넓은 들녘 작은 집 어딘가에는 빨갛게 익은 감을 따고 있을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듯 불현듯이 고향집이 그리워졌다. 한 떼의 우랑탕 오토바이 광들이 줄지어 요란하게 지나간 후 다시 평온이 이어졌다. 이쯤에 다소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나는 긴장을 풀고 음악을 바꿔가며 챙겨간 구운 오징어랑 과자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눈과 귀가 즐거워 마음이 행복해지니 운전하면서 먹는 먹거리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혼자 떠나는 이 자유로움을 왜 망설였던고 살짝 후회하면서 엔젤스캠프를 향해 엑셀을 힘주어 밟았다. 앞 뒤 차량이 거의 없는 시골 길은 내 마음만큼이나 홀가분했다. 무심코 방금 달려 왔던 길을 백밀러를 통해 뒤돌아 봤다. S자로 구부러진 길을 기특하게도 잘 달려왔다는 생각에 형용할 수 없는 애잔함과 기쁨이 일었다. 지금껏 달려 온 길은 내가 앞으로 나아 가야 하는 어떤 길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낀 것이다. '그래, 너는 지금까지 아주 잘 했어. 최선을 다해 살아왔잖아. 하하하..' 만족한 웃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느닷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왼쪽 운전석 유리 위에 부착한 네비게이션이 발 아래로 툭 떨어진 것이다. 당황하다 못해 황당해진 나는 꺼져버린 네비게이션을 만지작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길 찾는 것에 유난히 어리벙벙한 내가 기계를 만진다는 것은 몇 배로 더 어려운 일인 것이다. 이제 곧 날이 어두워질 것이고 인적도 없는 이 산속에서 나는 어찌해야 할지 두렵고 무서워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기분만 가지고 훌쩍 떠나온 여행을 후회했고 진작에 스마트폰으로 바꾸지 않은 게으름을 한탄했다. 당연히 갖추어져 있어야 할 지도 한 장 없는 무지함과 당장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라고 물어 볼 사람조차 없는 것도 너무나 서글펐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무능력한 나의 삶 뒤에는 알지 못하던 끝없는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또한 인생의 덧 없음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거야' 사람의 마음은 백지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조금전의 의기충천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길 잃어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떨고 있는 주눅 들린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 갓 길에 자동차를 세우고 그렇게 한참 동안 처절한 통회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경찰차 한 대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비에 젖은 사람처럼 쫄아 있는 내 몰골을 보고 그는 친절하게 문제점을 물어왔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네비가 떨어지면서 빠진 연결고리 안의 작은 부속품을 찾아 내었다. 황소처럼 커다란 몸집을 내 자동차에 구겨 넣고 마침내 부속을 찾았다며 어린애처럼 환호성을 지르던 경찰아저씨는 고마워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나를 뒤로 하고 유유히 사라져갔다. 그는 변장하고 찾아온 천사임이 분명했다. 앞 뒤사람의 그림자도 없는 산 중턱 갈림길에서 방황 하고 있는 나를 찾아낼리 전혀 없는 것이다. 사라져간 그의 뒷 모습을 오래도록 아쉬워하며 나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자동차 페달을 힘껏 밟았다. "부~~웅" 불타는 저녁 노을에 이마에서 흘러 내리던 그의 땀방울이 합쳐져 영롱한 아침이슬이 되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2016-01-06 님을 향한 나의 시선
2016년 새로운 해가 열렸습니다. 지난 한 해 지구촌에는 많은 재해와 테러로 인한 피해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제발 또 다른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시작하는 올 해부터는 세계 곳곳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 안전과 평화가 넘쳐나기를 소원하는 바입니다. 얼마 전 내가 뜻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갑자기 기분 좋은 초대를 받은 것처럼 이 한해 우리가 미처 예상하고 있지 못하던 좋은 소식들이 쏟아져 들려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새해 벽두부터 눈 인사만 할 정도로 지내오던 이웃에 사는 한국아줌마가 시집을 간다며 초대장을 보내왔습니다. 환갑이 훨씬 넘어 결혼하시는 그 분의 용기가 너무 궁금하고 흥미로워서 나는 일찌감치 피로연에 참석했지요. 평소 가끔씩 동네에서 오다가다 마주치던 그분의 모습은 화장기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주근깨투성이 얼굴인데다 늘 허름한 옷차림에 걸음도 팔자 걸음걸이였음을 기억하는 있는 나는 그 날 너무 놀라서 기절할 뻔 했습니다. 각시가 되어 신랑 옆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는 그야말로 나무꾼을 만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눈이 부셨습니다. 옛말에 집과 여자는 가꿔야 한다는 말이 꼭 맞았습니다. 게다가 두 눈에 콩깍지가 끼어 신부를 업어갈 신랑도 어찌나 든든하고 멋져 보이는지 바라보는 내 가슴도 덩달아 두근거렸습니다. 아, 그런데 검은 머리 파 뿌리 되어 혼인한 그들이 회춘하여 흰 머리가 검어지도록 행복하기를 염원하다가 그만 즐거워진 내 입맛을 자제 못하는 불상사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가까스로 조절하고 있던 스커트의 단추가 터져버려 숨겨둔 똥배가 툭 튀어나오고 말았지 뭡니까. 하지만 나는 많은 하객들 앞에서 결코 기죽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아, 이 불거진 배야말로 인생을 넉넉하게 살아왔다는 훈장이지 뭐' 라며 아줌마답게 나 스스로를 쿨 하게 격려했습니다. 어쨌든 실컷 먹고도 유독 나에게 더 인정을 베풀어준 신부님이 손목이 휘도록 싸 들려준 잔치음식을 들고 집에 돌아 오는 길엔 미소가 계속 번졌습니다. 그녀가 늦게나마 사랑하는 임을 만나 기뻐하는 것 이상으로 나에게도 좋아서 어찌할 수 없는 님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온 겁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나의 님은 자그마치 백 명이나 됩니다. 일전에 지면에 글로서 털어 놓았듯이 내가 3년째 살고 있는 달팽이 같은 나의 집 문패는 '힐링 홈' 입니다. 작년 말에 다녀간 백 번째의 손님은 아프리카에서 방문한 고령의 선교사 할머니셨습니다. 어찌어찌 하여 우리 집에 대한 소문을 들으신 그 분이 한 달을 머물러 계시는 동안은 천국에 가 계신 나의 친정어머님과 함께 살고 있는 듯 내내 훈훈한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 동안 나의 작은 쉼터에 머물다 가신 님들은 가까운 이웃은 물론 미국 동서남북과 타국 등 여러 지역에서 오셨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홈스테이나 하숙을 경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 인생 길 걸어오는 동안 집 없는 설움을 혹독하게 겪은 후에 깨달은 것은 세상살이란 잠시 캠핑 나온 것쯤으로 생각이 되어 나의 가진 모든 것은 결코 내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어느 날인가부터 우리집은 '힐링 홈'이 되어 배고픈 님, 삶에 지친 님, 오갈 데 없는 님, 서럽고 외로운 님, 소외되어 왕따로 울고 있는 님, 버림 받은 님들이 잠시 쉬었다가 힘을 얻어 다시 출발하는 쉼터가 되었습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올 한 해도 이 행복한 힐링 쉼터의 문을 두드리는 가난하고 힘없는 님들이 좀 더 편안한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푹신한 의자로 바꾸고 싶고 작은 텃밭도 알뜰살뜰 더 늘려서 풍성한 먹거리 야채를 한 가득심을 계획입니다. 내가 선물로 받은 올 한해도 힘있게 뛰고 달릴 수 있는 이유는 곁에 있어도 그리운 사랑하는 님들을 돌아보는 기쁨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이 한해 힘 내세요! 우리 모두 파이팅 입니다.
2016-01-06 얼굴
얼굴이 지닌 뜻은 '얼?영혼' '굴-통로' 즉 그 사람의 마음의 길이라고 한다. 누구든 처음 만나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모습이 바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라는 이야기다. 아침에 일어나 처음 마주보는 나의 모습을 보고서 인사한다. 오늘도 수고하며 잘해보자고. 세월에 못 이겨서 생겨난 어쩔 수 없는 주름과 자연의 법칙 탓에 자꾸 밑으로만 내려오려는 처짐이지만 그래도 살아온, 살아가는, 살아갈 모든 것이 바로 6초 안에 다 보여지는 얼굴에 화해하고 부탁하려는 것이다. 새로운 해가 오고 숫자는 또 하나 더 보태지겠지만,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그런 얼굴이 되고 싶다. 시간의 정직함에 저항하지 않으며, 바람 불면서 가끔 설레는 찰나에 흔들리지 않으며, 터무니없는 욕심부려 나를 괴롭히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이기려 하지 않는 마음으로 이제는 겉의 얼굴이 아닌 속에서 만들어내는 진정한 얼굴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 숨기지도 못하며 거짓일 수도 없는 환한 미소 지으면서 -비록 지금까지 조금은 예쁘지 않으며 울퉁불퉁한 인생이었더라도? 책임지는 얼굴로 또 다른 새해 멋지게 시작하련다.